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 부모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④ 야구를 일찍 시작한다는 것 ( 볼빨간갱년기 야구선수 학부모)

이 글은 10년간 두 아들을 야구시키면서 겪은 기억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야구선수 학부모 여러분들과의 공감을 위해 쓴 글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 필자주

글 · 볼빨간갱년기 야구선수 학부모

예전에 제 친구에게서 전화가 한 통 온 적이 있습 니다. 그 친구의 친구 아들이 여섯 살인데 야구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어디서 시키면 좋을지 추천 좀 해달라더군요. 저는 딱 잘라 말했습니다. “일단 놀이터에서 실컷 놀게 하라고 해. 그리고 야구는 싹이 보일 때 꺾어버려야 한다고 꼭 전해줘.”

싹이 보일 때는 꺾어버려야 한다고?

야구선수 부모들의 모임인 ‘우리 아이는 야구선수’ 카페에도 가끔 그런 질문들이 올라옵니다. “아이가 여섯 살인데 야구를 하고 싶어요. 어디서 시키면 좋을까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 야구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좀 봐주세요.”

이런 질문들을 보면서 갈수록 야구를 시작하는 연령이 낮아진다는 걸 많이 느끼게 되더군요. 우리집 녀석들은 초3, 초1 때 리틀야구를 시작 했습니다. 큰아이는 잠시나마 수영, 태권도, 인라인, 피아노라도 맛봤습니다만 둘째 녀석은 형 따라다니면서 운동장 주변에서 개미 잡고, 메뚜기 잡고, 땅 파고 놀다가 야구에 입문했지요.

지금도 수영장 가면 잠수만 하고 놉니다. 가련한 녀석이죠.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하더군요. 아빠 따라, 친구 따라 캐치볼 합니다. 어느 날 보니까 신기 합니다. 꼬맹이가 조막만한 손에 그 큰 글러브를 끼고, 공도 잘 받고 잘 던집니다. 심지어 본인 키 만한 배트를 휘두르며 공도 잘 맞춥니다.

‘이 녀석 혹시 야구신동인가?’ 마침 주위에서도 한 마디씩 거들지요. 특히 사회인 야구하는 삼촌들 영향이 큽니다. ‘배트를 잘 돌린다’ ‘공을 잘 챈다’ 등등 나름 전문적인 용어들로 칭찬해줍니다. 아이도 당연히 본격적으로 야구를 배우고 싶다고 조릅니다.

그런 아이를 데리고 전문가를 찾아 갑니다. 레슨장, 학교 야구부, 리틀 야구부 등등. 감독님들도 칭찬합니다. 가능성 있다, 또래보다 잘 한다 등등. 감독님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야구라는 게 느린 아이는 힘이 좋거나, 작은 아이는 빠르면 되니까요.

제가 감독이라도 첨보는 남의 집 아이에게 아직 어리니까 좀 더 있다 오라는 말은 못할 것 같습니다. 일찍 시작하면 분명 좋은 점은 있겠지요. 기본기, 경험, 시합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 등등. 늦게 시작하면 아무래도 구력이 부족해서 일찍 시작한 친구들보다 뒤쳐진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어차피 될 떡잎이라면 4학년쯤 시작해도 충분히 따라간다고 봅니다.

물론 이건 전문가적인 입장이 아닌 엄마로서의 입장입 니다. 지나고 나니 아이의 어린 시절에 아쉬운 것들, 허전한 것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놀지도 못하고, 초등 저학년 때 남들 다 다니는 피아노나 태권도 학원도 못다니지요. 둘째 녀석은 학교에 있는 축구 클럽에서 축구하는 것도 좋아했는데 선수반 시작하면서 그것도 결국 포기하게 되더군요.

야구 올인? 어릴 때는 다양한 놀이 활동을……

야구라는 개미지옥에 아예 빠지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봅니다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건 불가능한 거 같고요. 그리고 야구를 일찍 시작할수록 아이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으니 뭔가 더 나으리라는, 앞서가리라는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부끄럽지만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우리 아이보다 늦게 시작한 아이가 들어와서 잘하는 모습을 보면 샘도 나고 속상해져서 아이를 닦달하게 되고, 아이는 엄마 눈치를 보게 되더군요. 아이가 좋아하니까, 아이가 즐거워하니까, 그냥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했으면서 어느새 욕심을 부리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한 순간 어찌나 창피했던지.

세상은 넓고, 잘하는 아이들은 많은데 단지 야구를 일찍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잘할 거라는 착각에 빠졌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저학년 때까지는 놀이터에서 실컷 놀게 하고, 실컷 자게 하고, 실컷 먹게 하고, 축구도 하고 인라인, 수영, 태권도 등등 자유롭게 다양한 활동을 시켜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야구는 그런 취미 중의 하나가 되겠죠. 그렇게 아이들이 야구를 충분히 놀이로 즐긴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야구를 하면서 힘든 순간이 올 때도 극복하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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