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이 아이들 교육에 좋다구요? 글쎄요! (이대택)

국민대학교 체육학과 이대택 교수님의 칼럼입니다. 최근 일본에서도 구직활동 중에 운동부 출신임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말라는 기사가 나왔다고 하죠. 상명하복으로 상징되는 운동선수의 특징이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에는 적합했지만 이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체육이 아이들 교육에 좋다구요? 글쎄요!

굳이 초기 스포츠의 발단을 얘기한다면 스포츠는 전쟁을 모델로 삼는다. 몸을 사용하여 상대방과 맞서 싸우고 경쟁하고 이기고 지배하는 육체적 행위이다.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모의 전쟁 행위이다. 그래서 스포츠에서는 살아남아야 하고 상대방보다 상대적 우월성을 가져야 한다. 훈련과 기량은 물론 전술과 전략도 필요로 한다. 스포츠가 전쟁과 다른 것은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며, 최소한의 위험 수준에서 경쟁이 가능하도록 나름의 신사적 규칙을 갖는다는 것이다.

육체의 건강과 강건함은 중요한 덕목이다. 인간으로써 살아가는데 필요하고 경쟁에 필요한 요소이다. 이를 위해 아이들은 학교라는 틀에서 육체적 교육을 받는다. 체육이라는 과목이 그것이다. 학교에서 교육적 목적을 동반해야 하니 체육에도 나름의 가치를 부여된다. 단지 육체적 단련이 아닌 정신과 마음까지 다스리는 과정임이 강조된다. 수업 내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공정한 경쟁과 투명한 판정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더 이상 전쟁의 폭력성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체육이 어린 아이들의 인성과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이 주장되어진 과정이다.

체육뿐 아니라 보다 광범위하게 스포츠는 인간의 다양한 정서적 인지적 심리적 속성에 영향을 미친다. 인내력을 키워주며 육체적 고통에 대한 내성과 정신적 결단력까지 배양시켜준다. 팀 경기의 경우에는 팀원들과의 협동과 관계 형성을 요구 받는다. 이는 스포츠가 사람들의 인성과 사회성을 키워준다는 주장의 내용들이다. 그래서 스포츠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참여자들이 더욱 바람직한 사회적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된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의 체육시간과 스포츠 활동 참여가 어린이들의 성격과 사회적 관계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이러한 주장에는 기본적으로 스포츠가 자신의 발견, 인내력 배양, 상대방과의 소통 및 관계형성을 돕는다는 전제를 갖는다. 스포츠를 통한 경쟁의 와중에 팀원과의 단결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도 키워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를 위해 몇몇 사례를 들거나 또는 몇몇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결과들이 제시된다. 과연 이러한 주장을 온당히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생각해 볼일이다.

스포츠는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경쟁을 기본으로 한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이기고 지배하는 게임이다. 동시에 스포츠는 위험성을 줄이고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규정과 규칙 내에서 경기가 진행되도록 짜진다. 결과적으로 스포츠라는 게임의 본태적 목적과 스포츠가 진행되는 방식은 서로 상반된 요구사항을 갖는다. 이겨야하지만 규칙을 지키면서 진행해야하는 것이다. 전자는 극단적인 폭력성을 반영하지만 후자는 양심과 공정을 요구한다. 체육수업이 스포츠활동 참여가 인성과 사회성을 키운다는 주장이 가능한 이유는 주로 후자의 스포츠 진행과정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전자에 교육적 가치를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스포츠 행위의 단기적 목표는 전자에 가깝다.

스포츠의 과격성과 폭력성은 자주 나타난다. 승리를 위해 규칙에 벗어나는 행위를 서슴지 않거나 속이거나 또는 상대방 선수를 인위적으로 해하는 경우도 있다. 체육과 스포츠 활동은 그래서 폭력성과 신사도를 함께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극단적 예로, 체육과 스포츠 활동이 사람의 됨됨을 교육시키는데 이롭다면, 체육시간을 열심히 하거나, 체육성적이 좋거나, 운동을 좋아하거나, 국가대표선수들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인성과 사회성이 더 우수해야한다. 과연 그럴까.

체육과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는 없다. 그 참여가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따라 결과는 백팔십도 달라진다. 경쟁과 승리를 추구하되 최소한의 양식과 신사도가 경험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단지 체육과 스포츠 현장에서만 진행된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다. 스포츠는 한 사회의 작은 창구이다. 즉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되는가가 바로 체육과 스포츠의 경험으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면 체육과 스포츠현장도 정의롭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고스란히 다시 스포츠 현장에서 경험으로 되돌아온다.

우리사회는 체육과 스포츠가 사람의 발달에 중요함을 강조한다. 교육적으로는 인성과 사회성도 발달하는 것으로 얘기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교육적 효과가 혹시, 집단을 위해 노력하고, 조직에 복종적이며, 사회의 위계질서를 잘 수행하는 그러한 인간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스포츠가 개인이 아닌 집단을 우선시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을까. 결국 스포츠를 통해 현재의 사회문화에 동화되도록 하는 것을 사회성이 발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러하다면 스포츠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관계는 불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현재의 사회문화에 적응하는 인간을 강화시키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니까.

체육과 스포츠는 몸을 사용하여 나와 사회를 경험하게 하는 특징을 가진다.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스포츠가 독창적인 이유다. 그러나 그 경험이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스포츠는 어떻게 경험하는가가 중요하다. 체육이, 스포츠가, 그래서 아이들에게 좋은 효과만을 가지고 오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은 체육과 스포츠에서 배려와 공정성을 배우지 않는다. 사회에서 배운다. 그리고 사회에서 배운 것을 체육과 스포츠에서 강화시킨다. 체육을 통해 아이들의 인성과 사회성이 발달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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