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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로 사랑하다고 말해준 아버지

재미교포 2세 작가인 Sung J. Woo님의 뉴욕 타임즈 글이 좋아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Saying ‘I Love You’ With Baseball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풋볼이지만 야구 역시 사람들의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지금과 같은 봄이면 더욱 그렇다. 1985년으로 돌아가 보면 나는 뉴욕 메츠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친구들 대부분은 양키스 팬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민자 2세인 10대 청소년이 메츠에 빠진 이유이기도 했다. 메츠는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해 세인트루이스 카이널스와의 디비젼시리즈에서 지자 나는 더욱 충성스러운 팬이 되었다. 동병상련이었다고나 할까.

아버지는 나와는 달리 야구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아버지가 나한테 관심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오셨다. 그리고 7년 후에 어머니와 우리 가족은 이곳으로 따라 오게 되었다. 85년은 그렇게 정착한지 4년째 되는 해였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했지만 사실은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는 말이 많은 분이 아니셨다. 다정하지도 않았다. 나 또한 그런 편이다. 우리는 저지 쇼어Jersey Shore에 있는 선물 가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실크 옷와 세라믹 화분, 악세사리 등을 팔았다. 하지만 단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는 것에 불과했다. 어떤 면에서 아버지는 직장에서 만나는 동료같았다. 나는 매일매일 익숙한 이방인을 만나고 있었다.

아버지는 골프와 낚시를 좋아했다. 나는 두 가지 모두 진정한 스포츠라 생각하지 않았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부두로 향했다. 낚시대를 던질 때마다 나는 야구 방망이로 스윙을 하듯이 해서 아버지를 심란하게 했다. 가게로 돌아와 나는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야구중계를 들었다. 손님이 왔는지도 의식하지 못해서 손님들이 팔을 흔들며 나에게 신호를 보내곤 했다.

메이저리그 선수가 멋진 더블플레이를 만들어 내는 것을 TV로 보며 나는 글러브가 갖고 싶어 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버지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도요? 정말요?”

“그래”

아버지는 사실 좀 뚱뚱한 편이었다. 하지만 마침 훨씬 더 뚱뚱한 메츠의 시드 페르난데스가 멋진 커브볼을 꽂아 넣고 있었다. 나는 ‘안될 이유도 없지?’라고 생각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jshf7o3nyA

우리는 두 개의 글러브를 샀다. 그 날 저녁 아버지는 아파트 마당에 나가 캐치볼을 하자고 했다. 나는 이미 학교 체육 시간에 투구와 송구를 배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볼을 잡을 때마다 글러브의 웹 쪽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잡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야구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아픈지 알 수 있다.

아버지는 계속 그렇게 볼을 잡았다. 글러브에 닿을 때마다 아버지는 아파서 움찔하곤 했다. 5분 정도 지났을 때 나는 그만하자고 했다. 아버지가 안쓰럽다기 보다는 내가 별로 재미가 없었다. 이웃에 사는 꼬마가 그 광경을 보고는 공도 제대로 못받는 노인이 있다고 놀려댔다. 아버지는 글러브를 벗고 왼손을 흔들었다. 손바닥은 빨갛게 변해 있었다.

11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신 적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에 야구공이 닿을 때 나던 소리가 다정하게 말을 건네준 것이다. 물론 당시 내가 느낀 거라고는 부끄럽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1986년에 메츠는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스플릿 핑거 패스트볼을 던지는 휴스턴의 마이크 스캇을 겨우 넘어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것이다.

월드시리즈라니!

나는 흥분을 가눌 수 없었고, 슬픔 또한 가눌 수 없었다. 나는 처음 다섯 경기를 혼자 지켜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스턴은 우승에 한 경기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아마 토요일이 6차전이었을 것이다. 토요일은 가게가 가장 바쁜 날이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집에서 경기를 봐야 했다.

“팀이 나를 필요로 해요.”

엄마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허락하셨다.

“좋다. 우리끼리 하마.”

두 분은 밤 10시쯤 되어 완전히 지쳐서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바로 주무시러 가셨지만 아버지는 옆에 앉으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미쳐 있었다. 나는 부모님께도 미쳐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굳이 있다면 내가 참을성 없는 사춘기였다는 것, 그리고 부모님들이 내 눈에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또 나는 메츠가 지고 있기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조는 모습이 나를 더 미치게 했다. 긴 하루를 보낸 아버지는 잠에 푹 빠져 있었다. 자정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우리 팀이 모든 것을 잃기까지 스트라이크 하나를 남겨둔 상황이 아버지의 잘못 때문인 것 같았다.

그때,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10회말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2점을 뽑아 동점을 만들고 빌 버크너의 다리 사이로 공이 빠져나간 것이다.

나는 쇼파에서 튕겨져 나왔다. 레이 나이트가 믿을 수 없는 승리를 위해 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눈을 뜨고 박수를 쳤다.

당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무엇을? 아버지와 내가 그 경기를 함께 보았다는 사실을.

(원문 기사 읽기)

Saying ‘I Love You’ With Base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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