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가 팀을 바꾸어도 변하지 않는 것 (임재현)

SSG 랜더스 임재현 코치님께서 귀한 원고를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코치라운드 뉴스레터 11호에 소개된 글입니다.

나는 열심히 하면 분명 기회가 찾아 올 것이라는 믿음 속에, 우직하고 고지식하게 야구에만 몰두했던 그런 선수였다. 2013년 SK와이번스에 입단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지만, 비록 당장 눈앞에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성실함과 꾸준함은 분명 결실을 보여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다지 현명한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고,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코치님들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나의 고집을 좀 더 우선시 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를 돌이켜 보면 나는 내가 만든 동굴 속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2군에 있는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진로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곤 했지만 방출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은 깊었지만,답을 내리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내 인생은 오직 야구로만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야구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찾는 것 뿐이라는 사실은 명확했다. 내가 걸어온 야구의 길을 돌이켜 보았다. 나는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야구를 해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야구에 임했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념 속에서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도 항상 노력하는 선수였지만, 실상 2군을 벗어날 기회는 많지 않던, 그런 선수였다.

이러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지금도 피땀 흘려 노력하는 수많은 선수들이 있다. 적어도 나와 같이 무턱대고 야구에만 전념하다 선수 생활을 끝내는, 그런 선수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지도자가 되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리틀야구단 코치로 시작하다

용산구 리틀야구단에서 최초의 코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경험하는 코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은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있었는데. 나이를 불문하고 어린 아이들은 나의 말을 잘 듣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고,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내가 몇 초 전에 이야기한 것도 마치 전혀 이야기해 준 적이 없는 것처럼 까먹곤 했고 내가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전반적으로 코치의 말에 집중하지 못했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해져 있었던 어른들 사이의 소통방법을 잊고,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새롭게 공부하는 것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우선 아이들이 내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나의 지도방식을 바꿔야 했다. 먼저 아이들이 항상 자기들끼리 부르는 노래를 찾아보았고, 목소리는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멀리서도 들릴 수 있도록 큰소리 내기 시작했고, 저학년 아이들도 알 수 있는 쉬운 언어를 사용 했으며, 이야기할 때는 앉아서 시선을 맞추기 시작했다.

연습방식도 제일 먼저 아이들이 야구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 형식(런다운 플레이, 핸드링 게임, 번트게임, 상황배팅훈련) 연습을 통하여 경쟁심과 협동심을 같이 키울 수 있도록 시도해 보았다.

내가 방식을 바꾸자 아이들의 반응도 빠르게 바뀌었다. 아이들은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운동을 할까?’ 기대하며 야구장에 오기 시작했다. 함께 재밌게 운동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이들 간에 서로 경쟁하면서도 돕는 모습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면서부터 기술적인 부분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도 생겼고, 이를 위해 나도 조금씩 공부를 더 해가기 시작했다. 스포츠과학, 운동 역학, 투구, 타격 메커니즘에 관한 책과 스포츠 심리학, 리더십에 관한 강의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식과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필요했다.

“가끔은 7~9살 어린 아이들을 가르쳐 보자” (대런 펜스터)

선수에 맞추어 코칭방식도 바꾸다

리틀아구단에서의 짧은 코치생활을 마치고 간 곳은 연세대학교 야구부였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했던 코칭경험은 대학선수들과 함께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아이들과 대학생이지만 리틀야구단에서 처음 느꼈던 어려움들이 대학생에게서도 묻어 나왔다. 그렇지만 이 친구들은 성인이었기에 코치인 나에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선수에게 다가가는 나의 방식에 변화를 주어야 함을 느꼈다. 먼저 선수마다 면담을 통하여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특별한 형식이나 주제 없이 최대한 많이 선수의 생각을 듣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이야기한 것은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본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던 선수들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고민이나 진로 문제, 이성친구 문제 등을 털어놓는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것이 잘 되지만은 않았다. 이 시기에 나는 신뢰가 쌓이기도 전에 과도한 코칭을 했다. 나는 분명 도움을 주기 위한 마음에서 한 코칭이었지만, 선수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대해 제공한 과도한 피드백은 오히려 선수의 플레이를 경직되게 만들었다. 선수가 스스로 느낄수 있는 부분을 방해하였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선수에게 피드백을 할 적절한 타이밍과, 선수와의 신뢰가 우선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나도 선수들을 대하는 다양한 노하우를 습득하게 되었고, 선수들도 나의 지도 방식을 더욱 잘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훈련의 집중력도 훨씬 높아졌다. 서로 간의 신뢰가 높아졌기에 문제점들을 발견하면 함께 이야기 나누며 방법을 빠르게 찾아가곤 했다.

