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야구장에서 보고 싶은 풍경들

이번 주 야구친구 칼럼은 목동야구장을 이곳저곳 둘러보며 떠오른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 보았습니다.

 

“목동야구장에서 보고 싶은 풍경들”

(야구친구 http://www.yachin.co.kr/w/73/44)

 

71회를 맞은 청룡기 고교야구대회를 보기 위해 목동야구장을 찾았다. 목동야구장은 목동 지역 택지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9년에 완공되어 1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야구장의 모습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어쩐지 좀 삭막하다. 경남고 최동원의 호탕한 웃음, 대전고 구대성의 시크한 표정을 담은 벽화가 첫 눈에 들어오는 경기장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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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의 홈구장이었던 터라 히어로즈 선수들의 유쾌한 포즈를 볼 수 있는 사진들이 경기장 곳곳에 보인다. 한현희 선수가 천진난만하게 껑충 뛰는 모습이 귀엽긴 하지만 이제는 이곳에서 코흘리개 시절 신문 속의 흐릿한 흑백사진을 보며 동경하던 고교야구 스타들을 만나고 싶다. 어린 선수들도 안산공고의 김광현, 포철공고의 강민호 등 롤모델로 삼고 있는 선수들 역시 자신과 같은 시간을 거쳐왔다는 자각과 연대감을 통해 보다 큰 꿈을 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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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석 복도와 경기장 외벽에 붙어 있는 상점들은 히어로즈가 떠난 후 대부분 문이 닫혀 있다. 이곳에는 고교야구의 역사를 간직한 기념품들을 전시하면 어떨까? 선동열의 광주일고 유니폼, 박진만의 인천고 유니폼 등이 걸려 있는 쇼룸을 그려본다. 한 켠에는 과거의 경기 영상이나 신문 자료, 기록지 등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도 가끔 선원이었던 삼촌이 잠시 집으로 돌아와 선을 본 후 야구장에서 데이트를 하며 나를 데리고 갔던 동대문야구장 외야관람석이 떠오르곤 한다. 그 경기의 기록지나 신문 기사가 괜히 보고 싶다.

아. 그리고 야구책방도 조그맣게 마련되면 좋겠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야구선수로서 소양을 쌓을 수 있는 다양한 책들도 갗춰놓고, 지도자와 학부모들이 선수를 육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단순한 책방이 아니라 은퇴한 스타 선수들이나 원로 야구인들께서 돌아가며 이런저런 상담도 해주면서 유소년 선수와 부모들을 이끌어 주는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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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가 떠난 사무실 자리는 아직도 쓸쓸하게 비어있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강의장과 미팅룸 등을 만들어서 야구인들이 다양한 스터디 모임과 워크숍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학교 야구부나 리틀야구팀은 딱히 선수들을 모아 놓고 이론공부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없는 현실이다. 다양한 영상자료들을 비치해서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초등, 리틀, 중고등학교 야구부만이라도 가끔씩 찾아와 이론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주면 어떨까 싶다. 공간이 준비되면 그곳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움직임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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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구장이 지어진 지 불과 1년 후에 완공되었으며, 메이지 진구구장보다도 앞서 1926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동대문야구장을 우리는 너무나 허무하게 잃고 말았다. 목동야구장 역시 경기장 곳곳에 스며있는 학생야구만의 가치와 문화적 자산이 없이 그저 야구만 하는 장소로 인식되어서는 더 나은 가치를 그럴 듯하게 내세우는 권력과 자본의 논리 앞에 언제 자취를 감추게 될 지 모른다. 동대문야구장이 사라진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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