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목표정하기 작업

다음주면 새학기가 시작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야간 훈련도 시작할테고 소년체전 예선과 춘계리그를 시작으로 매일매일 희비가 교차하는 시간을 보내겠네요. 그동안은 그냥 재밌게 운동하면 된다 생각하고 시즌이 시작할 때 특별한 주문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목표’라든지 ‘계획’과 같은 개념을 소개해 주고 싶었습니다. 저 스스로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에 그다지 강조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목표로 삼아봐라.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려면 이런 것들을 해야겠지.” 이렇게 저의 바램을 말해봐야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탐구해 볼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질문들을 준비해서 대화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기본적인 틀은 http://www.stack.com/2012/06/12/teach-athletes-goal-setting 이곳에서 소개하고 있는 프로세스가 마음에 들어 활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적 있는 <자기변형게임>의 맥락들을 덧붙였습니다. 가급적 제안이나 조언을 하려고 하지는 않았고, 질문을 던지고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답답하고 속이 부글거려 멱살잡을뻔 했네요.ㅋ 시간을 체크해 보니 대략 30분 정도 걸리더군요. 다른 부모님들도 한번씩 해보시고 내용을 나눠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질문을 하기 전에 ‘결과목표result goal’와 ‘노력목표effort goal’의 차이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오늘 경기를 이기겠다’, ‘삼진을 5개 잡겠다’, ‘안타를 2개 치겠다’ 이런 것들이 결과목표입니다. 결과목표는 승패나 점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달성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상대팀이나 상대선수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나 운동을 막 시작한 아이에게 결과목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극이 되기는 커녕 좌절하기 쉽습니다. 반면 ‘땅볼을 치고 1루까지 최선을 다해 뛰겠다’, ‘친구가 에러를 하면 괜찮다고 손을 들어 격려해주겠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는 스윙을 힘차게 돌리겠다’ 이런 것들이 노력목표입니다. 상대와 관계없이 스스로 통제가능한 행동을 목표로 삼는 것이죠. 이런 개념들을 먼저 알려주고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목표
(1)  올해 내가 원하는 것은?
– 목동야구장에서 경기하는 것
이 질문을 던지자 “꼭 노력목표여야 해?”라고 묻더군요. 그럴 필요 없고 그냥 떠오르는대로 아무거나 적어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괜히 결과목표, 노력목표 이런 것들을 떠들었다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여기서는 의식이 자유롭게 펼쳐지도록 놔두는게 중요하니까요.
뜻밖에 목동야구장에서 시합을 하고 싶다고 적더군요. 목동야구장에서 시합을 한다는 것은 전국대회 4강을 뜻합니다. 작년에는 상인천중학교에게 져서 16강에서 떨어졌습니다.
계속 적어보라고 하니 교육감기를 뛰지 않는 거라는 다소 황당한 목표를 꺼냈습니다. 교육감기가 9월에 있으니 그 대회를 뛰지 않으려면 봄부터 여름까지의 성적이 좋아야 하는 것이죠. 1학기에 성적이 좋았던 팀들은 대개 교육감기부터 2학년 위주로 시합을 하니까요. 9월부터 신나게 놀고 싶은가 봅니다.
더 이상 적지 못하길래 제가 경기 중에 가질 수 있는 목표는 뭐가 있을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한 경기에서 2점 이내로 막는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제 맘에 썩 들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대로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타자로는 한 경기에 안타 하나라는 소박한 바램을 적었습니다. 이것도 제 입장에서는 성이 차지 않았지만 딱히 내색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ㅠㅠ
(2) 나는 왜 그것을 원하는가?
–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야구하고 싶다.
앞서 적은 몇가지 목표들을 가지고 그 이유들을 하나씩 물었습니다. 목동에서 경기를 하면 전교생이 와서 응원을 할 거라고 말하더군요.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공을 던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럼 어떤 기분일 것 같냐고 묻자 너무나 기분이 업되고 흥분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조금 더 그 느낌을 불러 일으키려고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친구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고 했는데 딱히 누가 생각나지는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그냥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문득 관중없이 부모들만 지켜보는 경기장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이 짠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좋은 성적이 나야 이름이 알려지고, 그러면 고등학교 감독님이 이쁘게(^^) 봐주셔서 나중에 진학을 했을 때 덜 고생하지 않을까 말했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지더군요.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3) 그렇다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 팀동료가 에러를 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던진다.
이 질문에 이것저것 많이 이야기하겠거니 기대를 했는데 거의 적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경기에서 2점 이내로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지?”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딱 하나만 하면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친구들이 에러를 했을 때 기분 상해서 막 던지지 않는 것! 그 말을 듣고 저는 ‘~~을 하지 않는 것’은 목표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친구가 에러를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한참을 뜸들이더니 “‘그럴 수 있다’ 여기고 그냥 던져야지.” 하고 말했습니다. 어쩐지 충분치 않은 느낌이 들어 “할아버지도 자주 말씀하시고 아빠랑 가끔 연습했던 심호흡을 하는 건 어떨까?” 하고 물었더니 그건 이미 하고 있어서 따로 목표로 삼지 않아도 되겠다더군요. 에러를 한 친구에게 “괜찮다”고 손을 흔들어 주는 거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이미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4)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 손톱을 최대한 덜 물어뜯는다.
이 질문에도 잘 적지 못했습니다. 제가 “손톱 물어뜯는거는 어때?”라고 묻자 근심어린 표정으로 “솔직히 자신이 없어”라고 답하더군요. 그러니까 일단 목표에 포함시키자고 하니 ‘최대한 덜 물어뜯는다’는 표현으로 타협을 했습니다. 내심 단호한 결심을 해주길 바랬지만 ㅠ
<작업 후기>
이렇게 적은 것을 틈날 때마다 볼 수 있도록 식탁 본인 자리에 깔아주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며 느낀 점이 있는데요. 아빠 앞이라 그런지 충분히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에게 아직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아팠습니다. 아마도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저도 모르게 드러내는 실망감이 아이의 무의식에 작용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편하게 코치님이나 상담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다면 더욱 깊게 스스로를 탐구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적은 내용 말고도 이런저런 대화들을 아들과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몇 가지 준비된 질문으로 틀을 만들어 이야기를 나누니 집중해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문득 팀 전체가 시즌이 시작할 때 함께 이런 작업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로를 이해하고 공동의 목표를 정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