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 문화의 위험

심리학자이자 조직행동 전문가인 칼 웨익Karl Weick은 공수 소방대원과 산불 진화 대원의 죽음에 뭔가 특이한 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이 장비를 버려야만 빠르게 닥쳐오는 불길을 피해 달아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장비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웨익은 그런 행동이 더 큰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1949년 몬태나주의 만굴치 산불은 노먼 매클린Norman Maclean의 『젊은이들과 불Young Men and Fire』을 통해 유명해졌다. 공수 소방대원들은 〈10시 화재〉일 것이라고 예상하고서 낙하산을 폈다.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는 불길을 잡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협곡의 한쪽에서 타고 있던 불이 협곡을 건너서 대원들이 있던 가파른 비탈로 옮겨 붙었다. 불길은 초속 3.4미터의 빠른 속도로 메마른 풀들을 태우면서 비탈을 따라 올라왔다.

현장 지휘자인 와그너 도지WagnerDodge는 대원들에게 장비를 버리라고 소리쳤다. 두 명은 즉시 장비를 내려놓고 산등성이까지 전력으로 달려서 안전하게 피했다. 그러나 다른 대원들은 장비를 지닌 채 달리다가 그만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한 명은 달리다가 너무 지쳐서 그냥 주저앉았다. 등에 진 무거운 장비를 벗을 생각도 못한 채였다. 대원 열세 명이 사망했다. 만굴치 비극은 안전 훈련의 개선으로 이어졌지만, 그 뒤로도 산불 진화 대원들이 장비를 버리지 못해 불길에 휩싸이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장비를 내려 놓지 못한 소방관들

1994년 콜로라도주 스톰킹산에서 공수 소방대원들과 산불 진화 대원들은 만굴치 때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 불길이 골짜기를 건너뛰어서 그들의 아래쪽 감벨참나무 숲에 옮겨 붙었다. 한 생존자는 골짜기에서 〈제트기가 이륙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고 했다. 남녀 열네 명이 밀려오는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시신 수습 작업의 분석 보고서에는 〈한 희생자는 여전히 백팩을 메고 있었다〉라고 적혀 있었다. 〈희생자는 손에 사슬톱을 들고 있었다.〉 그는 안전지대에서 겨우 75미터 떨어진 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인 쿠엔틴 로즈Quentin Rhoades는 산 위로 270미터나 달린 뒤에야 「내가 아직도 어깨에 톱을 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톱을 내려놓기 위해 불이 붙지 않을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어요. (……) 내가 톱을 내려놓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나요.」

미국 산림청과 국토관리청은 대원들이 처음부터 장비를 내려놓고 달렸더라면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1990년대에 네 건의 화재에서 유능한 산불 진화 대원 스물세 명이 장비를 버리라는 명령을 거부하다가 장비와 함께 스러져 갔다. 로즈는 이윽고 사슬톱을 버리긴 했지만, 톱을 내려놓으면서 왠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웨익은 해병들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배를 버릴 때 앞쪽에 강철을 덧댄 안전화를 벗으라는 명령을 무시했다가 물속으로 가라앉거나 구명정에 구멍을 내곤 했다. 또 전투기 조종사들은 고장 난 비행기에서 탈출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고공 줄타기 곡예사인 칼 월렌더는 줄 위에서 기우뚱했을 때 발아래 줄을 잡는 대신에 균형 봉을 잡는 바람에 35미터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그는 떨어지면서 봉을 잠깐 놓쳤다가 공중에서 다시 잡기도 했다.

웨익은 이렇게 썼다. 〈자신의 도구를 버린다는 것은 배운 것 잊기, 적응, 융통성을 상징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도구를 내려놓기를 꺼리는 태도 자체가 이런 드라마를 비극으로 바꾼다.〉

그가 볼 때 소방대원은 바로 그런 사례인 동시에,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에는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이 믿는 방법을 고집함으로써 때로 당혹스러운 결정을 내리곤 하는 사례를 연구하면서 알아낸 것들의 비유 역할도 했다. 웨익은 노련한 집단이 항공기 사고든 화재 사고든 간에 낯선 상황에 처했을 때 적응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경직된 태도를 보이며,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낯선 상황을 감싸서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양 집단 전체가 한 마리의 고슴도치처럼 행동했다. 마치 그렇게 하면 실제로 앞서 경험했던 것이 된다는 듯 말이다.

산불 진화 대원들에게는 소방 장비야말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이다. 웨익은 이렇게 썼다. 〈진화 장비는 소방대원에게 자긍심을 부여하며, 애초에 소방대원을 출동시키는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장비가 소방대원의 본질을 정의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장비를 버리는 행위가 실존적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매클린은 간결하게 표현했다. 〈소방대원에게 진화 장비를 버리라는 말은 소방관임을 잊으라는 말과 같다.〉 웨익은 산불 진화 대원이 확고한 〈하면 된다can do〉 문화에 소속되어 있으며, 장비를 버리는 행동은 그 문화의 일부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불을 통제할 능력을 잃는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쿠엔틴 로즈의 사슬톱은 소방대원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일부가 되어 있었기에, 자신의 팔이 여전히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톱을 여전히 들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톱을 계속 들고 뛴다는 것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졌을 때에도, 로즈는 자신이 장비를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글 : 데이비드 엡스타인

‘열린 책들’에서 출간한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344~347쪽에 게재된 내용을 해당 출판사의 허락을 구하고 우리야구 11호에 소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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