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 45kg의 초등학교 홈런왕

신경과 의사이자 야구학부모이신 안성기 원장님의 코치라운드 뉴스레터 8호 기고글입니다. 

2022 선수촌병원장기 서울특별시 U13 야구대회(흥타령기 예선)의 시상식에서 홈런상에 내 아이의 이름이 불릴 때의 순간은 아이가 야구를 시작한 후 아마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너무 가녀린 아이라서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주변에서는 힘도 없는 삐쩍 마른 아이를 왜 야구를 시키냐며 만류하곤 했다. 부모를 닮아서인지 – 30대 시절 우리 부부의 체중은 합이 100kg이었다. 40대인 지금은 조금 늘어 110kg이 되었다 – 팔, 다리가 유난히 길고 가느다란 체형의 아이, 한때 다리가 너무 가늘어 아기공룡 둘리의 ‘또치’라고 놀림아닌 놀림을 받던 아이였다. 지금도 키 161cm에 45kg이니, 야구판에서 아이는 여전히 너무 마른 아이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홈런왕이 되었다.

그래 더 빨라지면 돼

뉴턴의 운동법칙(F=ma), 즉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이다. 내 아이에게 질량, 즉 몸무게를 늘리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편식이 심하지도 밥을 적게 먹는 아이도 아니다. 그러나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더 이상 먹지 않는 아이이다. 어릴 때부터 맛있는 사탕이 봉지 가득 있어도 하루에 딱 하나만 먹던 아이였다. 스포츠음료나 탄산음료도 먹지않고, 우유, 케익도 싫어하는 아이, 그저 하루 3끼 밥과 떡, 과일을 좋아하는 아이라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칼로리를 채우기도 벅차 여분의 에너지를 지방으로 바꾸고 체중을 늘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아이와 의논해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 잘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기로 했다. 즉 질량이 부족하니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원래도 빠른 아이지만,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런닝 훈련을 하고, 순간 가속도를 위해 멀리 뛰기, 높이 뛰기, 그리고 순발력 운동 등 누구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다. 힘이 없이 홈런이 나올 수는 없다. 지난 1년간 체중은 3kg정도 늘었지만, 아마도 속도의 증가는 체중의 곱이상 늘지 않았을까? 그렇게 증가된 힘으로 아이는 홈런을 치는 것 같다. 배트 안쪽에 먹힌 타구가 여유롭게 장충야구장의 좌중간을 넘길 때, ‘정말 힘이 많이 붙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복보다는 생각하는 야구

여러가지 사정으로 1년전부터 모든 야구 레슨을 중단했다. 그래서 타격 훈련은 학교에서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타격에 관해서는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또한 야구인도, 운동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서 많은 공부가 필요하긴 했지만, 타격의 이론, 힘을 쓰는 원리, 타이밍을 맞추는 방법 등 줄어든 반복훈련의 시간을 아이와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데 할애했다. 그렇게 이론을 토대로 아이와 함께 스윙을 만들어갔다. 아이의 몸이 스스로 느끼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윙을 자기조직화할 수 있도록, 그래서 자신만의 독특하지만 효율적인 스윙을 찾을 수 있도록 그저 이야기하고 기다려주었다.

내가 보기에 아이의 스윙은 조금 독특하다. 손목(전완근)을 거의 쓰지 않고 몸통의 큰 근육을 이용해서 빠르고 큰 스윙아크를 만드는 스윙은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골프를 치던 시절의 바디턴 스윙과 페이드 샷을 치는 방법을 접목한 스윙이었다.) 앞으로도 스윙은 계속 변할 것이다. 좋든 나쁘든, 옳든 그르든, 아이가 지금처럼 스스로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몇번의 스윙을 해야 타격왕, 홈런왕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남들보다 적게 스윙을 했지만 13타수 9안타(6할9푼2리)의 타격상과 홈런상을 수항했다. 그리고 이 상은 이런 이유로 아이와 나에게 매우 남다른 선물이었다. 우리는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가고 있어, 그렇지만 틀리지 않았어. 그렇다고 아이가 게으름을 피운 건 절대 아니다. 내가 아는 한 누구보다 열심히 기본 운동을 하며, 자기 관리를 했던 아이이다.

성장이란

아이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다만 어른들이 아이에게 그럴 기회와 시간을 주지 않을 뿐이다. 코칭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코칭은 오히려 아이의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 아이와 보낸 지난 1년의 시간은 이런 것들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같은 생각과 철학으로 아이가 자신의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항상 지지해 주시고 기다려주시는 학교의 감독님께도 고마움의 말을 전합니다.

안성기 원장님께서 작년에 진행해 주신 강연 영상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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