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만!! (U18 대표팀의 투수운용에 대하여)
다양한 야구 스타일을 볼 수 있어서 국제대회를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번 U18 야구월드컵도 관심을 가지고 시청했습니다. 대만 야구의 확 달라진 스타일, 우리 턱밑까지 쫓아온 네덜란드 야구 등등, 이야기 나눌만한 흥미로운 주제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따로 정리를 해보려고 하구요. 아무래도 많은 논란이 있었던 우리 대표팀의 투수운용 문제를 한번 더 짚어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 브라질과의 경기에 김서현 선수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투수들의 출전기록을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날 적지않은 투구수(41개)와 멀티이닝(1.1이닝)을 던진 선수가 약팀인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또 나오는 장면이 심상치가 않았기 때문인데요.
김서현 선수는 마지막 4경기를 모두 나오며 127개를 던졌습니다. 프로야구에서도 보기 힘든 멀티이닝 4연투를 18살 투수가 한 것입니다. 김서현 선수는 9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213개의 공을 던져 이번 대회 참가한 투수들 중에 2번째로 많은 공을 던졌습니다. 가장 많은 공을 던진 투수는 233개를 던진 윤영철 선수입니다. 윤영철 선수도 우리나라가 이번 대회에서 치른 9경기 중에 5경기를 나왔습니다.
김서현 선수는 토미존 수술을 마치고 복귀한 지 아직 1년이 되지 않은 선수입니다. 그나마 대회가 7이닝 경기로 진행되어 투구수를 줄일 수 있었던 점이 다행입니다. 9이닝 경기였다면 두 선수는 어쩌면 300개 가까운 공을 던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투수운용을 어떻게 했는지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제 기준에서 최소 하루는 쉬어야 하는 투구수(25개 이상)는 노란색 박스로, 최소 이틀은 쉬어야 하는 투구수(50개 이상)는 분홍색 박스로 구분했습니다. 투구수나 휴식일, 경기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등판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경우에는 빨간색 글자로 표시를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7번, 일본은 3번, 대만은 2번입니다. 미국은 없습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투수들을 10명 안팎으로 뽑아온 사정은 똑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1~2명의 에이스는 어느 팀에나 있습니다. 하지만 대만, 일본, 미국 모두 왠만하면 투구수와 관계없이 다음날은 휴식을 주었습니다. 3연투를 시킨 팀은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세 팀 통틀어 연투도 5번 밖에 안보입니다. 연투를 시킨 경우에도 전날 투구수가 적거나 1이닝만을 소화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3이닝 이상 길게 던진 투수들은 대부분 2~4일에 걸쳐 휴식을 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까지도 혹사를 낭만으로 치켜세우던 일본도 이번 대회는 달랐습니다. 리그 경기를 운영하듯 선수들을 고르게 투입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기를 이기고 싶고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싶은 마음은 그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처럼 투수운용을 하지 않는 이유를 우리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회의 투구수 규정을 따랐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여러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투구수 관리 프로토콜을 우리나라만 따르지 않았습니다.
입시가 걸려 있어서 어쩔 수 없다. 팀에 믿을 만한 투수가 별로 없다.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짤릴 지도 모른다. 많은 지도자들이 그동안 토너먼트 대회의 무리한 투수운용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들입니다. (선수가 던지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는 말은 정말 최악..) 하지만 이번 대회는 그런 사정을 말할 수 없는 대회입니다. 그동안 투수들을 혹사시킨 학생야구 지도자들이 내세운 하소연들은 과연 사실일까 궁금해 집니다.
왜 꼭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해야 하냐는 항변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투수운용을 다양성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건강이나 안전을 해칠 수 있는 독자적인 행동은 오히려 무모함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슈퍼라운드에서 중용했어야 할 김서현 선수와 황준서 선수는 왜 약팀 브라질과의 경기에 나온 것인지? 첫날 미국과의 경기에 박명근 선수를 1회 2아웃 2-2 카운트에서 교체한 이유는? 김서현 선수가 예선 일본전에 8점차로 앞선 상황에서 나온 이유는?
투구수 관리 뿐만 아니라 이번 대회는 투수의 운용 관련해서 물음표를 자아내는 장면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학생야구에 미디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이번 대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감독, 코치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묻는 사람이 없기에 덕아웃의 생각을 알 길이 없습니다.
최승표 코치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