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로서 지평을 넓히기 위한 LA에서 플로리다까지 견문록 (이도형)

어느 때부터인지 선수들이 미국야구의 훈련영상을 수시로 들여다보곤 한다. 이제는 누구라도 미국이든, 일본이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몇몇 선수들은 오프 시즌에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그쪽 코치들에게 레슨을 받기도 한다.

​선수를 지도하는 코치로서 미국야구에 대해 관심을 갖는 현상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 또한 코치들의 공부모임 코끼리야동클럽에서 미국야구 코치들의 강연 영상을 접하며 호기심이 일어나던 차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한번 가보자!”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마음에 두루두루 미국의 야구코칭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가장 먼저 LA 인근 어바인에 살고 있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조그마한 아카데미를 찾았다. 특별히 유명한 곳은 아니고 미국에 있는 흔한 아카데미 중 하나였다. 내가 찾았을 때는 학생 선수들 몇 명이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었다. 대단해 보이지 않는 아카데미였음에도 랩소도나 영상 촬영 장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LA를 출발해 2시간 거리의 샌디에고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학창시절 같이 야구를 했던 친구가 이민을 가서 살고 있었다. 반가운 친구를 만나 회포를 풀고 리틀야구 구장을 들러 아이들의 야구를 지켜보았다. 다른 무엇보다 쾌적한 경기 장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즐겁게 야구를 하는 아이들과 경기를 즐기는 부모들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다소 엄숙한 분위기의 우리나라 유소년야구를 떠올리며 그 차이가 어디에서 나올까 생각해 보았다.

​캘리포니아에서의 짧은 체험을 마무리하고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얼마 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워싱턴 내셔널스 홈구장을 잠깐 둘러보고 미국야구코치협회 컨벤션이 열리는 내쉬빌로 출발했다. 컨벤션 4일 내내 출근도장을 찍고 여러 강연과 트레이드쇼(Trade Show)를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한쪽에서는 강연이 계속 이어지고, 다른 한쪽에 서는 수많은 업체들의 상품홍보가 벌어지는 어마 어마한 이벤트였다. 우리 팀도 다음년도부터 랩 소도를 사용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랩소도의 홍보 부스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랩소도 직원의 재미있는 시연과 설명을 들으며 코치로서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은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강연장에도 엄청난 인원이 있었지만 트레이드 쇼에도 그에 못지 않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주최 측 이야기로는 7200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우리 코치들도 친한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공부를 하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야구를 테마로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트레이드쇼는 코치가 아니라 정말 야구를 좋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놀이터 같았다. 배트와 글러브 같은 가장 기본적인 장비부터 이동식 마운드와 네트 등의 훈련 보조장비, 피칭과 타격데이터 측정을 위한 랩소도와 배트센서, 타자의 투구인식능력을 키워주는 VR장비 등 코치라면 어느 하나 놓치기 싫은 부스들로 가득했다. 컨벤션이 열리는 4일 내내 트레이드쇼만 둘러보며 미팅을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말이 정말 와 닿았다.

​매일 몇몇 강연을 골라 들으며 강연을 녹화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번역을 부탁해 다시 보니 현장의 분위기와 말하는 내용이 전해지며 더욱 느낌이 새로웠다. 컨벤션에서 강연을 들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포인트는 그들의 훈련방식이나 어떤 특별한 연습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것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즉 시스템화 하는 작업들이었다. 우리도 어쩌면 미국의 코치들만큼 많은 훈련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체계화하고 시간대별로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일에는 아직 보완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소통이나 커뮤니케이션 또한 강연 내내 대부분의 코치들이 강조한 덕목이었다. 데이터 야구가 유행하며 미국야구에서도 소통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듯 했다. 나 역시 이에 대한 부족함을 느껴 미국으로 오기 전에 심리상담사와 청소년 인성지도사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취득했다. 많은 코치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선수를 제대로 키우고 싶은 욕심에 의욕이 넘친 나머지 자신의 이야기만 계속 늘어놓은 경우가 흔하다. 코치에게는 야구기술의 문제보다는 선수와의 소통의 문제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소통을 잘 해야지’라는 의지만으로는 잘 되지 않았고, 그래서 자격증 공부라도 하면서 배우고 싶었다.

