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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혀야 하는 투수와 맞아야 하는 타자

빈볼은 언제나 야구계의 뜨거운 이슈입니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글이 있어 옮겨왔습니다. 당시의 영상을 찾아보니 상황이 참 우스꽝스럽네요. 야구는 참 오묘한 맛이 있습니다. 
 
 
(출처 : 베이스볼랩 배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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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선수들은 자신들이 돈 벌이를 위해 야구를 한다는 걸, 야구가 사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선수들은 경우에 따라 하기 싫은 일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일례로 친한 선수나 옛 동료를 맞춰야 할 때도 있을 수 있다. 누구라도 하기 싫어할 일이지만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코드(code)를 거역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감독이 특정 타자를 맞추라고 지시하면, 투수는 지시를 따르거나 항명으로 처벌을 받는 것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투수가 타자를 맞히는 건 경기의 일부이며 선수들도 이 사실을 잘 안다. 타자들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보복구가 나올지 잘 알고 있으며, 그 순간이 오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투수도 마찬가지인데, 그럼에도 아무 죄없는 타자를 공으로 맞히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대상이 친한 선수라면 더 그렇다. 이럴 때는 그나마 고통이 적은 부위를 노림으로 어느 정도 양심의 가책을 덜 받을 수는 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친구간의 우정보다 코드가 더 상위 개념이란 것이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포수 출신인 그레그 올슨은 90년대초 자신이 겪은 사건을 이야기했다. “필리스 상대 경기였어요. 우리 팀 오티스 닉슨이 2루 슬라이딩을 하다 필리스 2루수와 마찰이 생겼는지 말다툼을 하고 밀쳐내더군요. 우리가 보기엔 문제 없는 플레이였는데 필리스 선수들 생각은 달랐나 봅니다. 오티스의 다음 타석에 옆구리를 맞혀 보복했거든요. 그래서 우리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어나갔는데, 난투극까지는 가지 않고 조용히 마무리됐습니다. 바비 콕스 감독은 씩씩대며 “다음 필리스 타자는 무조건 보내버리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시 우리팀 선발은 톰 글래빈이었고, 필리스 공격이 시작되자 바로 첫 타자를 맞히라는 사인이 나왔습니다. 제가 그 때 포수였는데, 하필 첫 타자가 데일 머피였어요. 바로 전해에 애틀랜타에서 필리스로 건너간, 애틀랜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프랜차이즈 스타죠. 게다가 그는 글래빈과도 절친한 사이라 어색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머피가 타석에서 말을 건네더군요. 이봐 올슨, 요즘 잘 지내? 다른 선수들도 별 일 없지? 그래서 저도 다들 잘 지내, 넌 어때? 하고 답했다. 그랬더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나도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거든? 타석 뒤로 물러날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러더니 타석 뒤의 하얀 선을 밟을 정도로 물러났습니다. 사실 우습더군요. 글래빈은 던질 수 있는 최대한 깊숙한 쪽으로 공을 던졌고 머피는 거의 타석을 벗어나면서 피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글래빈은 친구가 다칠새라 75마일짜리 공을 던지고 있고, 팀에서는 어떻게든 보복을 해야 한다고 하고. 상황이 어색했지만 어쨌든 우리 팀의 메시지는 전해야 했으니까요. 코드대로라면 첫 타자를 무조건 맞혀야 하는데 하필 아무도 건드리고 싶지 않은 타자가 나온 겁니다. 우리는 하는 시늉은 해야 했구요. 소심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 선수들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불문율을 소개하는 책 [The Code]의 17장 ‘Friendly Fire(아군공격)’의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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