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환 선수가 추억하는 손용근 감독님

올해 초 NC다이노스의 박명환 선수를 만나 초등학교 은사이신 손용근 감독님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자리를 가졌었습니다.  너무 오래 자료를 묵혀 놓은 듯 하여 죄책감에 부랴부랴 대화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책을 참 많이 읽는 분이더군요. 대화를 나누며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도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하는 것’, ‘도덕은 곧 용기’라는 메시지가 와닿았습니다.

Q 먼저 초등학교 시절이 기억나세요? 너무 옛날 이야기이지요?

 

A 그래도 기억이 많이 납니다. 특히 인성적인 부분에 대해 감독님으로부터 자주 말씀을 들었던 것 같아요. 야구선수보다 그 점을 더 강조하셨습니다. 선생님한테 배울 수 있는 것들도 감독님을 통해 배운게 많습니다. 당시는 초등학교도 수업을 거의 받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손감독님은 수업을 빼먹으면 엄청 혼을 내셨습니다. 감독님같은 분이 롤모델이 되어서 학부모님들이나 야구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존경받을 만한 분이고, 제가 지금껏 많은 분들을 만나왔지만 감독님같은 분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한 팀에서 30년 동안 감독생활을 하셨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 업적입니다. 미국에서처럼 야구계에서 성공한 지도자나 선수들의 자서전들이 많이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야구계에도 본받을 분들이 많이 있는데 어린 친구들이 읽어볼만한 책은 없는 것이 현실이죠. 최근에 저는 <전설의 리더, 보>라는 책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아마츄어 풋볼감독인데, 손감독님처럼 대단한 일을 해내신 분이죠.

전설의 리더 보

Q 그렇습니다. 이런 분도 계시다는 롤모델을 보여주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비슷한 분이 한 명씩 늘어나겠지요. 그러면서 서서히 물들여 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꾸 잘못된 점만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요. 손감독님께서도 지도자 생활 처음 10년 정도까지는 의욕이 넘치다 보니 실수를 많이 했던 시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박명환 선수도 어찌보면 그 시기에 감독님께 배운 경우인데요.

 

A 손감독님이 대단하신게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고스란히 과거의 것만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것만 고집하면 발전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렇게 지도방법을 변화시켜 나가신다는 거죠. 대개의 지도자분들은 학창시절 동안 배웠던 방식 그대로를 적용하시잖아요. 하지만 한결같은 것은, 저희 때도 그러셨지만 아이들을 참 예뻐하신다는 겁니다. 저희 때는 팀 성적도 좋지 못했어요. 요즘은 들어보니 성적도 잘 내고 계시더라고요. 감독님의 철학과 오랜 기간의 노하우가 녹아 들어간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감독님께서 지금 나이에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매사에 배우려고 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Q 일단 손용근 감독님은 아이들이 재밌고 즐겁게 운동을 해야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계십니다.

 

A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재밌고 즐겁게 운동을 해야죠. 제 얘기를 조금 하면, 저는 지금까지 야구를 진지하게  하기는 했습니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즐기는 사람은 미친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저는 선수생활을 20년 넘게 해오면서 노력까지는 해본 것 같습니다. 즐기는 것도 어린 시절부터 배워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미국에 가서 메이저리그를 보면 정말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치열하게 ‘어떻게 하면 이길까?’에만 집중하지만, 미국은 선수들이 스포츠 자체를 즐기면서 하는 느낌이에요. 어린 시절부터 그런 경험을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차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Q 그렇게 즐기면서 야구를 하다가 중학교에 진학을 하면 아이들이 적응을 못하고 힘들어한다며 현실론을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데 주변에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으면 학교생활 적응이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을 하더군요. 유치원 때부터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학교의 짜여진 틀에도 적응을 잘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아니면 아이들은 놀 수가 없잖아요? 초등학교 때라도 즐기지 않으면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전혀 그럴 수 없는 환경이니까요. 저는 그런 부분에 아쉬움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특유의 유교사상에서 출발한 수직적인 문화가 아닌가 싶어요. 미국은 보면 선후배보다는 동료의식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친하면 ‘what’s up’ 이잖아요? 하지만 한국은 강력한 위아래 문화가 있습니다. 야구를 조금이라도 잘하는 후배가 있으면 ‘저 자식 건방지네’, ‘혼 좀 내야겠어’ 이러면서 어떻게든 내리려 합니다. 서로 존중을 해주고 인정을 해줘야 하는데요.

