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연습의 신화가 미래를 가로막고 있다

우리야구 9호 특별판 “킬로미터” 5장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과로사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국전쟁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우리나라가 급격한 성장을 이룬 ‘한강의 기적’은 질보다 양을 추구해 이룬 성과였다. 하지만 이 성공 체험으로 인해 야근 문화와 장시간 노동이 만연하게 됐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주5일제에 이어 2018년부터는 주 52시간 근무제도 시작됐다. 노동량에서 노동의 질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양으로 승부하는 세계가 있다. 바로 아마추어 야구계다.

​초등학교 야구부와 리틀야구 선수반은 기본적으로 주 5일에서 6일 정도 모여서 연습한다. 연습 시간은 대체로 3~4시간이다. 시즌이 끝난 후라고 해도 동계 훈련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예전 일이지만 프로팀과 초등학교 팀이 같은 곳에서 동계 훈련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프로팀의 자율 연습조차 끝난 밤 10시가 넘어서도 연습하는 초등학교 선수들을 본 프로팀 코치는 “초등학교가 무슨 연습을 저렇게 늦게까지 하느냐?”라며 혀를 내둘렀다. 칭찬이 아닌 성장기에 지나치게 연습량이 많은 것을 걱정한 지적이었다.

​연습량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진학할수록 강도는 더 커진다. 고교야구는 거의 주 6일제다. 휴일도 없다. 주말이나 휴일은 경기나 연습으로 땀을 흘린다. 연습도 매일 밤늦게까지 한다. 학교 연습이 끝난 후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 레슨 등을 받는다고 새벽 한두시에 귀가하는 선수도 적지 않다.

​일반 회사원 등 왠만한 성인보다 장시간 노동과 야근에 시달리는 야구 소년들. 어린 선수들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일 년에 몇 차례 되지 않는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아마야구계가 휴식 없는 장시간 연습에 목을 매는 이유는 단순하다. “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잘하기 어렵다”라는 고정 관념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시간 연습에 대해 어느 현장 지도자는 “(선수들은) 힘들겠죠. 하지만 그 힘듦을 이겨냈을 때 선수는 성장합니다. 야구 뿐만이 아니라 모든 스포츠는 기술 이전에 정신력이 중요합니다. 연습을 통해 정신력도 기르는 겁니다”라고 밝힌다.

​저 현장 지도자의 말처럼 아마야구의 상식이 된 장시간 연습은 정말 효과가 있을까. 대개 연습량이 많으면 기량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야구계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지나친 연습은 오히려 선수의 기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다.

장시간 연습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지친 상황에서 올바른 동작으로 투구나 타격, 수비를 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체력과 주의력에도 한계가 있다. 같은 움직임을 장시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안좋은 동작을 반복하며 나쁜 습관을 몸에 배게 해서 기량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장시간 연습이 계속되면 부상의 확률도 높아진다. 매일 긴 시간 동안, 항상 같은 방식으로 연습이 행해지므로 선수는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선수의 집중력은 떨어지고 다칠 가능성도 높아진다. 특히 투수의 과도한 투구 연습은 팔꿈치에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

​장시간 연습이 아마야구에서 흔한 풍경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감독 출신 야구인은 “연습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연습을 비효율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내야수가 펑고를 받을 때 외야수는 한참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가끔 내야수가 처리 못한 공을 잡는 정도다. 실제로 선수가 공을 치고 던지고 잡는 시간보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 시간이 훨씬 길다. 5시간을 연습한다고 해도 선수가 자신의 발전을 위해 집중해서 몸을 움직이는 시간은 매우 짧다. 연습이 비효율적이므로 시간만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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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허재혁 스포츠사이언스팀장님과 김대환 트레이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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