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라운드 생각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는지를 증명하는 자리가 경기다 VS 경기 자체가 최고의 연습이다

야구 지도자분들과 교류를 하면서,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나오는 감독, 코치들의 인터뷰를 보며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이 있다. 우리 지도자분들이 ‘경기’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일반화는 언제나 위험하지만, 이야기 전개의 편의를 위해 ‘한국의 지도자들’이라고 일단 부르기로 한다. 한국 지도자들에게 경기는 대체로 선수가 연습의 결과를 ‘증명하는’ 무대다. 얼마나 평소에 열심히, 간절히 훈련했는지를 드러내는 시간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경기 결과가 좋으면 연습을 잘 했다는 의미이고, 결과가 나쁘면 연습이 부족했다는 신호로 읽는다. 이런 관점에서 경기는 인과 관계에서 원인보다는 결과에 가깝다. 훈련이라는 원인으로 인해 경기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사고 패턴이다.

반면 스포츠가 발달한 유럽과 미국의 코치들은 보통 경기 자체를 최고의 연습 기회로 여긴다.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된 연습이라도 실제 경기 상황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다. 상대가 있고, 점수가 실시간으로 바뀌고, 관중의 압박이 거세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연속으로 펼쳐지는 환경 속에서만 선수는 자신의 진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경기 결과가 나빴다고 해서 곧바로 훈련 태도나 노력 부족으로 연결짓지 않는다.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연습으로는 얻기 힘든 귀한 피드백이다. 선수가, 그리고 팀이 무엇을 더 다듬어야 하는지 경기를 통해 가장 잘 배울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관점에서 경기는 인과 관계라기 보다 상관 관계가 가깝다. 훈련이 경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경기 역시 훈련에 영향을 미친다. 경기에서 부족한 점이 발견되어야 구체적이고 의도적인 연습으로 연결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에 대한 이런 인식 차이는 경기장에서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태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 지도자들은 경기에서도 동작과 메카닉에 대한 코칭을 여전히 많이 한다. 특히, 선수들이 어릴 수록 심하다. 훈련 때 연습한 동작을 그대로 잘 실행하면 경기도 마땅히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못마땅한 모습이 보이면 화를 낸다. 반면 경기 자체를 가장 좋은 연습 기회로 여기는 지도자들은 경기를 보며 메모를 한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을 선수가 경기장에서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는지를 유심히 관찰하며 기록하고 피드백을 준다.

물론 환경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한국은 선수 숫자에 비해 경기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미국은 네 면이 맞붙어 있는 야구장이 도처에 흔하고, 유소년 리그부터 고등학교까지 거의 모든 학교에 경기장이 있다. 경기를 하고 싶으면 언제든 학년을 나눠서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고 결론짓기에는 무언가 꺼림직하다. 한국 프로야구 구단은 보통 70~80명 안팎의 선수를 운영한다. 1군 로스터 28명을 빼면 퓨처스리그에서 뛰는 자원은 약 40명 남짓이다. 거의 두 개 팀 로스터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숫자다. 퓨쳐스 기록을 뒤져보니 지난 시즌에 200타석 이상을 소화한 타자가 대략 30명 정도다. 300타석을 넘기는 선수는 5명인데 모두 상무 소속이다. 10개 구단 소속 선수 중에 퓨쳐스 리그를 뛰며 200타석을 경험하는 선수가 구단별로 2~3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언듯 들으면 많아 보이지만, 경기당 4~5타석이라고 치면 40~50경기 수준이다. 한 시즌의 절반도 안 된다. 경기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선수들은 어떻게든 코치들에게 어필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마이너리그는 루키 리그부터 트리플A까지 각 레벨마다 로스터가 26명 정도로 정해져 있고, 시즌 경기 수는 120경기 안팎이다. 월요일을 쉬고 한 주에 6경기를 하는데 대부분의 선수가 매 경기 풀타임으로 출장한다. 도중에 교체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간중간 체력 안배를 위해 1~2주에 한 차례씩 쉬면서 한 시즌에 약 100경기, 400~500타석 정도를 소화한다. 이걸 3~4년 반복하면서 경기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경기에서 보여주는 장단점은 연습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보다 실전을 위한 연습을 세팅하는 데 사용된다. 선수들은 연습에서 코치들에게 어필하려고 불필요한 애를 쓰기 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연습을 계속 해나가면서 궁극적으로는 경기 결과를 통해 평가를 받는다.

토너먼트 대회로 대부분 열리는 학생 야구도 구조는 다소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운영되고 있다. 훈련에 비해 경기는 너무나 적다. 나는 프로와 아마의 수많은 코치분들로부터 선수들의 경기 수가 너무 적으며, 선수들에게 경기를 통해 성장할 기회를 지금보다 더 많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록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제도, 예산,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점점 다른 곳으로 마음이 움직인다. 우리 지도자분들 상당수는 경기 경험이 선수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제가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현실이 납득이 되질 않는다.

경기보다 훈련을 강조하는 우리 육성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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