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운동선수? 웃픈이야기 !

스포츠문화연구소장이신 국민대학교 이대택 교수님의 글입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4월 6일 토크쇼에 많은 부모님들께서 참석하셔서 의견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저 혼자 찍힐 순 없어요.. ^^

이대택의 스포츠문화 생각

공부하는 운동선수? 웃픈이야기 !

대한민국에서 운동선수는 ‘모’ 아니면 ‘도’다. 중간도 없다. 금메달을 따거나 최고의 선수로 등극하여 연신 경신되는 최고의 연봉을 받지 않고서야 ‘선수’로써 ‘성공’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메달을 따는 꿈을 꾸고 최고로 유명한 선수가 되는 것을 목표한다. 이를 위해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바친다. 자연스럽게 학업마저 뒤로 밀린다. 공부보다는 운동이 우선이고 공부할 시간 있으면, 그 시간에 운동하거나 쉬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학부모도 가세하고 동조한다. 성과와 메달, 승리, 진학, 학부모의 등살에 코치와 감독들은 좋던 싫던 맞장구친다. 어린 운동선수들의 학창시절은 학업 박탈을 시작으로 성적은 물론 지적, 사회적 역량을 넓힐 기회를 송두리째 잃어버린다.

만약 선수로써의 성공 가도에 오르지 못하면, 그 선수는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공부도 안했고, 운동도 성공하지 못했으니 무엇을 하지? 막막하다. 결국 인생 한방의 도전에서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되는 공허의 상태가 된다. 해본 것이 운동인지라 운동바닥에서 삶을 꾸려야 한다. 그러나 운동바닥이 그리 넓지 못하다. 운동바닥도 만원이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틈도 가물에 콩 나듯하다. 그러니 운동바닥에서 인생을 연장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낙오 선수들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고민하게 된다. 고민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많은 체육인들은, 많은 선배들은, 이러한 상황을 체육인들이 당면한 문제들 중에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규정한다. 운동을 하고 난 후의 삶을 보장하고 인생의 연결과 환승이 가능하게끔 하는 방법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가장 오랜 동안,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대두되어온 문제해결방식은 바로 운동선수들에게도 공부를 시키자는 것이다. 성공하지 못한 선수가 공부라도 했으며 사회진출이 그나마 덜 충격적일 것이라는 전제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함으로써 혹시라도 운동으로 생업을 꾸릴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해, 학업의 성과를 통해 생을 꾸릴 수 있게끔 하자는 의도이다.

이러한 의도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그렇다. 가끔 우리는 언론을 통해 외국의 사례를 듣는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인데, 국제적으로 유명한 유수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거나, 의사이거나 또는 사회적으로 신망 받는 직업을 가진 선수들을 그 예로 한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운동선수도 공부하면서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외국이라고 해서 흔한 것은 아니다. 모든 선수가 다 이렇게 될 수는 없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분명 공부와 운동의 병행은 가능해 보인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도 적용시키면 어떨지에 대한 유혹은 강력하다. 그렇다면 이 방법이 선수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는 유일한 또는 가장 좋은 방법일까? 나는 기꺼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또는 학생선수는 절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선수로써 우수한 공부와 우수한 선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다 하더라도 이 또한 매우 드문 경우가 될 것이다. 드문 경우를 모든 운동선수들에게 적용하는 것 또한 보여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든 선수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은 절대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던지 경쟁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어쩌면 공부와 운동은 서로 구별되어야할 것이다. 결국 두 토끼는 한꺼번에 잡을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나는 오히려 운동만 해도 먹고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욱 중요할 것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본다. 물론 현재의 운동선수들의 숫자만큼 많은 선수들이 운동만해가지고 직업과 직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운동만으로도 삶과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프래임이 아닌, 운동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프래임을 짜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공부만 잘해도, 음악만 잘해도, 그림만 잘 그려도, 운동만 잘해도 살아갈 수 있게끔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할 아이들은 공부를 통해 자신의 미래와 직업을 갈구한다면, 운동하는 아이들은 운동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꾸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공부는 한 개인으로써 갖추어야하는 최소한의 소양을 갖추게끔 교육적 과정만을 충실히 거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법은 ‘의무교육’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으며 최소한의 교육적 양식을 배양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나는 단기적으로는 공부하는 학생선수라는 방안에 동의한다. 아니 동의할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이것이 운동만하는 선수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프래임은 ‘공부’가 우리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필수품’으로 전제하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본다. 기성세대와 선배들의 노력은 고맙지만 결국 이 또한 ‘공부’를 중요시여기는 인식에서 발단되었다는 것에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근본적인 치료방법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법으로 규정하는 의무교육을 충실히 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이후의 교육과정은 선택적이어야 하며, 운동만을 전적으로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방법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기능적 직종이 존재한다. 특히 몸의 기술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직업도 많다. 요리사가 그러하고, 댄서가 그러하고, 가수가 그러하다. 아니 주위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이들에게 학위가 얼마나 필요할 것인가. 이들의 학업성적이 얼마나 우수해야만 하는 것일까. 유독 운동선수들에게 공부를 병행하도록 하는 방안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지 않았기 때문임을 잘 안다. 그리고 운동선수의 사회적 관념과 편견 때문인 것도 잘 안다. 그러나 말을 고급스럽게 예절바르게 유창하게 지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공부하는 운동선수와는 항상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공부하는 학생선수는 또 다른 프래임이다. 여기에는 학습권이 선수배양보다 우선이라는 당위성을 함유한다.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학습권은 법이 보장한 것임에도, 이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 운동선수는 물론 누구라도 학업의 수행은 당연한 것이며 이를 충실하게 이행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까지 하지 않던 것이니 이제부터 하자는 것은, 원래 했어야했던 것을 방기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다시 찾아보자는 의지라는 것이다. 운동선수들도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공부하는 운동선수’는 당연하면서도 중요하다. 그런데 공부를 못하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가정은 기성세대의 무책임으로 보인다. 운동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문화를 조성하고 그러한 작업을 진행하는 것 또한 우리사회의 임무이기도 하다.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당연하면서도 씁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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