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언어로 담기엔 너무나 오묘한 세계

하루키만큼이나 우리나라에서 많은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단편소설 <공중그네>에는 이라부라고 하는 괴짜 정신과의사가 등장한다. 소설은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가진 삶의 문제들을 의사 이라부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를 감각적인 문장으로 유쾌하게 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신이치라고 하는 올스타급 프로야구선수도 등장하는데, 괴짜 의사 이라부가 야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툭 내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공중그네

“근데 말야. 야구는 생각하면 할 수록 독특한 스포츠란 말이지. 둥근 공을 둥근 방망이로 치잖아. 테니스나 탁구는 라켓이고, 배구는 손인데, 최초로 야구를 한 사람은 틀림없이 희한한 인간이었을 거야.

그리고 공을 보고 친다고는 하지만, 임팩트 순간까지 보는건 아니잖아. 하긴, 끝까지 보면 공을 치기엔 너무 늦지. 다시 말해서 시속 150km로 날아오는 공을 적당한 지점에서 코스를 파악하고, 그 다음엔 감으로 휘두르는 게 배팅이잖아. 그러니까 방망이 중심에 공을 맞추는 것도 확률로 따지지면 몇만 분의 일에 불과한 거지.”

주인공인 이라부는 ‘공을 끝까지 보고 친다’는 야구의 통념에 트집을 잡는다. 그러면서 배팅은 감(感)으로 치는 거라고 올스타 프로야구선수 앞에서 감히 타격이론을 늘어 놓는다. 감(感) 내지는 감각이라는 단어는 우리 스포츠 문화에서 무척 낯선 단어다. 선수들은 대체로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 감(感)이라는 요소보다 눈에 분명히 보이는 동작과 자세에 초점을 맞춰 훈련을 한다.

하지만 이라부의 말처럼 어느 시점부터 타자는 날아오는 공을 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볼 수가 없는 공을 방망이가 따라가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딱히 감(感)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오로지 타격이론 한 우물만 파느라 펑고 치는 법도 모르는 타격코치가 되었다는 ‘용달 매직’ 김용달 KBO 육성위원은 타격자세를 만드는 것 만큼이나 감각을 키우는 훈련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을 끝까지 보라’는 지시가 선수들의 ‘감’을 오히려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지도자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볼을 끝까지 보라는 말인데요. 그런데 실제 컨택을 하는 구간에서는 볼을 볼 수가 없어요. 앞 구간의 잔상을 가지고 타격을 하는 거지요. 볼만 열심히 보려고 하면, 그러니까 컨택이 이루어지는 구간만 보려고 하면 실밥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러면 타격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자꾸 볼을 끝까지 보고 치라고 하니까 중요한 정보를 얻어야 하는 앞 구간에서의 선구안이 떨어지는 겁니다.”

김위원은 타자가 스윙을 하기 위해서는 투수에 온 감각을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코치가 “뒤에서 쳐! 공 끝까지 봐!” 이렇게 지시를 하게 되면 코치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평상시 몸에 장착한 감각의 문을 닫아버린다는 것이다.

(관련 인터뷰 영상)

그렇다면 ‘공을 끝까지 본다’는 메시지는 효과적인 타격을 방해하는 잘못된 지침으로 마땅히 사라져야 할까? 야구계에는 ‘공을 끝까지 본다’ 내지는 ‘하체를 써서 던진다’처럼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수많은 잠언들이 존재한다.

이것들은 어쩌면 매뉴얼과 같은 구체적인 지침이라기 보다는 수많은 신화에 등장하는 비유와 상징일지도 모른다. 신화들이 비유와 상징을 통해 저마다의 사람들에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교훈을 던져주듯, 야구장에서 사용하는 이런 메시지들도 야구라는 세계에 던지는 일종의 메타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감’의 세계를 언어라는 틀로 담아내기에 야구는 너무나 오묘하기에..

코치의 말을 ‘큐잉cueing’이라 부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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