Q 지금 손용근 감독님은 시합 때 작전도 내지 않으십니다. 또 실수를 한 아이를 그 자리에서 야단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계세요.

 

A 저희 때는 작전이 있었습니다. 작전 수행을 제대로 못하면 혼났었죠 (웃음)

 

Q 감독님도 초창기 감독생활 하시던 그 시절 제자들에게 미안해 하시더군요.

 

A 저는 그런 개념을 책을 통해서 이해했는데, 감독님께서 아이들을 상대로 그렇게 하시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죠. 그것은 자기 자신을 인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는 과학적인 요소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정신력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어찌보면 모순이죠.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해왔던 대로 합니다. 지도자가 노력하고 배워야 아이들에게 줄 것들이 많아집니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1세대들은 현재의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에 와서 공부를 접목하기가 쉽지만은 않죠. 지금은 일종의 과도기니까요. 서울대에서 베이스볼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고, 지도자 자격증도 발행하는 등 정책적인 지원도 필요할 테고요. 관련 책도 많이 공급이 되고 교육기관도 많이 생겨나면 운동 밖에 안한 선수들이 무언가 판단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Q 현재 대부분의 지도자분들이 아직도 런닝을 강조하시지만, 야구는 파워스포츠이기에 지구력을 기르는 런닝은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손감독님도 비슷한 취지로 아이들의 발달속도에 따라서 런닝훈련을 다르게 가져가시는데요. 대부분 학교에서 하는 몸풀기위한 런닝도 하지 않으세요.

A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야구에서 필요한 런닝은 단거리가 90%이고 10%는 지구력을 요하는 장거리 달리기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반대로 적용하고 있죠. 즉, 장거리 달리기를 90% 정도 하고, 단거리는 10% 정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그런 이론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감독님께서 적용하시는 것처럼 선수에 따른 개별화 작업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선수는 한 시간을 달려도 힘들지 않을 수 있고, 어떤 선수는 30 분만 달려도 숨이 차는 선수도 있으니까요. 지도자가 잘 관찰해야겠죠.

저도 한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책에서 본 내용인데요, 전 세계에 6억 명이 있어도 본성이 동일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구절이 기억납니다.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손과 발 모든 것이요. 저도 그때부터 ‘아. 다 똑같이 시키면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Q 어떤 이론이 있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고 보시는 거죠?

 

A 논문같은 자료에 나온 내용이라는 것이 결국은 일부 집단을 통한 실험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저 자신의 경험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Q 사실 초등학교 지도자일 수록, 가르치는 선수가 어릴 수록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A 그렇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나중에 고치려면 그만큼 힘들죠. 어린 시절에 여러가지 면에서 기본을 잘 갖춰 놓으면 중학교, 고등학교, 프로로 넘어가는 과정이 훨씬 수월해지겠죠.

 

Q 미국의 리틀야구나 유럽의 유소년축구클럽 등을 보면 Play-practice 즉, 게임 중심 훈련이 널리 자리잡고 있는 듯 합니다. 손감독님도 무조건 훈련을 많이 한다고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신데요. 하지만 현장에서는 게임이 1이면, 연습을 3이나 5정도는 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A 저도 야구는 훈련보다 시합을 통해서 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저학년 때부터 고학년 형들이랑 함께 어울려 게임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시합을 자주 한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죠. 그게 경험이잖아요. 사실 이 부분은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냐, 로이스터 감독님의 야구냐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방식을 저마다 찾아야 할텐데요. 일단 제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많이 하면 잘 할 수는 있지만, 오래 사용하지는 못합니다. 분명히 부상이 따라옵니다. 그래도 야구에 정답은 없습니다.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여론과 언론이죠.