그 과정에서 겨울 전지훈련을 통해 야구에 대한 견문이 조금 더 넓어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플로리다 IMG 아카데미에서 진행한 겨울 전지훈련은 체계적인 트레이닝 시설과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와, 스프링캠프, 최신 훈련 환경 등을 경험하게 된 귀한 시간이었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코치들을 만나면서 미국야구와 미국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더 넓은 야구의 세상을 꿈꿔보는 시간이었다. 그해 연세대학교 야구부는 13승 3패 승률 8할대의 승률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그렇게 1년을 연세대학교에서 코치로 일하다 모교인 성균관대학교로 가게 되었다.나에게 모교에서의 코치의 기회가 찾아오다니!, 감회가 남달랐다. 성균관대학교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더욱 다양했다. 앞선 연세대학교에서의 코칭 경험을 토대로 과감하게 새로운 것들을 도입했다. 단순하게 동작만을 반복하는 연습이 아닌 많은 변수가 등장하는 실전과 최대한 비슷하게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시도했다. 배팅을 칠 때도 패스트볼인지 변화구인지 알려주지 않고 친다거나, 주자를 설정한다던지, 타임체크를 하며 수비훈련을 하게 하였다.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이전보단 수월했다. 앞선 리틀야구 선수들, 그리고 대학생 선수들과 보낸 시간이 있었기에 선수들과 더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 덕인지 시즌에 들어가서도 함께 이야기 나누며 보다 빨리 고쳐 나갈 수 있었다.

선수들의 역량이 커질수록 나도 발전하는 것을 느꼈다. 한명한명의 데이터가 쌓이면 좋은 교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선수의 연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기록했다. 연습 방법과 이유, 그리고 성과도 기록으로 남겼다. 이런 행동들은 내게도 좋은 영향을 끼쳤지만 선수들에게도 훈련에 임하는 자세를 조금 더 진지하게 만들어주는 촉매제가 됐다.

성공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나가다

시즌에서의 성과도 좋았다. 대학리그 3개 중 2개를 우승했으니 말이다. 당연히 나의 몫은 그다지 크지 않다. 감독님과, 선배 코치님들께서 이끌어 주시고 선수들이 잘 따라와준 덕분이다. 우승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감사의 공을 돌리는 선수들을 보며 ‘이런게 코치의 보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나는 나의 코칭이 어느 부분에서는 맞고, 어느 부분에서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갔다. 그러던 차에 또 다른 기회가 나에게 찾아왔다. 바로 친정구단으로의 복귀였다.

내가 몸 담았던 SSG 랜더스의 퓨처스팀에서 수비와 주루코치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것이다. 그런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이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많은 것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짧은 코치 생활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바로 코치는 결국 사람을 상대로 일을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학생이든, 어린 친구들이든, 프로야구 선수든, 그들의 야구수준에는 차이가 날 지언정 코치인 나와 마찬가지로 매일 잘하려고 노력하는 한 명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려고 한다.

나의 코치 생활이 그리 길지 않기에 아직까지도 배우는 입장이 더 크다. 코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간직하고,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계속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면서 배워나갈 것이다. 선수들과 수직적인 관계를 고집하지 않고, 연습과 경기를 하며 각자가 느낀 것을 선수와 공유하면서 서로 배워나가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처럼 ‘막무가내로 몸만 열심히 쓰는 야구가 아니라 다양한 지식들과 결합하여 승부를 보는 것’을 코칭철학으로 삼은 만큼, 나는 계속해서 많은 인사이트를 도출해내고 싶다. 인생 2막으로 시작한 코치의 삶! 많은 선수들의 발전을 도운 코치로 이름을 남기고 싶다.

글 : 임재현 SSG 랜더스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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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김태형
4 months ago

좋은 글 감사드리며 코치로써의
제2의 인생 성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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