미국의 U18 대표팀을 이끌고 2019년 여름에 한국을 방문한 잭 레깃(Jack Leggett) 감독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바로 직전 한국을 찾았었기에 한국에서 온 코치라는 말에 무척 반갑게 맞아주셨다. 코치는 야구기술에 관한 내용보다 바른 인성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룰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도 선수들에게 자주 말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이곳의 많은 코치들이 이 점을 중시한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야구선수로서의 성공보다 야구를 통한 좋은 사회인 육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며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많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공식적인 컨벤션 일정의 전날, 그리고 강연과 트레이드쇼가 끝나는 저녁 시간이 되면 참여한 코치들 간에 다양한 토론들이 진행되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연령별 코치들, 그리고 해외에서 온 코치들이 별도로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부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우리의 문화로 보면 매우 낯선 풍경이었다. 토론 광경을 보며 느낀 것은 서로를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우리도 작년에 우리야구 컨벤션이라는 코치들의 작은 나눔의 장을 시작 했으니 점점 문화가 바뀌어 가리라 기대한다. 컨벤션이 열리는 곳이 내쉬빌이라 그곳에 있는 야구 명문 밴더빌트대학을 찾았다. 최근 들어 미국의 야구유망주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이라 알려진 곳이다. 이번 컨벤션에서도 이 팀의 팀 코빈 감독이 오프닝무대의 강연자로 초대되었다.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엄격한 규율과 인성을 강조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방문한 시기가 야구부가 쉬는 기간이라 훈련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내쉬빌에서 다시 차를 몰고 16시간 거리의 플로리다로 향했다. ‘전방 980km 직진’이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음성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온다. 워싱턴에서 내쉬빌로 가는 차 안에서, 그리고 다시 플로리다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시즌 동안 하지 못했던 야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플로리다에서 먼저 들른 곳은 IMG 아카데미였다. 예전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언젠가 미국에 가게 되면 꼭 한번 찾고 싶었던 곳이다. 다행히 한국 담당 매니저가 있어서 어려움 없이 시설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야구감독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첨단의 시설과 쾌적한 환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웬만한 운동장 크기의 웨이트룸도 놀라웠고, 훈련뿐만 아니라 프로팀이 아닌데도 영양과 컨디셔닝 등을 철저히 관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곳은 플로리다 베이스볼 랜치다. 텍사스 베이스볼 랜치와 더불어 미국의 야구코칭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아카데미다. 이곳을 운영하는 랜디 설리번 코치와도 짧은 대화를 나누고 시설과 환경을 둘러보았다. 컨벤션에서 만난 코치 한 명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가 방문을 했을 때는 몇몇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은 많은 팀에서 훈련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아쿠아백을 등에 매고 여러 동작들을 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신선했다. 그런데 유명세와는 달리 의외로 시설은 허름한 느낌이었다. 작년에 최신식 시설로 업그레이드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즘 아쿠아백을 매고 훈련하는 영상들을 우리나라 여러 센터의 SNS를 통해 보곤 한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하는 훈련을 접하려면 직접 찾아가서 보거나 경험하고 온 사람들을 통해서나 가능했다. 이제는 어제 미국에서 벌어진 일을 오늘 우리나라에서도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격세지감이다.

플로리다에서의 일정을 끝으로 한 달에 걸친 미국 야구코칭 투어를 마쳤다. 사실 처음에는 타격코치로서 무언가 타격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참신한 연습이 없을까 하는 마음이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컨벤션과 여러 아카데미를 방문하며 느낀 것은 구체적인 훈련방법보다 생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였다. 규모에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기술과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 하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인성을 강조 하는 선수교육, 그리고 코치교육의 가치를 강조 하는 부분이 매우 크게 와 닿았다.

​돌아와서는 ABCA 어플을 깔고 업데이트되는 코칭 정보를 계속 확인하고 있다. 회원가입을 하면 메이저리그와 대학야구 감독, 코치들의 훈련 영상들을 알람으로 알려준다. 짧은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된다. 우리코치들도 꾸준히 공부하며 창의적인 훈련방법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배움에 목마른 우리 코치들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해야 할 때라고 느낀다.

글 : 이도형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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