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의 역할에 대한 비슷하면서도 다른 생각들 (이도형, 강병식, 김강, 류효상)
2020 우리야구 컨벤션의 첫 번째 세션 ‘변화하는 야구, 변화하는 코치의 역할’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류효상(이하 류) : 먼저 코치의 기본적인 역할에 대한 네 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강(이하 김) : 저는 코치복이 많은 선수였습니다. 제가 가진 능력에 비해 감독, 코치님들께 많은 애정과 기회를 받았습니다. 처음에 코치 제안 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내 야구’라는 것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반대로 선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선수 때 도움이 되지 않았던 코치의 말이나 주문들을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선수의 장점을 주로 보게 되었습니다. 장점이 사실 그 선수가 살아 나가는 길이고 경쟁력이니까요. 그것을 살려주는 것이 코치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점을 살려주는 것이 코치의 중요한 역할
강병식(이하 강) : 저 같은 타격코치 입장에서는 선수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잘 끄집어내주는 것이 코치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 선수본인도 모르는 자원들이 있거든요. 어떤 것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가 어떤 것을 했을 때 좋아지는지, 선수가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당연히 저도 생각을 하구요. 저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선수랑 같이 생각을 했을 때 그것이 맞아 떨어지면 빨리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코치와 선수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럴 수가 없죠. 그래서 훈련도 한 가지 보다는 자꾸 여러 가지 것들을 하다 보면 선수가 ‘느낌이 좋다. 이걸 하면 좋아질 것 같다’고 느끼는 것들이 생깁니다. 그렇게 찾아 가도록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류 : 강병식 코치님은 독특한 연습방법을 많이 사용하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규민 선수가 과자를 물고 배팅을 하는 연습도 화제가 되었는데요?
강 :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힘을 쓸 때 이를 꽉 물잖아요. 무는 높이가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과하게 힘을 주어도 안 되고요. 김규민 선수가 대표적으로 그런 케이스였어요. 임팩트 순간에 너무 과하게 힘을 써서 탑핸드가 많이 덮이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TV에서 골프채널을 보는데 웨하스를 물고 연습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따라 해본 겁니다. 일단 과자를 사서 김규민 선수에게 한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선수도 폼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니까 좋아하더라고요. 선수들이 그 모습을 보고 “코치님, 저도 한번 해 봐도 돼요?” 하더라고요. 해볼 사람은 해보라고 했습니다. 출출한 선수들은 하면서 일부러 부숴뜨려서 먹더라고요. (웃음) 늘 타격연습을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보다 보면 아이디어가 조금씩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도형(이하 이) : 과거에는 코치의 색깔에 따라 선수들이 따라오게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자신의 스타일을 강조하시는 분들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지도방식도 다소 주입식 스타일이 많았는데 최근의 분위기는 확실히 변한 것 같습니다. 코치의 스타일을 강하게 어필하기 보다는 선수마다 특성이 있다는 것을 보다 중시하는 분위기입니다. 어떤 선수에게는 강한 톤으로 주문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선수와는 대화를 더 많이 하기도 하구요. 선수 중심으로 가는 분위기가 분명 느껴집니다. 저 역시 코치는 기본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말에 강하게 공감을 하는데요. 누구나 코치라면 자신이 원하는 스윙,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스윙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스윙이 1군 엔트리에 있는 타자 15명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을 거예요. 아마 그 스윙 매커니즘에 맞는 선수는 2~3명 정도일 겁니다. 나머지는 그 선수만의 장점을 최대한 극대화시켜 주기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는 인지 루틴도 필요
류 : 코치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가 지도하는 내용만큼이나 코치와 선수의 관계를 잘 설정하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김강 코치님은 한국사회에서 볼 때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야 코치가 될 수 있다는 선입견을 깨뜨린 경우인데요. 선수와 어떻게 관계설정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 : 제가 처음 코치가 되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선수가 주가 되면 코치가 나이가 많던 적던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선수가 코치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믿게 되면 관계형성은 저절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류 : 많은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불안과 싸운다고 볼 수 있는데요. 코치는 그런 멘탈적인 부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특히 아마추어 선수들 일수록 그런 감정들을 처리하기 쉽지 않을 듯합니다.
이 : 불안의 종류도 굉장히 여러 가지거든요. 일단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 제일 많습니다. ‘이번에 잘 못 치면 어쩌지?’ ‘여기서 못 막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입니다. 선수는 미래의 일, 즉 결과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선수들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는 인지 루틴을 만들어주려고 합니다. 몸으로 하는 루틴도 있지만 인지로 하는 루틴도 있는데요. 지금 안타를 쳤는지 여부 보다 ‘좋은 타이밍에 스윙을 했는지, 타구의 질이 좋았는지’ 같은 요소를 인지하고 집중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이게 습관이 되면 불필요한 불안감이 많이 줄어드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강 : 어떻게 준비를 했는지가 중요한데요. 준비를 안 하고 잘 하려고 할 때 불안하거든요. 또 불안감을 떨쳐내는 방법으로 내적 방법과 외적 방법으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적방법이 몸에 집중하는 접근법이라면 외적방법은 어떤 사물이나 목표 타깃을 잡고 거기에만 집중을 하는 방식입니다. 선수와 대화를 통해 어떤 것 때문에 불안한지 이해하고 맞는 방식을 찾아 가야 할 듯합니다.
