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변화 vs 스포츠팀의 변화
가족을 챙겨야 할 일이 있어서 연말연시를 병원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2~3년 전부터 병원을 자주 들락거리게 되면서 병원 이곳저곳의 풍경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의사의 진료방식부터 전반적인 행정시스템까지, 확실히 제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병원의 이미지와는 많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의사로부터 느낀 변화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다수의 의사들이 환자의 상태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니터 화면을 함께 보며 설명을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환자와 가족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면 직접 종이에 신체의 구조나 혈관이 지나가는 모습 등을 그려가며 환자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려주려 노력하였습니다. 설명이 끝나고는 “이해가 되셨어요?”라고 물으며 환자가 자신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다른 궁금한 게 또 있으세요?” 하면서 환자의 생각을 묻기도 하셨습니다.
의사와 마주 앉아 있는 상황 자체가 긴장될 수 밖에 없는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 의사의 그런 질문들은 꽤나 큰 정신적 위안으로 다가왔습니다. 길지 않은 짧은 대화지만 그렇게 의사와 환자 간에 주고 받는 이야기들을 통해 환자가 치료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온전히 의료계의 자발적인 각성으로 일어난 것은 아닐겁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의료 전문가들이 그동안 누려온 정보독점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환자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넘쳐나다 보니 아무리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의사라고 해도 환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처방을 내리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의사분께서는 “이제는 수술을 하라고 하는 것도 설득을 해야 합니다.” 이런 하소연을 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병원 간의 경쟁이 치열해 지다보니 의사들도 온갖 평가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보상과 처벌과 연결된 평가시스템은 구성원들의 행동방식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하곤 합니다. 이 밖에도 병원의 진료 시스템을 변화시킨 여러 이유들이 있을테지만 저는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정보의 확산과 평가 시스템!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포츠 현장을 떠올렸습니다. 스포츠 코치는 선수의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한다는 측면에서 의사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스포츠 코치들도 과거에는 의사들 못지 않게 권위적인 태도로 선수들을 대했습니다. 코치의 처방에 토를 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연습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선수가 그 이유를 들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의료 정보 못지 않게 선수육성을 위한 정보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SNS와 유튜브를 몇 분만 검색해도 원하는 연습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선수들은 이제 어떤 연습을 하든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합니다. 코치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주문을 할 때는 그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이때 어떤 코치는 선수와 대화를 하고, 어떤 코치는 여전히 코치라는 권위를 앞세워 선수의 궁금증을 묵살해 버립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코치의 자질로 대화와 소통능력이 강조되지만 아직은 코치의 자발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병원이 변했듯 코치들이 선수를 대하는 방식도 변하게 될까요? 건강한 평가와 피드백 시스템이 없다면 시간이 흐른다고 변화가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