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잘하고 싶다면 때로는 야구로부터 벗어나자 (김병준)
“입스가 온 뒤로 제 머릿속은 온통 송구 생각뿐이었어요. 길을 지나가는 데 가게 간판들이 온통 타겟으로 보여서 거기에 정확히 못 던지면 큰일 날 것처럼 무서웠습니다.”
“저는 정말 간절하게 야구만 했어요. 그러다 보니 실수 하나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며 집착하게 되더라고요. 왜 그때 송구 에러를 했을까, 왜 삼진 먹었을까, 왜 시합에서 내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했을까..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나서 멘탈이 무너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입스가 왔는데, 이제는 도저히 못 버틸 지경까지 와버렸어요. 오로지 야구만 했는데 왜 저한테 이런 시련이 오는지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합니다.”
어느 날 심한 송구 불안증세로 찾아온 프로선수가 있었다. 학생 때부터 온종일 훈련에 매진했지만, 신인 때부터 찾아온 1루 송구 입스로 수비가 불안정해지면서 투구에 제대로 집중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증세는 점점 더 심해졌고, 송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상담을 통해 내면에 불안한 감정을 마주하고 치유해나갔지만, 무엇보다 이 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야구 자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훈련이 쉬는 날까지 모교에 찾아가서 공을 던지는 습관을 버리고,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농구도 하면서 야구가 아닌 다른 활동을 즐기게끔 했다. 여자친구도 사귀고 책도 읽으면서 취미 생활로 기타도 배웠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야구에 대한 집착은 줄어들었고, 송구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플레이에 여유가 생기면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야구로 받은 스트레스를 야구로 풀려고 했어요. 야구 말고 다른 일에 정신이 뺏기면 큰일 날 줄 알았거든요. 그런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라왔고.. 야구뿐인 저에게 야구가 제대로 안 되는 날이면 정말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근데 이제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기타를 치거나 야구와 상관없는 활동을 해요. 그러다 보면 잡생각도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지더라고요. 야구를 하지 않음으로써 야구를 잘하게 되는 방법을 조금은 터득한 것 같아요.”
과거 ‘양태공’이라는 별명이 있었던 삼성라이온즈 레전드 양준혁 前 선수는 야구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낚시를 하고 오면, 다음날 이상하게 공이 잘 보였다고 한다. “월척을 낚았을 때의 손맛은 큰 홈런을 쳤을 때의 짜릿함과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많은 프로선수가 즐기는 골프는 (비록 트레이닝적으로 좋지 않을 수 있지만) 넓고 푸른 잔디를 거닐며 심적인 여유와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종목선수들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유럽 최고의 골키퍼였던 페트르 체흐(Čech)의 취미는 드럼이었다. 유튜브 전용 채널도 있고 실력도 수준급이다. 그는 드럼을 치는 것이 멘탈 관리와 골키퍼 실력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랭킹 1위를 달성했던 신지애 골퍼의 취미 또한 음악이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고 직접 음반까지 냈던 그녀는 음악을 통해 리듬과 타이밍을 맞추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음악이 운동선수들의 리듬과 템포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결과에서 확인되기 때문에 여러 종목의 선수가 음악을 통해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다.
사격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진종오 선수의 취미는 낚시와 독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낚시를 다니며 찌를 노려보는 습관이 표적을 정확히 응시해야 하는 사격 선수의 집중력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또한, 그는 어딜 가나 책을 들고 다니며 독서를 즐긴다.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인터뷰에서 “독서가 집중력과 기록향상에 많은 도움이 됐다. 복잡한 생각을 한 방에 떨치는 데 책이 최고”라고까지 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몰입이 가장 쉽게 일어나는 분야가 바로 놀이다. 야구선수로서 성공하려면 야구에만 매진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직 야구만을 생각할수록 실수에 대한 집착은 심해지고, 생각 없이 무의식에 내맡겨야 할 순간에도 감정에 휘둘리게 되기 때문이다.
야구와 관련 없는 놀이나 취미 생활을 통해 야구 스트레스를 환기하며 몰입하는 느낌을 되찾아가는 것도 퍼포먼스를 유지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온종일 야구만 생각하고 공에 집착하는 것보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며 자신 있게 나만의 플레이를 해보자. 그럼 야구가 더 잘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글 : 김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