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같은 공을 치는 타격연습에 대한 의문

티배팅, 토스배팅, 머신배팅 등 선수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타격연습을 합니다. 선수마다 조금씩 다르게 연습을 세팅하기도 합니다. 어떤 선수는 배팅티를 높게 해서 치는 걸 좋아하고, 배팅볼 투수가 던져주는 타격연습을 극단적으로 선호하는 선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타격연습을 하지만 저에게는 확연한 공통점이 보입니다. 타격의 여러 측면 중에 주로 스윙 동작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타격은 (투구인식 + 선택 + 스윙) 이 세가지 요소들의 결합입니다. 그래서 저는 피칭머신에서 매번 같은 속도와 로케이션으로 날아오는 공을 치는 선수들을 보며 늘 의문이 있었습니다. 배팅볼 투수가 던져주는 공을 치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구요. 요즘은 여러 구종의 공을 다양한 스피드로 보내주는 피칭머신도 등장했다고 하는데 그걸 실제로 활용해 연습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배팅게이지에서는 잘 쳤는데 경기에서는 왜…” (저스틴 툴)

같은 속도로 날아오는, 같은 구종의 공을 계속해서 때리는 연습을 볼 때마다 저는 물음표가 생깁니다. 이런 연습으로 실제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학문적인 표현을 빌리면 ‘연습의 효과가 좋은 경기력으로 전이transfer가 될 지’ 진한 의문이 듭니다. 저한테는 그런 연습장면들이 마치 공부를 하는 학생이 같은 문제만 계속 푸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선수는 타격이라는 과목에서 스윙이라는 문제만 풀고 있었습니다.

실제 경기에서 타자는 무슨 공이 날아올 지 모르는 상태에서 투수의 공을 지켜봅니다. 투수는 다양한 구종, 속도, 로케이션의 공을 던지기 때문에 타자는 찰나의 순간에 (투구인식 + 선택 + 스윙)을 거의 동시에 해야 합니다. 투수들의 공이 점점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타자는 대응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와 같은 의문을 품고 연구를 진행한 분이 계셨습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 롭 그레이 박사는 연습방법에 따라 타자의 경기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원래 팀에서 하는 타격연습을 하기 전에 피칭머신에서 날아오는 공을 치는 연습을 추가로 진행했습니다. 피칭머신에서 날아오는 공은 구종, 속도, 로케이션이 모두 같았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원래 팀에서 하는 타격연습을 하기 전에 가상현실 속에서 타격연습을 추가로 진행했습니다. 가상현실이라는 환경만 다를 뿐 날아오는 공의 구종과 속도, 로케이션은 모두 같았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팀훈련 외에 별도로 타격연습을 진행하지 않은 통제그룹이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그룹은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공을 상대하는 타격연습을 진행했습니다. 날아오는 공마다 구종과 속도, 로케이션이 달랐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타자의 타격 결과에 따라서도 변화를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타자가 두 번 연속으로 시속 135km의 패스트볼을 때려냈다면 그 다음에는 시속 139km의 패스트볼을 던져주었습니다. 로케이션이 위아래로 30cm 정도 차이가 나는 공에도 잘 반응한다 싶으면 60cm로 변화를 더욱 크게 주었습니다. 단순하게 말해 이 그룹의 타자들은 풀어야 할 문제가 다른 그룹에 비해 훨씬 많았던 셈입니다.

이렇게 6주에 걸친 연습을 마치고 그레이 박사는 타격능력을 테스트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수들의 고등학교 3학년 성적도 관찰했고, 5년 여를 더 기다려 이 선수들의 미래도 확인했습니다. 대학에 진학은 했는지? 메이저리그팀에 드래프트가 되었는지? 아니면 고등학교를 끝으로 야구를 그만두게 되었는지?

결과적으로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구종, 속도, 로케이션에 변화를 주어 타격연습을 한 선수들은 여러 지표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맨 위의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검은색 막대 그래프) 어떤 공이 날아올 지 모르는 타격연습을 한 선수들은 정타를 때려내는 비율이 다른 그룹에 비해 두드려지게 높아졌습니다. 투구인식능력도 눈에 띄게 나아졌습니다. 가운데 그래프처럼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공에 스윙하는 비율은 늘어났고, 반대로 스트라이크존 바깥으로 나가는 공에 스윙하는 비율은 줄어들었습니다.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선수에게 다양한 과제를 제공한 연습이 선수의 전반적인 타격능력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룹의 선수들은 실제 대회에서의 출루율도 더 높았고 높은 수준의 대학팀으로 보다 많이 진학을 했습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선수들이 연습 때 하는 스윙은 실제 경기에서의 스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술일지도 모릅니다. 인지와 선택의 과정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전력 달리기를 할 때도 목적지까지 알고 뛸 때와 중간에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바로 돌아오는 과제가 포함되어 있을 때 선수의 스피드는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는 그냥 움직이는 것과 동작에 인지/선택의 과정이 포함될 때 퍼포먼스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연습 때는 잘 치는데 경기에서는 자기 스윙을 하지 못한다고 타박을 받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멘탈이 문제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런 선수들은 스윙연습만 했지 타격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타격연습이 아니라 스윙연습만 했는데 타격을 못한다고 선수를 다그치면 그 선수는 너무나 억울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롭 그레이 박사의 책 ‘How We Learn To Move’의 내용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10월 중에 번역출간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연습은 선수가 실수를 하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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