여자배구 4강, ‘배구를 한 적이 없는’ 라바리니 감독

여자배구가 화제입니다. ‘배구를 한 적이 없는’ 라바리니 감독도 화제구요. 많은 기사와 글들이 나오고 있는데 곽한영 부산대학교 교수님의 글이 좋아서 소개합니다. (출처 : 곽한영 교수님 페이스북)

​올림픽 여자배구는 어쩌다보니,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가슴이 떨려서 본방사수를 못하고 원고를 쓰는 중에 중간중간 인터넷중계를 켜서 잠시 흐름만 확인하는 식으로 보다가 결과가 나오고 난 후에야 전경기를 돌려보는 ‘새가슴 관람’을 했다. 이렇게까지 불안했던 이유는 어쩌면 우리 팀이 가지고 있던 ‘극복할 수 없는 한계요인’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 극복할 수 없는 한계들 대신 기대하기 어려웠던 ‘다른 요인들’이 이 한계를 커버해주면서 지금 우리나라는 황금라인업이라던 2012 런던 올림픽과 같은 수준의 성취를 이미 이룬 상황이다. 현재 대표팀의 라인업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꿈같은 이야기인지 알 것이다. 어제 꺾은 터키팀이 세계 4위고 우리나라가 14위라며 장하다는 기사가 여럿 나왔는데 사실 현재 라인업으로는 20위권 바깥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14위는 국가간 A매치에서 쌍둥이 자매가 빠지기 전에 쌓아놓은 포인트에 의한 순위이기 때문.

​. 현재와 같은 기적을 가져온 ‘다른 요인’의 핵심으로는 역시 김연경이 주목받고 있다. 달리 부연설명이 필요없을만큼 김연경의 역할은 크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김연경이 더 젊고 다른 멤버들이 훨씬 화려했던 지난 몇 차례의 올림픽에서는 왜 아쉬운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라바리니 감독의 감독의 역할에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사실 감독은 경기 중에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는 선수교체 타이밍이 적절했는지, 비디오 판독은 제때 잘 썼는지 정도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정도로 판단되어 마땅한 감독들도 가끔 있다). 하지만 선수의 피지컬에 주로 의존하던 예전과 달리 빠른 속도와 조직력이 강조되는 현대 스피드 배구에서는 감독이 팀컬러를 어떻게 만들고 선수를 어떻게 훈련시키며 운용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바로 이런 특징 때문에 현대 배구에서는 전통적인 에이스였던 라이트 아포짓보다 세터의 역할이 중요해진다.(여담으로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배구에 처음 입문하신 페친분이 배구에 관심이 생겨서 ‘하이큐’라는 배구만화를 읽으셨는데 이 만화에서는 배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 세터라고 해서 갸우뚱했다,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김연경, 그러니까 윙스파이커 아니냐는 포스팅을 올리셨다. 실은 이게 대단히 씁쓸한 이야기인데 바로 그 부분이 우리나라 배구가 한참 뒤처져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 라바리니 감독은 액면가(?) 때문에 나이가 많아보이지만(감독님 죄송) 실제 나이는 40세다. 우리나라 현직 프로배구 최연소 감독인 고희진 감독보다 한 살 많은데 통상 대표팀 감독은 여러 감독군 중에 가장 선배급에서 선발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대단히 젊은 편이다. 대한항공을 이끌었던 박기원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나이가 66세였다.

.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배구 선수 생활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야구의 염경엽 감독이나 농구의 최희암 감독, 배구의 차상현 감독처럼 선수시절에 화려하지 않았지만 지도자로서 꽃을 피우는 경우는 있지만 선수생활을 전혀 안해보고 온전히 지도자 생활만 하는 경우는 대단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2019년 남녀대표팀 감독 인터뷰에서 라바리니 감독은 ‘저는 여기 계신 남자대표팀 감독님처럼 화려한 선수생활경력이 없다’며 멋쩍게 웃기도 했다.

​. 하지만 이때 옆에 있었던 남자대표팀 감독이 ‘김호철 감독’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그 후에 온갖 사달이 나면서 결국 남자대표팀을 혼란의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은 장본인. 다혈질 성격때문이라지만 거친 지도방식으로 항상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 그에 비해 라바리니는 VNL의 엄청난 강행군, 1년 연기된 올림픽, 가히 치명적이었던 쌍둥이 자매의 국가대표 이탈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어떤 잡음도 없이 여자대표팀이라는 조각배를 이끌고 굳건히 이 자리까지 왔다. ‘선출’이라는 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 반대로 말하자면 지도자 경력으로는 왠만한 사람은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다. 믿기 어려울 정도지만 16세 때 이미 동네 배구팀에서 코치 경력을 시작했으니 40세 나이에 지도자 경력만 24년이다. 당연히 외국이라고 해서 선출 아닌 사람이 겪는 어려움이 덜했을까? 가장 문제는 선수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 해야 하는데 지단이나 메시가 감독으로 던지는 말과 동네 배구팀 코치를 하던 사람이 던지는 말이 같은 무게일 리가..

