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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축구팀 감독의 자기성찰

해운대FC 여원혁 감독님의 글입니다. 축구는 그래도 SNS 등을 통해 때로는 자기주장도 하고 서로간에 비판도 하는 모습이 간간히 보입니다. 그에 비하면 야구는 여전히 ‘괜히 말했다가’ 분위기가 지배하는 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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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축구, 성적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

며칠 전 끝난 ‘MBC축구꿈나무 여름대축제’에서
저희 해운대FC는 3위에 그쳤습니다.

‘그쳤다’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올해로
창단 2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저희 해운대FC에 대한 주위의 기대,

부모님들의 눈높이를 충족시켜줘야 된다는
부담감, 그리고 성적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욕심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집착으로
변질되었던 거 같습니다.

지금에서야 반성하지만, 4강전 패배 이후
실망한 나머지 3위 시상식을 뒤로한 채
홀연히 부산으로 떠났던 것과

경기 상황 중 심판선생님께 거친 언어를
섞어가며 강하게 항의한 점 또한
이 글을 빌어 죄송한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감독 경험이 2년 밖에 되지 않은
저는 초보 감독입니다.

지금까지 젊은 패기 하나만을 믿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해운대FC가 처음 창단되고 맞이한 지난 시즌,
그때 제가 가졌던 마음가짐은 ‘기대감’, ‘설레임’
그와 동시에 신생팀 이다보니 잃은 거 하나 없는
‘편안함’ 속에서 첫 시즌을 보냈습니다.

작년 주말리그 참가 첫 해에 부산권역
준우승 및 왕중왕전 16강전에서
서울대동초를 상대로 0:1 석패,

화랑대기 12강에서 울산현대를 상대로
2:2 무승부 및 추첨 패 등 해운대FC
첫 시즌이 운까지 따라주어 과분한 성적을
거뒀던 게 지금의 바뀐 제 모습과 상반되어
다시금 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 어떠한 지도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해나가야 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뀐 제 모습과 팀의 지도 방안을 고민하던 중
이 고민이 궁극적으로 봤을 때 한국 유소년
축구에서 성적이 차지하는 비중과
일맥상통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주제넘지만,
‘유소년 축구, 성적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
이라는 명제로 제 생각을 밝히고자 싶습니다.

# 그래도 성적은 낼 겁니다,
하지만 목표는 ‘3위’입니다.

작년 시즌 해운대FC 6학년 아이들 중
축구는 늦게 시작했지만, 키가 165cm에서
170cm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주전 11명
중 5~6명 정도 있었습니다.

남해초 코치시절 때부터 지금까지 9년 가까이
코치, 감독생활을 해오며 신체조건이 작년
해운대FC 1기 아이들처럼 좋았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 지도자생활을 하면서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축구를 늦게 시작해 기본기가 부족하지만 신체조건이 좋은 아이들을 지도해 보았고, 올해는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아이들이지만, 구력도 있고 기본기를 비롯해
공을 찰줄 아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짧은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작년과 올해를 비교해봤을 때
U-12 연령대에서 ‘우승’을 목표로 하려면
작년처럼 신장이 큰 아이들이 적은 노력 속에서도 유리하고, 올해 저희 아이들처럼 작은 아이들이 ‘우승’을 목표로 한다면 ‘혹사’가 불거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이번 대회를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은 즉슨, 작은 아이들이 큰 아이들과 겨루는 상황에서 하나라도 유리한 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 것이 기술과 축구에 대한 이해력이라고
가정했을 때, 가뜩이나 무더운 날씨에 펼쳐지는 여름대회에서 기술과 축구에 대한 이해력을
가진 팀이라고 해도 토너먼트 결승전까지
7~9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과연 우승이 그 것만으로 가능할까요,
무엇이 필요할까요?

