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사라진 교실과 야구장
저는 개인적으로 어린 선수들이 각잡고 서서 감독님 말씀을 듣는 모습이 사라질 때 아이들이 심신이 건강한 야구선수로 자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무슨 말에 대해서든 우렁차게 대답해야만 하는 선수가 건강한 자아를 발전시킬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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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사라진 교실과 야구장”
서울대 상위 1% 학생들을 연구한 결과를 보여준 EBS의 다큐멘터리가 최근 화제다. 예상과는 달리 학점을 잘 받은 학생들의 공부법은 일반 학생과 비교해서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단지 교수가 한 말을 빠짐없이 받아 적고 이를 시험에 그대로 표현한 것이 달랐을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의 선행학습과 온갖 평가 시스템을 경험하며 터득한 눈치와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연구를 진행한 <교육과 혁신 연구소> 이혜정 소장은 “얼마나 잘 외웠는지를 평가하는 시스템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왜 궁금해 하겠어요?”라고 아쉬워하며 답을 찾느라 질문이 사라진 교실을 비판한다.
야구를 하는 어린 친구들은 어떨까? 아이들이 땀을 흘리는 운동장에서도 질문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지난 주 워크숍에 참석했던 한 중학교 선수는 운동을 하며 늘 눈치를 보는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너무도 자주 지적을 받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플레이를 하나 끝내면 잘하든 못하든 코치 쪽을 쳐다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험보다 틀릴까봐 무서웠어요’라고 말하는 다큐 속의 한 초등학교 어린이의 모습에서 이 선수의 마음 속 상처가 오버랩되며 느껴졌다. 혼날까봐 눈치보는 마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가득한 머릿속에 과연 질문이 피어날 수 있을까?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시험’을 통해 받는 평가가 그래도 간헐적이라면 ‘시합이 곧 시험’이 되어버린 학생야구선수들은 평가의 무대에 수시로 노출되어 있다. 각종 공식 대회는 물론이고 일 주일에 두세 번씩 있는 연습시합 역시 평가를 받는 시간이 된다. 혼나는 것이 두려워 시합보다 훈련이 더 좋다고 말하는 어느 초등학교 선수의 가슴아픈 고백을 들은 후에는 아이들 경기를 보는 것이 언제나 마음 편하지는 않게 되었다.
공부든 운동이든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어리숙한 사람을 틀지우는 것은 적당한 쓸모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유용하다. 하지만 그 틀이 너무 단단해지면 탁월함을 가로막는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 여기가 끝이라고 믿는 마음을 흔드는 것이 탁월함으로 가는 시작이다.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승하는 어린 아이의 재능이 성인이 되어서 (노벨상으로 상징되는) 탁월한 지적 성취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과 리틀야구 월드시리즈를 종종 제패함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에 이르러서는 세계 수준의 경쟁력으로 온전히 이어지지 않는 현실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