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의 미묘한 심리를 재밌게 풀어내는 책 <공중그네>

이 책은 감각적인 표현이 매력인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꽤 유명한 책이죠. 하루키만큼 우리나라에서 많은 매니아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단편소설입니다. 이라부라고 하는 괴짜 정신과의사가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다루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신이치라고 하는 올스타급의 프로야구선수도 등장하는데, 베테랑 3루수인 신이치선수가 갑자기 입스(공을 아무런 이유없이 원하는 곳으로 던지지 못하는 현상)를 겪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신이치선수가 입스를 극복했는지 소설에서는 결론을 내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실력있는 후배가 들어온 것에 대한 부담감, 마음 속에 은근히 자리잡은 질투심 등이 원인임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네요. 마음에 와닿은 인상적인 몇 대목을 옮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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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넌 줄곧 평탄한 길을 걸어오긴 했지.”
 
“무슨 뜻이야?”
 
“고등학교에서나 대학에서나 늘 스타 선수였잖아. 고시엔에서는 끝내기 안타를 날리고, 6개 대학 리그에선 베스트 나인으로 선정되고.. 프로에 들어와서도 1년 만에 레귤러 자리를 차지했고, 올스타 고정 멤버고..”
 
“놀면서 그렇게 된 거 아냐.”
 
“그야 그렇지. 노력의 산물이겠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복 많은 야구 인생이다. 좌절한 적도 없이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그럼, 입스인가 뭔가 하는 게 좋은 경험이란 말이야?”
 
“시비 걸지 마라. 그런 뜻이 아니잖아. 하지만 순조롭게만 지내온 사람한테는 보이지 않는 게 많은 법이야. 내가 줄곧 2군 생활이었던 건 잘 알지? 그들 중에도 입스는 있어. 인코너를 못 치는 녀석, 견제구를 못 던지는 녀석, 개중에는 투수한테 공을 못던지는 캐처까지 있다구.. 네가 스로잉 입스를 모른다는 걸 알았을 때, 난 절실하게 느꼈다. 아아, 신이치는 이제껏 다른 세상에 살았구나. 밑에서 악전고투하는 무리는 보이지도 않았던 거구나, 라고.”
 
“사람을 그렇게 냉혈인간 취급하기냐!”
 
“내 말이 맞잖아. 얘기를 가만 들어보면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질 않아. 그러니까 일단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고치기가 어렵지.”
 
—-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공을 던지세요?”
 
“아무 생각 없어.”
 
“제구력에 법칙이란 게 있을까요?”
 
“제대로 된 법칙은 없는 것 같은데, 제구력이란 게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를 따라가느냐 못 따라가느냐 하는 문제 아닌가? 오히려 영감(靈感)에 가까운 거 아닐까?”
 
영감이라.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손으로 공을 던진다. 이거 가만 생각해보면 대단한 일 아냐. 어깨에서 손가락까지 수많은 관절과 근육이 있을테고, 그것들 각각으로 뇌에서 명령을 보내는 거잖아. 그것도 순식간에.”
 
신이치는 자신의 오른팔을 내려다봤다. 정말 잘 만들어진 인체다.
 
“게다가 빠르고 정확하게 던지려면 전신의 근육이 필요하지. 이미지도 더해질테고, 메커니즘으로 보면 정밀기계보다 훨씬 복잡하네. 그렇기 때문에 어디 한군데라도 어긋나기 시작하면 전체에 이상이 생기는 거지.”
 
—-
 
“근데 말야. 야구는 생각하면 할수록 독특한 스포츠란 말이지. 둥근 공을 둥근 방망이로 치잖아. 테니스나 탁구는 라켓이고, 배구는 손인데, 최초로 야구를 한 사람은 틀림없이 희한한 인간이었을 거야. 그리고 공을 보고 친다고는 하지만, 임팩트 순간까지 보는건 아니잖아. 하긴, 끝까지 보면 공을 치기엔 너무 늦지.”
 
말문이 막혔다. 틀림없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시속 150km로 날아오는 공을 적당한 지점에서 코스를 파악하고, 그 다음엔 감으로 휘두르는 게 배팅이잖아.”
 
감? 그런가?
 
“그러니까 방망이 중심에 공을 맞추는 것도 확률로 따지지면 몇만 분의 일에 불과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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