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주제를 알아야지”

얼마전 대학졸업반이 되는 한 야구선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동안 운동을 하며 지도자나 부모님의 말로 인해 마음에 상처가 되었던 순간이 있었는지 묻자 고등학교때 감독님께서 한 말씀을 떠올리더군요. 

고3 올라가는 겨울방학동안 전지훈련을 가게 되었는데 저녁에 감독님께서 3학년들을 모아놓고 말씀을 해주시는 자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감독님께서는 프로에 가고 싶은 사람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선수가 솔직한 마음으로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감독님이 이 선수를 향해

“니가 지금 이 실력으로 갈 수 있겠어? 니 실력을 알고 주제를 알아야지!”

라고 하시며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고 합니다. 이 선수는 그냥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을 뿐인데 많은 친구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자 너무나도 창피하고 억울했다고 합니다. 물론 감독님께서는 졸업반인 제자가 조금 더 노력해서 실력을 끌어올렸으면 하는 바램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 선수에게 그 당시의 마음이 어땠는지 묻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기기 보다는 오히려 감독님이 밉고 ‘내가 친구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가며 운동을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의욕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감독님은 시합에 나가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면

“너 이렇게 하다가는 시합 못뛴다. 후배들이 뛸 수도 있으니까 똑바로해라”

라며 야단을 치셨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 선수는 ‘내가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계속 혼이 나야하나’ 생각하며 더더욱 의기소침해졌다고 합니다.

감독님의 말씀은 분명 제자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선한 의도였을 것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동기를 일으키고자 하는 감독님의 숨은 메시지는 비판적인 표현과 냉담한 분위기 속에 파묻히며 선수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경기를 보다 보면 끊임없이 감독, 코치의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실수를 하게 되면 누가 부르는 사람도 없는데 습관처럼 그 자리에 서서 감독님의 꾸지람을 들으려고 기다리기도 합니다. 

이제는 지도자분들이 운동하는 아이들의 물리적 안전 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전에도 주의를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몸을 마음껏 던져도 다치지 않는 환경에서 운동을 할 때 운동기술이 늘어나듯이 선수의 마음도 다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아나섭니다. 누가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모든 아이들에게는 더 나은 실력을 갖추고 싶은 욕구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모든 배움의 과정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나 코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만큼 성장과 발전을 위한 자연스러운 노력은 방해받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독일축구의 레전드이며 지난 월드컵에서 미국대표팀을 맡았던 위르겐 클리스만은 얼마전 미국의 유소년축구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코치가 어린 선수들에게 부정적인 말을 해서 상처를 주게 되면 그것을 본래의 상태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13번의 칭찬의 말이 필요하다.”

지도자의 말이 얼마나 어린 선수들의 성장과 잠재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강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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