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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의 운, 고3 야구선수의 운

이번 주 <야구친구>에 올릴 글을 쓰며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는 만들지 말라’는 형사소송법의 기본 선언이 떠올랐습니다. 체육특기생의 입시문제는 참으로 난해합니다. 기록 위주로 정량(定量)적인 평가를 엄격하게 적용하든, 현장 지도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든 억울한 선수는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제도를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기 보다는 원칙이나 기준을 분명히 정하고 공유하는 작업을 먼저 했으면 합니다. 제도는 매년 조금씩 수정해 나가면 되니까요. 저는 ‘잠재력있는 선수를 놓칠 수 있는 위험’보다 ‘엉뚱한 선수가 진학을 할 위험’을 막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잠재력있는 선수가 기록이 미치지 못해 원하는 대학에 못가는 것이 ‘불운’에 조금 더 가깝다면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 게다가 3년 내내 몇 경기 뛰지도 않았던 친구, 선후배가 집에 돈이 많다는 이유로 좋은 대학에 가는 현실을 지켜보는 것은 ‘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 자체를 우습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오타니의 운, 고3 야구선수의 운

프리미어12에서 인상적인 투구를 보여준 오타니 선수가 고교 1학년 때 세웠다는 목표가 화제다. 목표가 무척이나 다양한 것도 인상적이지만 ‘운’도 목표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야구선수로서의 성공이 본인의 노력 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 어린 나이부터 알았던 것일까? 어찌되었든 오타니 선수는 ‘인사하기, 부실 청소’ 등 운에 속한 과제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했고 결국 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오타니 목표달성표

2015년 여름, 한 고등학교 3학년 야구선수 A군이 있었다. A군은 유격수와 중심타자를 맡으며 팀을 이끌고 있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A선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수비는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안타가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원하는 대학에 가길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타율이 필요했다. 팀도 전국대회마다 8강 이상을 밥 먹듯이 진출하는, 소위 말해 명문고가 아니었기에 한 시즌에 치를 수 있는 공식 경기수도 20경기 안팎이었다. 올해 초반 극심한 부진을 겪은 후 멋진 반전을 보여준 추신수 선수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경기라는 것은 ‘평균회귀의 법칙’이 작동하는 야구에서 선수의 능력을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적은 표본이다. 어느 날 경기 중에 A선수는 안타를 못치고 덕아웃에 들어와 고개를 떨구고 울음을 터뜨렸다. 가장 중요한 고3 시기에 타격사이클이 하향세로 접어든 자신의 ‘운’을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A선수의 불운은 입시비리 수사의 여파로 올해 갑자기 바뀐 대학입시의 분위기 탓일지도 모른다. 팀에서 이렇게 궂은 일을 하는 선수라면 감독이 원하는 대학으로 보내주곤 하던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입시관행을 옹호하는 분들은 야구실력을 기록만으로 보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A선수가 보여준, 상대팀의 안타를 걷어 내는 현란한 수비는 입시를 위해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현장 지도자들의 평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입시관행에는 어쩔 수 없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수 밖에 없었다. 고교통산 방어율이 9점대이고 출장기록이 한두 경기에 불과한 선수가 명문 대학교에 진학하는 특혜를 누리는 풍경이 공공연히 벌어졌다.

참으로 진퇴양난의 형국이 아닐 수 없다. 기록 위주로 정량(定量)적인 평가를 엄격하게 적용하든, 현장 지도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든 억울한 선수는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야구계와 교육계의 지혜를 모아 묘수를 찾아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잠재력있는 선수를 놓칠 수 있는 위험’보다 ‘엉뚱한 선수가 진학을 할 위험’을 막는데 보다 초점을 맞추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잠재력있는 선수가 기록이 미치지 못해 원하는 대학에 못가는 것이 ‘불운’에 조금 더 가깝다면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 게다가 3년 내내 몇 경기 뛰지도 않았던 친구, 선후배가 집에 돈이 많다는 이유로 대학에 가는 현실을 지켜보는 것은 ‘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 자체를 우습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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