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지시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이지풍 한화 이글스 수석 트레이닝 코치의 신간 <뛰지마라 지친다>(한빛비즈) 36쪽부터의 내용을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구하고 코치라운드 뉴스레터에 소개한 글입니다.

​요즘 골프인구가 많이 늘고 있다고 한다. 소득수준이 높아 지면서 자연스럽게 골프가 대중 스포츠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골프장에 가면 라운딩 하는 동안 비용을 지불하고 무조건 캐디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캐디가 하는 일은 보통 클럽을 닦아주고 가져다주고, 골프장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예컨대 첫 번째 홀인 1번홀 티박스로 이동하면 캐디가 이야기를 해준다. ‘왼쪽은 해저드고 오른쪽은 OB입니다. 오른쪽은 보이는 것보다 가 보면 생각보다 넓어요.’ 이런 정보를 골퍼들이 티박스에 올라가기 전에 보통 알려준다. 첫 번째 티샷을 하는 골퍼가 티샷을 하기 위해 티를 꽂고, 공을 올려놓은 다음 목표지점을 바라보고 자세를 잡는다.

​이때 누군가 장난이든 고의든 시쳇말로 ‘야지’(야유)를 넣는다. 보통 하는 장난으로는 캐디가 얘기한 정보를 다시 읊어준다. “캐디님, 왼쪽이 해저드에 오른쪽이 OB맞죠?” 이런 ‘야지’를 들으면 티샷을 준비하는 골퍼는 실수를 한다. 물론 아주 잘 치는 골퍼는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사실 이 사람은 방금 전에 캐디가 알려준 정보를 다시 얘기한 것뿐이다. 하지만 티샷을 준비하는 골퍼에게는 엄청나게 영향을 미친다.

​누구나 계획이 있다

​우리는 흔히 정보를 전달하면 결과에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스포츠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야구중계를 보다 보면 대기타석에 있는 선수에게 다가가서 얘기하는 타격코치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선수들에게 무슨 얘기하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쳐라’ ‘몸 쪽 공 조심해라’ ‘투수가 바깥쪽 슬라이더(투수가 던지는 변화구 중 하나로, 옆으로 휘는 것이 특징) 던지고 체인지업(투수가 던지는 변화구 중 하나로 직구와 비슷하게 오지만 속도가 달라 타자의 타이밍을 뺏을 때 사용하는 구종) 던진다’ 등의 많은 정보를 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당연히 선수가 알고 있는 정보들이다. 게임 시작 전 대부분의 팀들은 전력분석 미팅 시간을 가진다. 그 시간에 상대할 투수에 대한 정보를 전력분석원이나 타격코치가 알려준다. A라는 선수가 던지는 구종, 구종별로 구속은 어느 정도 나오는지 등등. 그런데 이런 정보를 전달했음에도 게임 중 다시 정보를 전달하려고 한다. 거의 모든 팀에서.

​선수들은 대기타석이나 더그아웃에서 상대할 투수를 어떻게 공략할지 나름 계획을 세우고 타석에 들어선다. 게임 전 전달받은 정보와 그동안 본인이 상대했던 경험을 토대로 계획을 수립한다. 하지만 그렇게 대기타석이나 더그아웃에서 집중하고 있는 선수에게 지도자들은 또다시 정보를 주입한다. 이럴 때 선수들은 아주 혼란스럽다고 한다.

​예를 들면 A라는 투수가 던지는 구종이 직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인데, 타자는 예전에 경험해보니 직구 타이밍에 직구와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모두 상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커브는 머릿속에서 지우고 상대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타격코치가 대기타석으로 와 ‘직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던지니까 알고 있어’라든지, ‘커브는 원바운드(땅바닥에 닿고 나서 포수가 잡는 공)가 많으니 조심해’라는 얘기를 한다. 이러면 원래 선수가 세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확률적으로 타석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 힘들어진다. 타격코치들도 선수 시절 이렇게 얘기하는 타격코치들을 보통 싫어했는데 자신들이 코치가 되어서는 왜 그러는 걸까.

​예전 한 외국인 선수에게 ‘우리나라 코치들은 게임 중에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많은 정보를 계속 얘기하는데 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면 코치들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거냐’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대답은 ‘줘야 하는 정보를 게임 전에 주고받았다고 코치와 선수가 서로 믿는다’는 것이었다.

​그때 난 깨달았다. 왜 우리나라 코치들은 정보를 계속 얘기할까? 얘기를 안 하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선수는 불안해하지 않는데, 코치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타자가 아까 얘기했던 정보를 알고 있을까?’ 이 걱정이 많은 말을 하게 만든다. 또한 게임 중 얘기할 정보가 많다는 건 그만큼 게임 전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지도자의 불안함으로 티샷을 하기 위해 서 있는 골퍼에게 ‘야지’ 넣듯이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코치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단순히 코치들의 불안 때문에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게임 중 선수들에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구단 프론트에서 난리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가 이렇게 못 치는데 타격코치는 하는 거 없이 왜 맨날 가만히 있냐고.”

​좋은 코치는 선수들이 물어볼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코치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정보는 굳이 전달할 필요가 없다. 만약 처음 가는 골프장에서 캐디가 얘기해준 정보가 생각나지 않으면 티샷하기 전에 다시 묻듯, 선수들도 타석에 들어가기 전 타격코치에게 투수에 대한 정보를 다시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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