최근의 선진야구는 부상의 위험을 아주 주의깊게 관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은 DL(Disabled List 부상자리스트) 제도가 있어서 부상선수를 보호해 줍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야구는 아직 선수들이 참으면서 끌고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부상 선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미국과 같이 부상선수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으면 선수도 롱런할 수 있고, 팬들도 좋아하는 선수를 오래도록 볼 수 있겠죠.  에이스급 투수가 2~3년 정도 미친 듯이 던지고 잠깐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저도  20년을 야구하면서 7~8년을 부상으로 재활하면서 보낼 수 밖에 없었기에 부상에 대해서는 상당히 예민한 입장입니다. 나중에 지도자가 된다면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재활 중인 선수들을 가장 먼저 돕고 싶습니다.

 

Q 어떤 면에서는 많이 바뀌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지도자가 선수를 대하는 모습은 박명환 선수가 어린 시절 운동하던 때랑 별다른 차이가 없기도 합니다.

A 중학교 감독을 하는 제 후배가 아이들을 데리고 전지훈련을 내려왔길래 제가 몇일동안 게임을 보며 가르쳐 준 적이 있습니다. 저희 때와 마찬가지로 지도자가 선수에게 욕을 하고 끊임없이 지적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더군요. 선수가 계속 감독 눈치를 보는겁니다. 특히 투수는 멘탈이 중요하기 때문에, 마운드 위에서는 전쟁터라고 생각하고 타자랑 싸워야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감독인 후배한테 이야기했습니다. “애들이 상대팀이랑 싸우는게 아니라 너랑 싸우고 있다. 아이들이 감독 눈치만 보고 있으면 어떡하냐.” 이렇게 야단을 좀 쳤습니다. 감독은 선수가 용기를 잃지않도록 엉덩이도 두드리면서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혼을 낼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할 줄 알아야죠. 구타는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진 듯 하지만 선수에 대한 인격적인 모독은 여전한 것 같더군요. 그런 자극으로 배움이 만들어지는 선수도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제는 근절되어야 하는 모습입니다.

Q 지도자를 비난하는 게 현상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듯 합니다. 누구든 공격을 받으면 일단 자기방어를 하기 마련이니까요.

A 지도자들도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것일 테니까요. 제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하는 지도자는 아마도 없겠죠. 후배 감독한테 이유를 물어보니 ‘선수들이 잘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애정도 열정도 있는 친구인데 교육의 방법을 잘 모르는 거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방법을 자꾸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Q 코칭이나 리더십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A 네. 일단 재미있습니다. 예전에는 책을 전혀 안 읽었습니다. 전지훈련 가면 저녁에 심심하니까 읽으라고 와이프가 책을 사줘도 그대로 가져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5년 전 쯤 팔이 너무 아파서 선수를 그만두고 코치를 준비해야 하나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리더십과 관련된 인물론 서적에 빠져서 100여권을 사서 봤던 것 같습니다. 지식이 쌓이다 보니 머릿 속에 있는 것들이 정리가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재활을 하면서 SPOSA에서 세미나도 듣고 관련 서적을 보면서 공부를 하니까 참 좋더군요. 부상의 아픔이 싫어서 더 열심히 공부 했죠.