제 생각은 앞서 언급해드린 ‘혹사’의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투력’, ‘체격이 안되면 체력’,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

작지만 재능 있는 아이들로 구성된 팀에
이 3가지가 가미된다면 충분히 우승을
노려볼만한 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축구계에서 흔히 말하는 ‘골든 에이지’
시기인 이 유소년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저는 ‘개인전술’
(기술, 받고 주는 것, 선수 스타일 개발)과
축구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별도의 체력훈련 없이 두 가지만을 집중적으로 지도했더니 남해에서 ‘3위’를 했습니다.

(4강전에서 안 뛴다고 혼내서 미안하다.
이제 알겠다, 못 뛴걸)

그래서 앞으로는 해운대FC 모든 연령대의
목표를 ‘우승’이 아닌 ‘3위’로 설정했습니다.

3위도 물론 유소년 시기 때 성적에 연연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좋은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이 시기 때 우선적으로 배워야 될 축구에 대한
기본적인 부분만 지도자가 지도하고, 조화 시키고,

아이들과 소통하고, 동기부여를 시켜준다면
어느 정도의 성적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걸
2년 사이에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도자 선생님들마다 처해진 위치와 축구에 대한 생각, 철학이 다르니 성적이 중요할 수도 있고, 성적보다는 선수의 성장에 신경을 더 쓰시는
분들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 글의 내용이 우승팀을 폄하하려는
뜻이 아님을 밝혀드립니다.

저희 해운대FC도 작년 화랑대기 4학년부,
5학년부에서 동반 우승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한다는 것은 지도자로서 그만큼 아이들에게 헌신하며
노력했다는 뜻이고,

지도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기에
우승을 목표로 하시는지도자 선생님께
오해로 다가오셨다면 본의 아니게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유소년 시기 때
성장에 중점을 두며 좋은 축구를 하며
우승을 하는 초등학교 팀도 봤고,

올해 친선경기를 통해 붙었던 팀들 중에서도
광양제철남초, 수원삼성U12팀 또한
성적과 성장을 잘 분배하여 지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유명 유스팀 이다보니 팀 전술에 적합한
선수 영입이 수월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해대회를 마무리하고 화랑대기를 준비하는
첫 회복훈련 때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쌤이 아무리 화가 나고 흥분해도 욕은
절대 하지 않을게, 혹 욕을 한다면 그때는
너희들을 지도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때는 쌤이 나갈게.’

어디든 2년차가 힘들다고 하던데,
그 말의 뜻을 몸소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승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
남해대회를 통해 ‘유소년축구지도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여러 처해진 상황들로
인해 변질되었던 ‘초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려는 이유가 뭘까요?
산의 높이에 연연하며 과정을 무시하고
이 산을 오르겠다는 결과만을 바라는
등정주의,

아니면, 산을 오르며 경치도 감상하며,
많은 사람들과 담소도 나누고, 그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중점을 두는
등로주의.

우리나라 유소년 축구가 발전하고,
아이들이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등정주의일까요,
등로주의일까요.

앞으로 해운대FC 아이들과 부모님을 포함한 해운대FC를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정중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는 시상식을 떠나지도 않을 테고,
‘3위를 차지했다.’라는 표현을
기쁘게 쓰고 싶습니다.

그러니 성적에 대한 부담감 없이 제가 원하는
축구를 아이들에게 마음껏 지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팀의 기준이
성적이고,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멤버’가
좋아야 하고, 초등학교 특성상 올해는
이 팀이 멤버가 좋고, 내년에는 저 팀이
멤버가 좋다고들 합니다.

제가 가장 꺼려하는 말이
‘올해 멤버 어때?’라는 질문입니다.

저는 저희 해운대FC가 많은 사람들에게
‘잘하는 팀’으로 인식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한 해 한 해 멤버가 바뀌고, 어느 누가 보더라도
해운대FC만의 뚜렷한 색깔과 특징이 있는
팀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해운대FC의 지도철학인
‘드리블러 양성소’와 ‘공을 찰줄 아는 선수’를
육성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지도자로서 실수한 게 있다면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바라며,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겸손하게
지도자생활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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