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성공이라도 경험시켜 주기 위해 노력하는 스승 (이와무라 아키노리)
일본에 계시는 서영원씨께서 이와무라 아키노리 감독의 훈훈하면서도 묵직한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학생 야구계에서 새바람이라고 말하는 부분들이 있다. 선수의 개성을 존중한다든지, 훈련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해야한다는 등의 주장들이다. 이를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은 자신이 학창시절에 어떤 교사를 만나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떠올리면 된다. 최소 6-3-3 제도를 거친 사람이라면 엄청 많은 교사들을 겪어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엄격했고, 누군가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학생들을 존중했다. 어떤 교사에 대해서는 싫은 기억이 남아 있고, 반대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교사도 있다.
하나의 교실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있다. 공부에 정진하거나, 떠들거나, 개구쟁이스럽거나 등등. 물론 학생의 가장 큰 목표는 공부겠지만, 모든 학생의 목표를 공부로 설정하는 일은 옳지 않다. 나는 중학교 시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선생님이 계신데, 교실이라는 큰 틀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을 존중해 주셨다. 선생님은 트럭운전을 하고 싶은 학생이나, 도쿄대학에 가고 싶은 학생 모두를 존중해 주셨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학생이 하고싶어 하는 일을 부정하거나 긍정하지 않았다.
동창들과 만나면 그 시절을 고마워한다. 시간이 흘러 알게 된 것이지만 동창들은 ‘그때 그 분위기 속에서의 성공경험이 지금의 인생에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무슨 말일까? 선생님이 만들어 놓은 분위기 속에 동창들은 자신감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해냈고, 그 기억과 감각을 통해 인생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얻고 있었다. 공부로서는 성공하지 않았던 교실이었지만 누구보다 건강하게 그 시절을 보냈다고 할 수 있는 교실이었다.
어쩌면 성공의 기준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이 교실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학급평균에 집착한 교실이 오히려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누가 과연 성인이 된 후 “그때 우리가 학급 평균 1위였지”라고 추억하며 살까? 오히려 그 당시 트럭운전수가 되고 싶었던 학생의 목표를 응원하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학생을 존중해주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분위기를 완전히 자유롭게 풀어 놓는 것은 옳지 못하지만, 내가 주장하는 것은 적어도 각각의 개인이 갖고 있는 재능, 목표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만약 모든 이들의 목표를 학급 평균 점수 같은 것으로 묶어 놓는다면, 누군가는 이 교실의 공로자가 되고 누군가는 역적이 된다. 학생 시기에 작은 성공이라도 경험시켜 주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공부나 야구가 아니더라도 사회에 나가 융화되어 살아갈 그들의 인생과 사회 전체의 건강을 위해서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야구선수들이 야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프로에 가고, 누군가는 대학, 또 누군가는 사회인야구를 하게 된다. 어느정도의 엄격함을 갖고 하는 것이 야구지만 과거처럼 꼭 그렇게 하나의 팀, 하나의 결과에 목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고시엔이랄지, 지역대회의 성적만으로 귀결되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그 결과를 강조해도 어떤 방식으로 선수를 케어하냐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고시엔에서 색다른 방식으로 성적을 내는 감독들이 조금 더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훈련법도 훈련법이지만 학생들과 메신저를 하고, 학생들에게 야구의 엄격함보다는 자율성을 심어주는 그런 방식들이다. 이렇게 해도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증명하는 감독들이 많이 등장해야 야구계가 선순환될 수 있다. 야구계 전체의 브레인스토밍이 될 수 있다. 얼마전 할릴호지치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이 한 말이 있다.
“일본은 섬나라 근성을 버려야할 것이다.”
매우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일본은 이 섬 안에서 지나치게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이를 위해 과거에 해왔던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있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을 인정한다고 해도 내가 응원하는 것은 기존 방식의 승리보다는 새로운 방식의 승리다. 아직 야구계가 바뀌려면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다양한 방식, 다양한 존중을 통한 결과들이 지금보다 더 자주 등장하기를 바란다. 지금 일본은 ‘모두 다 바꿔라’가 아니라 ‘이런 방식들도 있다’는 어필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