Q 무척 어려운 시절을 보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A 많이 어려웠죠. 그 점도 감독님께 고맙습니다. 그때는 저 뿐만 아니라 약수동 지역에 워낙 불우한 아이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처럼 돈이 있어야 야구를 하는 게 아니었어요. 돈이 없어도 재능이 있으면 좋은 운동선수들이 배출되던 시절이죠. 저를 위해 어머니가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양복점을 하시고, 어머니는 파출부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먹고 살기가 힘들었죠. 아버지의 양복점이 두 번 망하면서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빚을 내서 운영하셨는데 그로 인해 더욱 형편이 어려워졌죠. 저는 어린 마음에 어머니가 남의 집에서 파출부 생활을 하시는게 너무 싫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게 어머니가 5만원을 벌어오시면 저에게 5천원을 주시고, 2만원으로 가계를 운영하시고, 나머지 2만원은 주변 경로당의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먹을 걸 사다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힘들게 벌어오신 돈을. 우리 먹고 살 것도 없는데 왜 돈을 그렇게 쓰시는 건지 어린 나이의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렇게 남들에게 베풀면 네가 잘된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어머니의 마음쓰심이 이해가 됩니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직접적으로 감독님이 ‘돈 가져오라’고 했던 생각이 납니다. 돈을 못드려서 시합도 못뛰었고요. 그때 어머니가 선택을 잘 하신 것 같아요. 돈도 없었지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촌지를 30만원을 내야 했는데, 하루에 3만원씩 벌어서 30만원을 만들어야 했던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야구부에 간식을 갖다 주는 상황도 저를 참 힘들게 했습니다. 부잣집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햄버거 같은 것들을 사다 주셨는데 저희 엄마는 오뎅 같은 것을 직접 만들어서 주셨죠. 그런데 친구들이 잘 먹질 않았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정식 경기에서 다른 친구들은 다 게임을 나갔는데, 저만 못나가는 겁니다. 화장실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창피하고 너무 괴로웠어요. 엄마가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30만원을 냈더니 처음으로 시합을 한번 내보내 주시더군요. 분명히 기억하는게, 원아웃 주자 1,3루에 올라가서 한 타자를 잡고 투아웃이 되었는데 감독님이 마운드에 올라와서는 투수를 바꾸셨습니다. 지금도 이해가 되질 않아요. 다음 타자까지 처리할 수 있는 기회도 줄 수 있는 거잖아요? 그 경기가 끝나고 나니까 저에게 투수를 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이후에 다른 언더투수의 부모님이 왔다 가셨는데 그때부터 계속 투수를 못하게 하셨습니다.

충암고로 진학을 할 때 쯤에도 진학 결정이 다 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못갈 것 같다고 또 돈을 가져오라고 협박을 하시더군요. 어머니가 그때는 단호하게  “우리 집은 돈이 없습니다. 내 아들 보내려면 보내고 안되면 마십시요.” 하고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실제 형편도 해줄 수가 없는 상황이셨던 거죠.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 때 즈음 그 얘기를 어머니께 들었을 때 저한테는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독기를 품었죠. 고1 들어가자 마자 연습 다 끝나고 남아서 복근운동 천 개씩 하고, 스윙도 열심히 돌렸습니다. “내가 당신이 생각했던 그런 형편없는 선수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죠. 그래서인지 고교 1학년 말부터 팀의 에이스 투수가 되었고 그때부터 승승장구를 했죠.

Q 청구초등학교 강당에서 결혼식을 하셨죠?

 

A 저희 부모님께서 손감독님을 무척 존경하셔서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학부모회 임원을 꽤 긴 시간 동안 맡아서 하셨습니다. 결혼을 준비하고 있을 때 마침 학교에 강당이 생겼죠. 부모님께서 학교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시기에 그렇게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후배들이 유니폼을 입고 참석해줘서 좋았고 저에게도 무척 의미 있고 소중한 기억입니다.

박명환결혼사진

Q 손감독님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A 저는 도덕은 곧 용기라고 생각하는데요. 감독님께서는 참 용기있으신 분입니다. 기억을 돌이켜 보면 잘못하지 않은 일로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혼낸 적이 없으셨습니다. 혼난 일은 잘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도 야단을 맞으며 수긍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하셨어요. 편애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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