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른과 똑같은 훈련을 하고 있다”

전에 코끼리야동클럽에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 워싱턴 대학교 야구팀의 테너 스완슨 코치가 미네소타 트윈스의 코치가 되었습니다. 관련해서 나누고 싶은 생각이 떠올라 몇 글자 끄적여 봅니다.

얼마전 차두리 선수가 인스타그램에 흥미로운 글을 올렸습니다. 유럽의 지도자가 우리나라 초등학교팀의 훈련 모습을 보고 “성인팀과 똑같은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야구도 별반 다를 바 없을 겁니다. 사실 공부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학교시스템이 전반적으로 그러니까요. 미국의 야구지도자들이 우리나라 초등학교나 리틀팀의 훈련 모습을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훈련을 보고 “미쳤다crazy”고 말하는 분을 직접 본 적은 있습니다.^^

저는 기본기 무용론자입니다. 기본기가 부족한게 문제가 아니라 기본기를 너무 강조하고 남발하는게 오히려 문제라고 봅니다. 무엇을 배울 때 어떤 틀은 유용하기도 하지만 그 틀이 오히려 더 큰 발전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예가 우리나라 영어공부 아닐까 싶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수많은 시간을 단어와 문법 공부에 쏟아부었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도 그 중 한명이구요^^)

수능 고득점을 받고 토익 900점 이상을 받아도 실제 영어이메일을 편안하게 쓰거나 외국영화를 자막없이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빈칸에 들어가야 할 단어가 종속접속사 that이라는 것은 알아도, 바로 그 종속접속사 that을 사용해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듣고, 말하고, 쓰고, 읽기 위한 영어를 훈련한 것이 아니라 수능과 토익의 틀에 맞춘 영어시험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송구동작, 배팅동작에 대해 지적받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단어 못외운다고, 문법 문제 못맞춘다고 혼나는 아이들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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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학습과 야구훈련의 공통점

테너 스완슨 코치의 강연을 통해 학습의 두 가지 형태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외재적 학습(명시적 학습, 의식적 학습, explicit learning)과 내재적 학습(암시적 학습, 무의식적 학습, implicit learning)이 그것인데요.

외재적 학습이란 마치 영어 단어와 문법을 하나하나 외워나가듯이 무엇을 익히는 지 분명히 알고 하는 ‘의식적’ 학습을 의미합니다. 피칭 훈련을 한다고 하면 몸의 각 부분의 자세 등에 대해 명확한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동작이나 자세에 대해 지적을 많이 받으면 받을 수록 선수는 외재적 학습의 세계에 머물게 됩니다.

반면 내재적 학습은 일종의 ‘무의식적’인 과정으로 마치 갓난 아이가 말을 익히고 일어서는 것을 배우듯이 다양한 자극에 계속 노출됨으로서 필요한 기능을 익혀나가는 것입니다. 즉, 배운다는 느낌 없이 무언가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잘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그런 내재적 훈련으로 직관이 높아진 선수가 경기 중에 벌어지는 상황변화에 대해 높은 대처능력을 보인다고 스완슨 코치는 주장합니다.

코치나 선수 모두 외재적 학습에 끌리기 쉽습니다. 무언가를 가르쳤다는 느낌, 새로운 것을 배웠다는 느낌이 큰 만족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반면 내재적 학습 과정은 (지켜보는 입장에서) 답답합니다. 정말 발전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구요.

몇 년 전 아들이 뛰던 리틀야구팀은 해마다 몇 명씩 초등학교로 팀을 옮기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초등에서 더 기본기를 잘 가르쳐주는 것 같다.’, ‘리틀은 애들 노는 것 같아서 중고등학교 가면 고생할 것 같다.’ 등등의 이유로요. 실제로 가끔씩 만나는 초등학교 아이들은 확실히 잘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팀을 옮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볼넷을 연거푸 내주면서 밀어내기로 점수를 줘도 웃으면서 엉덩이를 두드려 주시는 감독님과 최대한 오래 같이 운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일단 ‘잘 가르친다’는 개념을 믿지 않습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이 가르치는 사람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그렇게 단순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저는 초등학교 야구부의 지나친 엄숙함이 싫었습니다. 저렇게 매일같이 혼나고도 애들 멘탈이 온전할까 걱정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특히 잘한다고 소문난 학교일 수록 아동학대에 가까운 폭언과 온갖 주문들은 대단하더군요. 지금 리틀야구팀의 대부분이 그때의 초등학교 야구부처럼 변한 현실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조금더 부연설명이 필요한 주장이지만 감독, 코치님들이(초중고등학교 모두) 아이들을 가르치는 노력과 시간을 줄일 수록, 대신 줄어든 시간을 훈련을 조직하고 디자인하는데 사용할 수록, 저는 좋은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올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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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움직임을 배우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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