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칫흠칫 스윙은 아이의 ‘희망’이 아닌 어른의 ‘욕심’이 투영된 결과 (손윤)

야구친구에 연재되었던 손윤의 ‘영화 속 야구이야기’의 한꼭지를 옮겨왔습니다.

수많은 흥행작을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여기에 아카데미 남녀주연상을 받은 로빈 윌리엄스와 더스틴 호프만, 줄리아 로버츠와 귀네스 팰트로. 여기에 연기력이 돋보이는 매기 스미스, 밥 호스킨스, 글렌 클로즈 등. 이 초호화멤버가 한자리에 모인 영화가 ‘후크'(Hook/1991년)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카메오 출연이든 뭐든 그 재능을 낭비한 배역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팰트로가 순식간에 지나가거나 클로즈가 남장 해적으로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분장을 해서 누군지 알아보기 어려운 후크 선장 역에 호프만을, 육감적인 몸매를 전혀 느낄 수 없는 팅커벨 역에 로버츠를 기용한 것 등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마치 야구 경기에서 4번 타자가 번트를 대는 듯한 아쉬움이 남았던 기억이 있다.

영화는 영원한 아이의 상징인 피터팬이 어른으로 성장해, 천적 후크 선장과 맞대결을 펼치는 내용이다. 피터팬의 아들 잭은 야구소년. 그러나 야구를 잘하지는 못한다. 특히, 커브에는 헛방망이질. 그런데 네버랜드에서 해적들과 펼친 경기에서는 커브를 받아쳐 홈런을 때려낸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예전에 아는 이에게 들었던 쿠바 야구가 떠오른다.

경기 전의 타격 연습 등에서 타자는 배트를 붕붕 휘두른다. 심하면 20개 안팎의 공 가운데 하나도 못 맞추기도 한다. 그런데도 감독과 코치는 잠자코 지켜보기만 한다. 우리나라라면, 헛스윙할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대여섯 개를 헛스윙한 순간 다른 선수로 교체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쓰쓰고의 돌직구 “일본의 지도자들이 아이들을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선수의 스윙은 ‘힘껏’이 아닌 공을 맞히는데 주력하는 스윙으로 바뀐다. 그런데 왜 쿠바 지도자는 헛스윙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것일까.

강하게 휘두르다가 보면 어쩌다가 한 번씩 배트에 맞아 나간다. 그 타구의 스피드는 대단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배트에 맞아 나가는 횟수가 늘어나며, 타구 스피드가 빠른 만큼 안타로 연결될 확률도 높아진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쿠바 선수들만 봐도, 엄청난 타구를 때려내곤 한다.

‘흠칫흠칫’ 배트에 공을 맞히는 스윙과 ‘힘껏’ 휘두르는 스윙. 어느 것이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이 아닌 세월이 흐른 후에는 그 둘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또한, 흠칫흠칫 스윙에는 아이의 ‘희망’이 아닌 어른의 ‘욕심’이 투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피터팬과 함께 네버랜드의 아이들이 저녁을 먹을 때, 예의범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어른이 된 피터팬은 그것을 지적하며 옳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바라는 식사예절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어른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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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아이들을 자신이 옳을 것으로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끄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즐겁게 식사하는 게 잘못된 것일까. 그것을 어른이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 관념 등에 ‘관리’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이 영화의 주제는 한 시대의 종언이다. 후크 선장은 과거 피터팬이 그랬고, 지금의 루피오가 그런 것처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벽’이다.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그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그것은 후크 선장이 숨기고 있던 늙은 모습처럼 ‘세월’과 그에 따른 ‘변화’의 흐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신의 최대 실적인 악어박제와 함께 맞이하게 되는 후크 선장의 최후이다.

과거의 공적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상은 세월의 변화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주역이 이끄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법이다. 영화 ‘후크’는 그런 영화이다.

손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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