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그리고 운동부의 추억 (이딴게 내 응원팀이라니 6편)

요즘만큼 학교폭력이라는 주제가 세간에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시기도 드문 것 같다. 하루 걸러 하나씩 유명인이 과거에 저질렀던 학교폭력 관련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여론전에만 머무르지 않고, 법적 공방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학교 폭력 논란에서 스포츠계, 특히 야구계가 빠질 수는 없다. 최근에는 현역 프로야구 선수들이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정식 재판에 넘겨졌다. 공식적인 학교폭력 전과가 기록된 안우진의 WBC 참가 여부나, 과거 학교폭력 가해 혐의로 프로 지명이 철회됐던 김유성의 재지명 여부 또한 야구계의 첨예한 쟁점이다. 모두들 묻고 있다.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이냐고.

물론 이렇게 지목된 가해자들이 무고하고 선량했던 야구계의 이미지를 이번 한 번에 망쳐놓았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징병제를 기반으로 한 군사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의 훈육기관인 학교, 그 중에서도 특수한 집단으로 취급받는 ‘운동부’ 내에서 자행되는 폭력이 아주 유구하기 그지없는 악습이라는 것쯤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 보자. 일반 학생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던 운동부 학생들에 대한 이런 기억들이, 정녕 없었던가? 폭력을 휘두르거나, 자거나, 혹은 아예 안 보이거나.

운동부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대놓고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당연히 문제지만, 일반 학생들에게 ‘안 보이는’ 곳에서 자행되는 그들 간의 폭력은 ‘보려 하지 않았기에’ 더 심각했다. 일반 학생들로부터 ‘열외’ 취급을 받는 격리 구조는 폭력의 잔혹성을 은폐함과 동시에 배가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지도자와 학생선수, 학부모 등 각각의 주체들 사이에 형성되는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는 서로 맞물리며 수많은 고통과 트라우마를 생산하는 것이다.

폭력의 연쇄는 성인 무대, 그리고 프로 무대까지 계속된다. 층층시하 엄격한 서열 문화를 기반으로 각종 부조리가 자행된다. 누가 누구를 때렸다더라, 누가 누구한테 얼차려를 시켰다더라 같은, 그런 흉흉한 소문들이 무려 ‘프로야구계’에서까지 흘러나온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악폐습의 고리를 끊기 위해 지금도 많은 분들이 노력 중이신 걸 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 또한 다들 공감하시리라 믿는다.)

‘관행’을 핑계로 학폭 이슈로 거론되는 선수들에게 문제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으며,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폭력으로 얼룩졌던 한국 근대사를, 피바다 속에서 집권한 정권과 함께 태동한 프로스포츠의 태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악마의 재능’이라는 싸구려 알리바이로 ‘야구만 잘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발신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생각해야 한다. 리그 관계자와 야구인 뿐만 아니라, 응원으로 힘을 실어주는 팬들도 마찬가지다.

대형 기획사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어느 아이돌 멤버가 학교폭력 논란으로 연예계에서 퇴출됐던 날, 현직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친구에게 물었다. 어린이들도 유명인들의 ‘학폭’ 논란에 영향을 받냐고.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당연하지. 애들도 다 알아. 지금의 잘못이 미래를 망칠 수 있다는 걸. 나도 지도할 때 그러는데? 퇴출된 누구처럼 되지 말고 지금 사이좋게 지내라고.” 대중의 단죄라는 방식이 무조건 옳지는 않겠지만, 불완전하게나마 보다 나은 미래는 오는 걸까?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오랫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은 이단옆차기를 날리며 외친다.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

나도 요즘은 비슷하게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가 폭력의 왕국이야?” 그리고 모두가 이미 스스로 알고 있지 않나. 우리는 실제로 오랜 시간 강간 그리고 폭력의 왕국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과거에 자행된 수많은 폭력들로부터 일어난 지금의 파열음이 아무쪼록 건강한 미래를 부르는 촉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과정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길고, 지난하고, 버거울지라도.

작가 소개 : 구슬
KBO리그와 히어로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언제 망하는지 두고보자며 이를 갈게 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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