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보고, 느끼고, 해보고, 그리고 자기자신의 룰을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구와타 마스미)
쿠와타씨의 생각을 담은 기사를 김형기님께서 옮겨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요미우리는 12일 쿠와타 마스미씨(52세)가 1군 투수 수석코치 보좌에 취임함을 발표했다. 쿠와타씨는 2006년 시즌이 끝나고 요미우리의 전력외로 분류되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여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뛰었다. 2008년 개막을 앞두고 전격 은퇴하여 그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요미우리 복귀는 실로 15년만이다. 캠프 시작을 몇 주 앞둔 상황에서의 이러한 초빙은 이례적인 인사로 그 배경이 수수께끼로 남아있지만 인터넷상에서는 쿠와타씨에 대한 기대의 목소리가 넘친다. 13년전 미국에서 쿠와타씨가 이야기했던 [야구도]와 [10년후의 모습]은 어떠할지…
인터넷 상에서 높아지는 팬의 기대
이례적인 인사다. 캠프까지 남은 기간은 18일. 투수코치로서는 미야모토 카즈토모 투수 수석코치(56세)가 유임되었다. 보좌역의 투수코치는 2군으로부터 스기우치 토시야(40세)가 승격하여 2인 체제로 리그 3연패에 도전한다. 바로 그 둘 사이에 자리잡는 형태로 쿠와타씨가 수석코치의 보좌로서 긴급 스카우트되었다.
시기가 이례적인 것처럼 그 경위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쿠와타씨가 2006년 퇴단시에 당시 감독이었던 하라 타츠노리 감독(62세)과의 “불화”는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실제로 쿠와타씨는 15년간 유니폼을 입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하라 감독이 [야구인으로서 매우 매력이 있는 사람] [유니폼을 벗고 나서도 공부하고 있다]고 평하며 쿠와타씨를 눈독들이고 있었다.
쿠와타씨에 대한 팬의 기대치도 인터넷 상에서 반응으로 나타났다. [기다렸습니다!], [기쁜 소식이다], [이번 시즌 최대의 보강], [이론파 코치로서는 일본에서 제일의 실력자] 등의 긍정적인 코멘트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쿠와타씨는 요미우리 퇴단 이후, 꿈이었던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영어가 능통한 쿠와타씨는 대리인을 두지 않고 직접 협상하여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입단을 결정하고 시범경기에서의 큰 부상을 뛰어넘어 꿈의 마운드에 섰다. 그리고 2008년 3월 26일에 깨끗이 은퇴를 결정하였다.
그후에는 평론가 활동과 병행하여 와세다대 대학원을 다니며 도쿄대의 특별코치를 거쳐, 현재는 도쿄대 대학원의 특임연구원으로서 투수, 야수의 동작을 연구하고 있다.
요미우리에서 통산 173승을 거둔 커리어에 더해 메이저리그의 지식을 갖추고 대학에서 이론을 배운 쿠와타씨의 합류에 팬의 기대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미디어가 전한 바에 따르면 쿠와타씨도 회견에서 [실제의 감각, 이미지에 과학적 근거의 양방을 더하여 지도해 나가고 싶다.] 라고 포부를 밝히고 있다.
실은 필자는 13년전에 잡지의 기획으로 2년간 메이저에 도전하는 쿠와타씨를 미국 플로리다 브래든턴의 파이어리츠 캠프에서 며칠동안 밀착하여 취재한 적이 있다. 그가 빌린 훌륭한 콘도에서 호밀빵에 치즈와 햄을 끼우고 머스타드와 캐첩을 바른, 쿠와타씨가 직접 만든 샌드위치 점심을 대접받으며 지금도 기억에 남는 몇 마디 말을 들었다.
“스스로 보고, 느끼고, 해보고, 그리고 자기자신의 룰을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쿠와타씨는 스스로의 유래를 이야기해 주었다. 사회문제로까지 발전한 드래프트를 거쳐 PL학원에서 프로의 세계에 들어간 쿠와타씨는 당시의 프로야구선수의 스탠다드였던 [담배] [도박] [술]을 시험해 보았다고 한다. 모든 것을 경험한 후에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 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특이하다고 여겨집니다] 라고 이야기하였다.
유행을 쫓아가지 않는다. 스스로 체험하면서 좋다고 판단되는 것은 주위의 눈과는 상관없이 도입한다. 당연히 터부시되는 것에도 도전하게 되어 팀 안팎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왜 공보다 무거운 것을 드느냐?] 라고 했고, 보충제를 먹으면 [뭘 먹는거야?] 라고 거북해하였고, 아이싱과 수영을 도입하면 [몸을 식힌다니 뭐야?] 의아해했다. 선발 전날 캐치볼을 하지 않는 것도 그랬다. 쿠와타씨는 아직 이해받지 못하는 시대의 선구자였다. 현역시절의 아름다운 투구폼은 쓸데없는 것을 빼고 [몸의 힘을 어떻게 릴리스의 순간에 집약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추구한 결과로 도달한 모습이다.
좋아하는 한자는 [道]이다.
“프로야구는 결과가 전부인 세계입니다만, 그것만을 쫓으면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거기에 이르는 프로세스, 노력이 없으면 안됩니다”
PL학원의 은사 나카무라 준지씨가 색종이에 쓴 [球道即,人道(야도즉인도, 야구의 길은 즉 인생 그 자체)] 이라는 말을 바이블로 삼았다. [야구를 통해 인간력을 키운다. 그 길을 통해 자신의 힘을 높이고 인간력을 키운다. 인생의 8할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작은 행복이 기쁘게 된다] 그것이 쿠와타씨의 철학이다.
“비겁한 것을 싫어합니다”
위협구와 같은 것을 던지는 것은 거부하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년 야구팀에서는 [야유]와 [괴롭힘]을 박멸했다. 야구인으로서의 품격을 요구했다. 최첨단의 야구이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심지가 굳은 인간 육성론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야말로 지도자가 되기 위한 인생을 걸어왔다고 할 만하다.
메이저에 도전하려다가 돌아온 스가노로부터 작년에 브레이크한 도고까지, 베테랑과 어린 선수들 모두에게 쿠와타씨의 지도는 틀림없이 자극과 영향을 줄 것이다.
13년전에 필자는 쿠와타씨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10년후의 자신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어떤 처지에 놓여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감독이나 코치와 같은 지도자는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한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저는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겁니다. 저의 강점은 야구계의 모든 것을 경험해 왔다는 겁니다. 초, 중, 고와 전국의 탑에 군림했습니다. 드래프트에서는 17세였던 제가 범죄자 취급을 받아 많은 굴욕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 플러스가 되었습니다. 일본 야구계에 보은하여 배로 갚고 싶습니다.
유니폼을 벗었으면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사람으로서,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어떠해야 하는지를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려져 있는겁니다. 감동하기 위하여.”
마침내 그는 야구계에 대한 보은을 배로 갚을 기회를 얻었다. 그러므로 [쿠와타씨가 요미우리를 바꾼다] 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혼고요이치/론스포, 스포츠타임즈 통신사
번역 : 김형기
(원문기사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