​. 이 역시 반대로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감독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허명’으로 덮을 필요가 없는 ‘실력’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유럽리그에서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가 지구 반대편 배구 약체국인 우리나라의 감독을 맡기로 한 것도 자신의 커리어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국가대표팀 감독 경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에서도 ‘벽’을 깨기 위해서는 확실한 실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뜻이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그런 그의 입장을 잘 캐치하고 데려온 배구협회의 공이 큰 부분이다.

​. 결국 그의 ‘실력’이란 감독의 본질, ‘지도 능력’이다. 라바리니 감독 부임 이후 대표팀에 다녀온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가끔 묘한 말을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이야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태극마크의 무게를 느끼며… 라고 하지만 컨디션을 회복하고 시즌을 준비해야할 타이밍에 국가대표에 차출되면 당연히 정규시즌에 지장이 생기고 이는 프로선수로서 자신의 몸값에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가 된다. 이 문제 때문에 팀은 물론이고 선수 자신도 왠만하면 명단에서 빠졌으면.. 하는 속마음이 없지 않다. 이게 속마음으로 머물러야 하는데 쌍둥이 언니였던 이재영이 부상을 핑계로 차출 자체를 거부해버리는 사태를 일으키고 복근 부상으로 만신창이였던 몸을 이끌고 해외리그를 중단한채 국대에 합류했던 우리의 식빵언니가 열받아서 대놓고 비판하는 인터뷰를 하는 통에 분위기가 싸해진 일도 있다. 김연경과 쌍둥이의,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비극으로 귀결되는 스토리가 여기서 시작됐다.

​. 그런데 라바리니 부임 이후 국대에 다녀온 선수들은 ‘감독님이 늘 새로운 걸 가르쳐주신다’, ‘가면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내 플레이를 되돌아보게 된다’,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이다’라는 말들을 하게 됐다. 이 역시 립서비스일 수 있으나 적어도 이전 국대팀에서는 여기서 뭘 배웠다, 이런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미 완성형 선수인 프로들이 아닌가. 이제와서 뭘 새로 배울 수준이면 선발된 게 이상한 일이고, 또 달리 보자면 자신을 가르쳤던 예전 지도자들 혹은 현재 소속팀의 감독과 코치를 물먹이는 말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괄호치고 (우리 팀에서는 안가르쳐줬던)이 저절로 떠오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배웠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라바리니와 스태프들이 선수들 개개인의 플레이를 세심하게 지도하고 변화를 유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대표적인 사례가 김희진 선수다. 김희진은 키가 크고 힘이 있는 대신 속도가 떨어진다는 평가 때문에 소속팀인 IBK 기업은행에서는 센터 포지션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라바리니 감독은 김희진 정도로 파괴력있는 스파이크를 구사하는 선수가 센터에 머물기는 아깝다, 게다가 현재 여자대표팀에는 라이트 윙스파이커가 부족하니 라이트를 해보라고 권했다. 김희진은 처음엔 주저주저했지만 대표팀에서 라이트로 뛰면서 코트에다가 빵빵 내리꽂는 스파이크를 때려보니 와, 이거야말로 내 체질이구나 깨닫게 되었다. 배구에서 주공격수 포지션인 라이트를 하다가 나이가 들어 힘이 딸려서 센터로 가는 경우(예를 들어 한송이 선수)는 있어도 센터를 하다가 라이트로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 엄청난 역발상이었던 셈인데 이게 잘 맞아떨어졌다.

​. 문제는 이렇게 라이트의 맛을 느낀 김희진 선수가 다시 소속팀으로 돌아가자 기업은행의 김우재 감독은 센터포지션을 강요했다는 점이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팀의 선수구성상의 문제도 있지만 여자배구의 특성상 양효진 선수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센터 포지션이 비교적 체력을 세이브하면서 다득점을 올릴 수 있는 ‘점수 자판기’ 포지션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어서다. 김희진과 감독의 신경전이 갈등의 양상으로까지 확대되면서 감독은 한 발 빼는 척 일단 라이트 포지션을 줬다가 제대로 성적이 안나자 몇 경기만에 ‘거봐라, 니가 무슨 라이트냐’라며 다시 센터로 돌렸다. 사실 포지션 변경이 있으면 팀의 다른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는게 당연한데 이렇게 ‘넌 안된다’는 식으로 포지션을 원상복귀시키자 김희진은 크게 의기소침해졌고 지난 시즌 부진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에서 김희진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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