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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에 대한 생각

오랜만에 고시엔 센바츠 경기를 감상했다. 나도 피가 끓던 젊은 시절에는 땀과 눈물로 상징되는 고시엔의 거의 모든 풍경을 동경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삶의 여러 측면을 경험하면서 고시엔 경기를 이전처럼 추앙하는 마음으로 보지는 않는다. 부러운 모습 70 vs “왜 저러나” 하는 마음이 드는 불편한 장면 30 정도 된다. 몇 가지 내가 관찰한 풍경들과 생각을 남겨보면.

(1)

일단 경기가 매우 빠르다. 투수는 느낌적 느낌으로 거의 10~12초 사이에 다음 공을 던지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경기가 2시간 내외로 끝난다. 피치클락이 필요 없는 수준. 벤치에서 공 하나하나마다 수많은 지시가 전달되며 경기 시간이 3시간 넘어가는 우리 고교 야구와는 경기의 템포가 완전히 다르다. 다른 경기라고 느껴질 정도.

(2)

심판에 항의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항의 자체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절대복종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몇 년 전에 새로운 정보를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대회의 심판위원장과 경기를 한 팀의 지역 심판위원장이 미니 토론을 한다고 한다. 두 지역 심판위원장은 해당 학교에 미팅 내용을 알려 주며 ‘판정 때문에 졌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항의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규정이 정말 있다면 전근대적인 사고라고 생각한다.

(3)

TV 중계에서 경기를 해설하는 방식도 확연히 차이가 느껴진다. (이건 NPB와 KBO 중계 스타일의 차이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모든 경기가 그런 건 아니지만 현역 고교야구 감독이 해설자로 돌아가며 참여한다. 그래서 그런가 비판의 뉘앙스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상황 해설 위주의 코멘트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센터 앞에 안타가 나왔다고 하면 일본은 ‘센터 앞에 안타! 무사 1루가 됩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상황 설명’ 위주의 해설을 한다. 가끔씩 좋은 타격을 했다는 칭찬 정도?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비평’이 따라 온다. ‘중심타자인데 너무 정직하게 승부를 했네요.’ ‘무리하게 승부할 필요가 없었는데 욕심을 냈어요.’ ‘힘이 들어가요. 꼭 막아야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데요.’ 이런 말들을 일본 야구 중계에서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투구의 템포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이런저런 부가적인 설명을 할 시간이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SOOP TV에서 일본 프로야구 해설을 하는 손윤님께서 알려주신 기억이 난다.

(4)

이 부분이 과거와 다르게 생각이 많이 바뀐 대목이다. 거의 모든 팀의 선수들이 웃으면서 경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경기가 패배 직전까지 몰려 있는 상황에서도 감히(!) 웃고 있는 선수들이 제법 많다. 그러다가 경기가 끝나면 일제히 웃음이 통곡으로 바뀐다. 패한 팀이 경기장의 흙을 담아가는 모습은 고시엔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 학생야구다운 순수함, 꿈을 향한 노력같은 말로 미화를 하는데, 마치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는 것처럼 상황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태도를 바꾸는 선수들을 보며 나는 솔직히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마지막 타자가 1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넉넉하게 아웃 당하는 상황에서도 거의 대부분의 선수가 몸을 날리며 쓰러진다.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한다고 프로그램이 입력된 로봇처럼 몸을 날린다. 그리고 경기 끝. 바로 통곡

나는 고시엔의 전형과도 같은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사고하고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해야 해’라는 거대한 압박이 느껴진다. 어른으로부터의 압박, 전통이라는 이름의 압박. “일본은 숨 막히는 느낌이면 우리는 자유가 지나친 느낌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양쪽 다 어른이 야구를 하는 느낌도 듭니다.” 한국말보다 일본말 발음이 더 정확한 손윤께서 일전에 남겨주신 코멘트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나에게 고시엔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알쏭달쏭한 장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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