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글리필드 투어의 기억
몇 년전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필드 투어를 다녀온 적이 있다.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팀이 원정경기를 떠날 때 홈구장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약 3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담쟁이 덩굴로 상징되는 전통의 야구장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었다. 구단 프런트로 오랜 세월 일하다가 은퇴하셨다는 초로의 할아버지께서 시종일관 웃으며 안내해 주신 기억이 난다.
오래된 구장답게 덕아웃은 무척 좁았고, 의자도 몹시 낡아 있었다. 안내해 주신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처음 덕아웃에 앉은 일부 신인 선수들은 허름한 시설에 불만을 나타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참 선수가 “여기서 매덕스도 경기를 지켜봤어.” 라고 말해주면 더이상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덕아웃 바로 뒤의 좁은 통로로 연결된 남루한 소변기도 인상적이었다. 컵스의 경기를 볼 때마다 그곳에서 볼 일을 보는 선수들을 상상(-_-;;)하며 혼자만의 재미를 느끼곤 한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커룸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경험이었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 선반 위에 놓여진 잡다한 개인 소장품들과 가족사진들을 신기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눈에 담았다. 가끔씩 컵스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공간에서 몸에 간직한 느낌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리글리 필드의 곳곳을, 특히 선수들이 그라운드 밖에서 머물고 오가는 공간을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나의 기억은 야구를 보는 내내 이런저런 상상력을 자극하며 야구를 또 다른 차원에서 즐기게 만든다.
워낙 어수선하고 산만한 성격이다 보니 TV로 KBO리그의 중계를 볼 때마다 경기에 몰입하기보다는 화면에 잡히는 여러 움직임들에 저절로 관심이 가는 편이다. 가끔은 선수가 덕아웃 뒤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보곤 한다. 어디로 가는 걸까? 화장실에 가나? 배트를 들고 가는 걸 보니 스윙연습을 하려는 것 같은데 복도는 어떻게 생겼을까? 순간적으로 궁금증이 일어난다. 하지만 나의 상상놀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끝이 난다. 나에게는 리글리 필드에서의 체험과 같은, 호기심을 더 발전시킬 만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