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피칭을 상상할 수록 실제 경기는 힘들어진다 (요시이 마사토)

완벽주의는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자기가 가진 실력을 경기장에서 온전히 쏟아내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요시이 마사토 감독의 책 『가르치지 않아야 크게 자란다』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선수들 중에는 소심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이 있다. 대체로 중요한 상황에서 경기를 잘 풀어나가지 못하는 선수에게 그런 꼬리표를 붙인다. 그런데 사실 그런 선수들은 얻어맞는 게 두렵다기 보다 완벽한 공을 던지려고 자기 자신에게 의식이 쏟아져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메이저리그에서 ‘치킨(소심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투수들을 혼자서 조사해본 적이 있다. 그런 선수들은 항상 자신이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존의 구석을 정확히 찌르면서 포수 미트에 ‘팡’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들어가는 상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좋은 투구폼으로 던져야 그런 공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피칭 동작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다.

투수의 피칭 동작은 평소에 수많은 연습을 통해 이미 자동화된 움직임이다. 굳이 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동작에 주의를 쏟게 되면 자동화된 투구폼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투구폼이 무너지며 제구가 안 되거나 공이 한 가운데로 몰려 들어가는 일이 벌어진다. 지금까지 일본의 투수들을 코치로서 관찰해온 경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도 소심하다고 불리는 투수, 즉 위기 상황이나 중요한 순간에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투수에게는 이러한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습 때는 자신을 의식해도 좋다. 그렇지만 경기를 할 때는 다른 무엇보다 지금 상대하고 있는 타자에 집중해야 한다.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동작이나 메카닉에만 빠져 있으면 상대하는 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이른바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경험이 적은 불펜투수가 위기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가면 이런 패닉 상태에 빠지기 쉽다. 한 점도 내주어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강할 때 자신의 동작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된다.

다니모토 게이스케가 젊었을 때 그런 선수였다. 너무 구석구석으로 던지려고 하다가 볼이 많아지면서 카운트가 불리해지곤 했다. 카운트가 몰리고 나서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가운데로 던졌다가 얻어맞는 패턴을 되풀이했다. 변화를 주기 위해 다니모토를 선발로 써보기로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일본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퀄리티 스타트’라는 지표가 있다. 선발투수가 6회 이상 던지고 자책점 3점 이내로 막으면 ‘퀄리티 스타트’를 했다고 말한다. 선발투수의 ‘합격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선발투수의 휴식일이 4일인 메이저리그에서는 100개 정도를 한계 투구수로 본다. 한편 일본에서는 6일 휴식 후에 던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금 더 던지는 편이다. 투구 이닝도 대체로 미국보다는 길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처럼 6이닝 3자책만 하면 좋은 피칭을 했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2이닝에 한 점 꼴로 막아낸 셈이니 선발투수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다니모토에게 ‘퀄리티 스타트’라는 개념에 대해 알려주었더니 점수를 어느 정도 내줘도 된다는 생각을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마인드로 선발을 잠깐 하고 다시 불펜으로 돌아갔더니 이전보다 더 대담한 피칭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성적도 더 좋아졌다. 이후에 오랫동안 니혼햄 파이터스의 핵심 불펜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중요한 메시지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경기에서 선수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런 선수는 의식이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향하게 된다. 벤치에서 보면 선수가 그런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선수 자신은 좀처럼 알지 못한다. 그래서 경기 다음 날에 ‘되돌아보기’ 작업을 해야 한다. 어제는 어떤 감각으로 던졌는지, 마운드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났는지, 선수 스스로 모조리 끄집어내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선수는 자신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어떤 마음 상태에서 공을 던지면 실패하게 되는지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투수가 최고의 공을 던졌다고 하더라도 타자가 그 공을 노리고 있었다면 맞을 수밖에 없다. 타자도 투수의 구종 정보와 볼배합 패턴 등을 미리 공부하고 타석에 들어온다. 풀카운트에서 바깥쪽 낮은 코스로 완벽하게 들어가는 패스트볼을 던져도 바로 그 공을 타자가 노리고 있었다면 싱겁게 맞아 나갈 수 있다.

이 때 풀카운트가 될 때까지 타자의 스윙과 몸짓 등을 유심히 관찰했다면 타자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바깥쪽 낮은 코스를 노리고 있을 것 같다는 힌트를 얻은 투수는 몸쪽으로 던져서 타자를 아웃시킬 수 있다. 이때는 가운데에 들어가도 좋다는 마음으로 몸쪽을 향해 던져도 된다. 이렇게 상대에 초점을 맞춘 수싸움은 자신의 투구폼이 아닌 상대에게 마음이 가 있어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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