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독립구단, 그리고 학생선수의 공부

살다보면 나의 생각을 대신 말하는 것 같은 분을 만나곤 하는데 저에게는 신동윤 애슬릿미디어 이사님이 그렇습니다. ‘토아일당’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하신 분이죠. 독립구단, 그리고 운동선수의 공부와 관련한 신이사님의 견해에 저도 대부분 동의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안좋은 조건이 되겠지만 프로로 가는 문이 지금보다 훨씬 더 좁아질 때(팀별 3명, 전체 30명 정도) 오히려 학원스포츠가 정상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감히 어릴 때부터 공부를 포기할 엄두가 나지 않도록 말이죠.


 

(긴글.입니다)

1년쯤 되었나요. 무슨무슨 독립구단이 만들어졌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왔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근데 연천, 파주, 양주 뭐 이런 지역이라길래 (순진하게도) 독립구단 연고지 치고는 너무 외지지 않나? 그래도 사람들이 보러갈려면 소도시 근방이라도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뭐 이런 생각만 했었지요.

그런데, 알고보니 독립구단이란 이름을 갖긴 했지만, 프로 재수를 위한 야구학원이더군요. 얼마라도 월급을 주는 구단이 아니라 선수들로부터 회비를 받고 야구를 가르쳐주는 학원이었습니다. 지금당장 월급을 못주는건 그럴수있겠는데, 앞으로도 월급 주는 모델로 갈 계획은 없어보였습니다.

내세우는건, 좋은 코치가 있다, 많은 경기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사설레슨장 다니는것보다 오히려 싸다. 무엇보다 프로출신 인맥있는 관계자가 있으니 프로테스트 소개를 잘해주겠다. 그것들이 “수강료를 받는” 독립구단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꼴찌들을 위한 마지막 패자부활전. 많이 듣는 이야기죠. 우리 사회는 이런 식의 도전을 참 좋아하시도 합니다. 개천용의 전설. 하지만 개천이 그대로 남으면 용이 한둘 쯤 나온들 무슨 소용일까요.

어떻게든 야구로 밥먹을 기회를 찾고 싶은 개개인의 절박함을 나무랄 일은 아니고, 어떤 면에서 그런 수요가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공급이 생기는 걸 탓할 일도 아니긴 하죠. 그런데 이게 “야구”에 이로운 일은 아닌거 같네요. 물론 야구에 이롭든 말든, 개개인의 노력을 옳다 그르다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법하고 해로운 비즈니스가 아닌 한에 그런 사업을 하는 분들이 비난받을 이유도 별로 없고요.

선수들을 속였다거나 허위광고였다거나 하는 말도 들리지만, 원론적으로는 그 또한 개개인의 책임 영역에 속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법한 게 있었다면 또한 그에 따른 절차가 있을거구요. 처음이라 서로 정체를 몰라서 그랬다면, 한두해 지속되며 실적이 드라나면서 옥석은 가려지겠죠. 프로재수학원으로서의 옥석.요.

고교야구, 대학야구 더 나아가 독립구단 같은 영역에서, 프로지명을 받지 못하는, 혹은 프로지명을 받았다가도 부적격 판정을 받고 밀려난 이들에 대한 논의는 많습니다.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가 끝나고나면, 고교선수가 몇명이고 기껏 몇%밖에 지명받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식의 기사를 꼭 나옵니다. 최근부터는, 대졸 드래프티 숫자가 급감하며, 프로구단이 의무적으로 대졸선수 몇명 이상을 지명해야 한다 퀴터제 의견도 있더군요. 반면, 프로구단은 오히려 선수보유숫자를 좀 줄여나가는 분위기 같습니다. 또 프로선수들의 몸관리가 더 철저해지면서 선수생명이 길어지면 당연하게도 주전자리를 그만큼 줄어들겁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그런 방안들이 전부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몇명이나 더 프로지명을 받게 될까? 일년에 5명? 10명? 15명? 고교선수 중 프로지명 받는 비율을 늘리고 싶다면 더 쉬운 방법이 있죠. 고교선수를 줄이면 됩니다. 그게 답인가요?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게 답을 찾게될지도 모르죠. 그렇게되면 고교선수 중 50% 쯤 프로에 가게 될지도. 이미 배구 같은 종목은 그렇다는거 같구요. 설마 이게 답은 아니겠죠.

반대편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는 “프로지명을 받지 못해도 다른 진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평소에 학교공부를 시켜야 한다”입니다. 그리고 주말리그나 수업의무참석 같은 조치들이 실행됩니다. 원칙적으로 맞는 방향이라 생각하긴 하지만, 아젠다를 약간 달리 기술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운동선수도 공부를 해야 한다” 죠. 이게 틀린 말은 아닐테지만 여전히 주어가 “운동선수”입니다. 그들이 어찌어찌 잘 살까. 그들이 어찌어찌 더 행복해질까. 틀린것도 잘못된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아젠다는 더이상 넓어지지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 안에 갇힐겁니다. 그들이 행복하든 말든 그밖의 다른 사람들이랑 별 상관이 없거든요. 또 기껏 수천명에 불과한 [특정한 직업지망생]들을 위해 사회적 자원이 투입된다는 논의는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사리에도 안맞구요.

주어가 바뀌면 좋겠습니다. [야구선수]가 아니라 [야구]로. 그래서 “운동선수를 어떻게 공부시킬까”가 아니라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이 야구를 즐기게 할까”로.

야구선수가 주어면, “어떻게 야구선수를 공부시킬까”가 되지만, 야구가 주어가 되면, “어떻게 프로지망이 아닌 학생(성인)들이 야구를 할 수 있게 할까” 가 됩니다. 공부와 스포츠의 병행인 것은 같지만, 선후가 바뀝니다. 운동선수를 강제로 공부시키는 것이 아니라 운동이 공부와 병행될 수 있는 것으로 바뀌는게 순리니까요. 운동선수가 바뀌는게 아니라 운동이란게 바꿔야 되는거니까요.

학교스포츠에 대해 많은 분들은, 학생선수 공부시키는걸 이야기하지만 반대로, 공부학생이 스포츠에 참여하는것도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휠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엘리트선수 아닌 학생이 운동할 수 있게 되면, 야구가 그런게 되면 — 학생선수 공부하는 문제도 한꺼번에 풀리게 될거에요. 학생선수도 결국, 공부-운동 병행이 가능한 [바로 그 야구]를 하게 되니까요. “어떻게 더 많은 이들이 야구를 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대답이 아주 명확해집니다.

때리지 말아야죠. 야구가 재미있어져야죠. 하루 2-3시간 정도의 운동시간으로 필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트레이닝방법을 개발해야죠. 그러면서도 다른 예체능 특기생들 따로 교습받는 것처럼, 더 높은 수준을 노리는 학생들을 위한 레슨 프로그램도 개발되어야겠죠. 그렇게되면 학교팀 지도자는 교사에 더 가까워질 것이고, 더 전문적인 기술은 외부 전문가들이 담당하는 역할분담이 되어지겠지요.

내 아이가 혹시 야구를 하더라도, 프로입단에 실패하면 나중에 다른 가능성이 열려있는 야구가 아니라요, 내 아이가 프로에 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참여할 수 있는 야구요. 학생선수를 교실에 가두지 말고, 다른 학생들을 교실에서 풀어주고 운동장에 나갈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이런 논의가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에는 주어가 있습니다. “야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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