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비 퍼켓의 삶을 바꾼 한 번의 저녁 식사
1991년 월드시리즈 6차전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인 커비 퍼켓이 FA 협상과정에서 겪은 일화입니다. 그의 에이전트였던 론 샤피로는 ‘나이스 협상, 윈윈win-win 협상’을 모토로 내세우는 협상전문가로 1994년부터 2년에 걸쳐 진행된 메이저리그 선수파업을 중재하고 해결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책 <파워 오브 나이스>(미래의 창, 2001년 출간)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1992년 미네소타 트윈스의 커비 퍼켓은 FA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트윈스에 계속 머물고 싶어 했다. 우리는 미네소타가 수입이 적은 곳이기 때문에 그가 트윈스에 머물려면 희생을 해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협상을 시작할 때 제안 금액의 차이는 엄청나게 컸다. 우리는 커비의 가치가 5년 계약에 3,500만 달러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트윈스의 최초 제안은 3년 계약에 1,200만 달러였다. 1년에 받는 금액을 따져보면 700만 달러와 400만 달러로 차액은 상당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계약 기간이 5년과 3년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커비와 그의 가족은 미네소타에 남고 싶어했다. 여름 내내 나는 팀의 상임이사인 앤디 맥페일을 자주 만났다. 앤디 맥페일은 5년 2,800만 달러를 제안했다. 연 560만 달러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가 바라던 만큼 높지 않았으며 커비의 시장가치에도 미치지 않았지만, 트윈스의 힘든 재정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나는 커비에게 앤디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도, 받아들이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커비, 이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물었다. 커비는 큰 결정을 내릴 때 늘 그랬듯이 아내와 상의했고 오랜 고심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커비가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는 메이저리그 선수협회의 도널드 페르에게 연락을 했다. 도널드는 구단주들로부터 한푼이라도 더 짜내려는 사람으로 악명이 높았다. 도널드는 선수가 최상의 조건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트윈스가 제안한 금액을 말하자 도널드는 물었다. “커비, 그 금액에 만족해요?” 커비는 그렇다고 말했다. 도널드는 “그럼 받아들이세요.” 라고 말했다.
그때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구단주인 칼 폴래드가 앤디 맥페이 상임이사의 결정에 반발해 제안을 철회한 것이다. 커비의 실망은 대단했고 나 또한 낙담했다. 앤디도 자신이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가 성사되지 않자 상심했다. 협상은 어려움에 빠졌다. 가을 내내 별다른 변수가 발생하지 않았다.
마침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FA 시장에 뛰어들었다. 우리는 다른 도시들을 탐색했지만 마음이 변할 경우를 생각해서 트윈스 또한 배제하지 않았다. 나는 ‘사안에는 강력하게 대응하고, 사람은 부드럽게 대한다’는 개인적인 원칙을 따랐다.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 많은 팀들과 대화를 나눠본 결과 커비는 5년 3,500만 달러 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재정적으로만 보면 상황은 호전된 것이었다. 그러나 커비와 그의 아내는 미니애폴리스에 남고 싶어했다. 나는 11월 말에 앤디 멕페일에게 전화를 해서 “트윈스가 커비를 잃을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과정에서 벗어난 전환이 필요했다. 표준적인 협상방식으로는 도저히 진전이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칼 폴래드 구단주에게 식사를 하며 비공식협상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구단주 내외는 커비 부부와 나, 나의 동료인 마이클, 그리고 앤디 맥페일 상임이사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그날 저녁은 특별한 주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주 아름다운 저녁이었고, 와인과 훌륭한 음식이 준비된 멋진 식사였다. 우리는 내내 가족이나 사는 이야기를 나눴고 야구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밤이 깊어갈 무렵 구단주인 칼은 커비에게 “자네를 여기에 남게 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커비는 답했다. “공평하게 대우받기를 원할 뿐입니다.” 칼 폴래드 구단주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나는 커비 부부, 내 동료와 함께 커비의 집으로 가서 다음날 아침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까? 트윈스와 다시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늦지 않게 해낼 수 있을까? 당시 우리는 다른 팀들에게 확답을 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새벽 3시 30분에 나는 앤디 맥페일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협상이 잘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5년에 3,000만 달러 정도의 금액, 몇 십만 달러 정도의 경기 입장권, 커비의 자선사업을 위한 몇 가지 지원 등등.
그런데 4시가 넘어서 앤디가 전화를 해서 “됐어요!”라고 소리쳤다. 커비는 3,050달러와 자신이 돕는 아이들을 위한 티켓, 그리고 자신이 하려는 다른 일들에 대한 지원 등을 얻게 되었다. 나는 커비와 다시한번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했다. “앞으로 몇 주가 지나면 누군가가 3,500만 달러나 4,000만 달러를 받게 될 겁니다. 결정하기 전에 생각해 봐요.” 커비는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마 그러겠죠.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많이 받든지 간에 나보다 행복하지는 못할 겁니다.” 우리는 앤디 맥페일에게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협상의 과정에서 어려움에 빠졌다. 대안을 모색했지만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약간 예외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우리는 거래에 바로 뛰어들지 않고 대신 관계를 형성했다. 칼 폴래드 부부와 퍼켓 부부가 인간적인 관계를 맺은 것이다. 트윈스는 슈퍼스타인 커비의 가족을 미니애폴리스에 남도록 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1996년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자 커비는 4년째 계약년도에 접어들었고 자신의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커비의 오른쪽 눈의 시력이 빠른 속도로 감퇴했다. 7월에 메이저리그 선수로서의 그의 생명은 막을 내렸다.
그가 기자회견장에서 은퇴선언을 하자 선수들과 기자들, 구단 관계자들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커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오른쪽 눈에는 구름이 꼈을지 모르지만 왼쪽 눈에는 햇빛이 항상 빛나고 있으니까요.”
은퇴 후에도 그에게는 많은 제안들이 들어왔다. 커비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모든 곳에서 기회를 제공하는 듯 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칼 폴래드 구단주였다. 그는 커비가 트윈스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뿐만 아니라 커비가 폴래드의 다른 사업체에서도 일할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1992년 11월에 했던 저녁식사는 야구계약 한 건만을 해결한 것이 아니었다. 두 가족의 관계를 돈독히 만들었고, 단순한 거래를 뛰어 넘어 커비의 은퇴 후에도 지속된 것이다.
론 샤피로
1994년부터 1995년까지 2년 간 벌어졌던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파업을 해결한 것으로 유명한 스포츠 에이전트. 칼 립켄 쥬니어, 조 마우어 등이 그의 고객이었다. 샤피로 협상 연구소의 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