김 : 강백호 선수의 초등학교 시절 배팅영상을 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전 그것을 보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이, 그런 스윙을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프로에 와서도 계속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본인 방식으로 말이죠. 초중고 지도자분들이 그렇게 하게끔 놔두었다는 건데요. 그게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자신의 방식을 다들 지지해 주니까 자꾸 바꿀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저는 불안감은 반복되는 좌절감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는데요.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을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강백호에게 주지 않았다는 것이죠. 늘 새로운 답을 찾을 필요가 없거든요. 잘하고 있고, 야구를 하면서 행복감이 넘치고, 재밌으면 자꾸 불안해서 고치고 보완할 생각을 하지 않겠죠. ‘더 좋은 것이 있어’ 하면서 자꾸 더 잘하게 하려고 어떤 것을 주입시키고 그러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방향을 정하고 고를 수 있다는 것이 데이터의 장점
류 : 현대야구에서 코치의 역할은 숫자를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가장 눈여겨보는 기록이나 데이터가 있으시다면?
이 : 요즘 데이터가 굉장히 주목을 받으면서 엄청나게 많은 숫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저는 상대할 투수의 순수 스트라이크 비율을 먼저 체크합니다. 또 BABIP, 즉 인플레이 타구에 대한 타율을 챙겨봅니다. 타자의 경우에는 잘 쳤지만 결과적으로 안타가 안 나왔을 뿐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안타가 안 나왔다는 이유로 불안해하고 자꾸 무언가 변화를 주려고 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변화를 주면서 스스로 슬럼프를 만드는 것이죠.
강 : 저희는 라인드라이브 타구, 즉 강한 타구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분석팀의 도움을 받아서 올해는 20타석씩 잘라서 타자들의 추세를 계속 관찰했습니다. 작년의 데이터를 기초로 평균을 내놓고요. 전반기가 끝나면 또 그 데이터를 토대로 평균을 내고, 타구속도와 발사각 등을 계속 체크하고 있습니다.
김 : 데이터라는 것이 함정도 많지만 방향을 정하고 고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봅니다. 데이터를 가지고 선수에게 ‘너는 이게 안 좋아’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요. ‘너는 이게 정말 좋아’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시즌 때는 강한 타구에 관한 지표, 즉 하드 히트(hard hit) 비율만 봅니다. 거기에 따라오는 안타나 이런 것들은 많이 보지 않습니다. 안타가 나오면 선수는 자신의 타구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거든요. 오히려 좋은 타구를 보내고 있는데 야수 정면으로 가서 잡히거나 하면 ‘내가 뭔가 잘못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때 선수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지표가 타구 스피 드라든지 하드 히트 비율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영상 활용, 선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기회
류 : 요즘은 선수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많은 영상들을 보며 자신에게 적용하기도 합니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경우에는 데이터 측정 장비 뿐만 아니라 영상 장비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요. 영상 활용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네요
이 : 저는 일단 선수의 의견을 먼저 따릅니다. 선수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해봐야 됩니다. 같은 이야기를 코치가 먼저 해서 변화를 주문했는데 결과가 안 나오면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선수가 원하는 것을 먼저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결과가 안 나왔을 때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는 편입니다. 요즘은 워낙 정보도 많고 영상들도 다양해서 선수마다 선호하는 것들도 다 다릅니다. 미국 쪽 영상을 좋아하는 선수도 있고 일본 영상을 많이 보는 선수도 있습니다. 코치는 그런 것까지 어느 정도 다 체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 :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선수가 그런 것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코치가 알고 있어야 하는 거라고 봅니다. 선수가 어떤 영상을 보고 오면 배팅연습을 할 때 다른 모습이 보이거든요. “왜 이렇게 쳐?”라고 말할게 아니라 지켜보는 것이죠. 평상시와 다른 방식으로 치고 있는 게 보이거든요. 선수가 먼저 이야기해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요. 폼이 바뀌었다면 다가가서 물어봅니다. 무엇 때문에 바뀌었는지를요. ‘코치가 나를 보고 있구나’ 선수가 이렇게 인식 하는 것이 관계형성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도 자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상이 있으면 그걸 보여주기 보다는 요즘 자주 보거나 좋아하는 정보를 보여달라고 해보세요. 이게 정말 좋은 게 선수의 생각을 알 수 있거든요. 영상이 수만 가지가 올라와 있는데 그 중에 어느 한 영상을 선택할 겁니다. 그 영상을 선택을 한 것은 그 선수의 선택이거든요. 선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죠. 선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선수를 지도할 때 큰 힘이 됩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아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으니까요.
강 : 선수들이 영상을 보여주려고 한 번씩 옵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어떤 선수가 이렇게 치는데 어떠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제가 다시 물어봅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하라고 한 것인지를요. 누가 해보라고 했다고 하면 조금 더 생각해보자고 하고요.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하면 왜 그렇게 하고 싶은 지를 또 물어봅니다. 사람마다 신체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의 어떤 선수가 스윙하는 방식이 자신에게는 안 맞을 수 있잖아요? 어떤 선수는 레벨스윙을 해야 잘 칠 수가 있는데 어퍼스윙을 하면 멋있어 보이거든요. 정말 좋은 타구를 날리기 위해서 변화를 주고자 하는지 잘 파악해야 합니다. 데이터와 영상도 준비하면 좋을 테고요. 선수가 어떤 영상을 보고 스윙을 바꾸고 싶다고 하면 그 선수의 타격 영상을 몇 년 전까지 다시 찾아보며 고민을 합니다. 그 선수가 변해 왔던 폼들이 나오니까요. 데이터와 같이 봐주면 더 좋고요. 데이터와 영상을 같이 보면 타격 포인트의 변화도 이해하기 좋습니다. 선수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고요.
류 : 강병식 코치님 얘기를 듣다보니 코치란 선수를 짝사랑해야 하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계속 쳐다봐야 하고, 관심을 주어야 하고, 변화를 눈치 채야 하고 말이죠.
강 : 정말 자기 전까지 영상도 계속 보고, 데이터도 부탁하고 그러는데,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경기장에 나가서 선수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모든 스트레스는 다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