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꿈을 묻기 전에
우리는 어린 선수들에게 종종 묻는다.
“너의 꿈은 무엇이니?”
야구를 시작하고 나서 우리 어린 선수들은 수많은 어른들로부터 이 질문을 듣게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프로야구 선수’나 ‘메이저리거’가 되는게 꿈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야구선수’라는 키워드만 꿈으로 입력된다. 그것만이 야구를 하는 이유가 된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에게 꿈을 묻기 전에 어른으로서 먼저 알려주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꿈 중에 너희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보통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엘리트 야구를 시작한다. 요즘은 일찍 들어가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진학이 어렵기 때문에 2,3학년에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운동에 재능이 보여서, 야구가 좋아서, 주위에서 추천해서, 공부는 아닌 것 같아서(^^) 등등 야구를 시작한 동기는 저마다 제각각이다.
아이가 갑자기 야구를 시작하게 되면 부모님들은 모든 것들이 낯설다. 야구선수로 가는 길이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이야기를 듣고 알아보지만 정보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자녀의 야구 입문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다보니 감독, 코치들의 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그러기에 야구를 막 접하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지도자들의 마음가짐은 다른 누구보다 중요하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평생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거운 책임감이 필요한 역할이다. 초등학교 수준의 어린 선수들에게 필요한 방향성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무엇을 가르칠까 고민해 본다. 무엇보다 나는 이것을 스스로에게 강조하고 싶다.
“초등학교 야구선수들은 선수가 아니다.”
13살도 안된 아이들을 선수로 분류할 필요가 있을까?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승리와 패배의 느낌을 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경험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기고 지는 것에 집착하는 문화에서 아이들은 야구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우리 학생스포츠는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기 시작하면 즐겁게 야구를 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그나마 즐기면서 야구를 할 수 있다면 초등학교 시절이 유일할 지도 모른다. 실수와 패배의 아픔, 좌절을 지나치게 어린 나이부터 느끼게 할 필요가 있는지 나는 의문이다.
어린 아이들을 지도할 때 부모님들께 자주 드렸던 말씀이 있다.
“지금 야구를 잘한다고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건 아니에요. 중고등학교 6년, 그리고 대학교 4학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본 많은 어린 아이들이 초등학생인데도 이미 얼굴이 피곤에 절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경쟁과 승패에 지쳐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꿈을 야구선수로 제한해 놓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 야구는 초등학교부터 프로야구까지 야구를 대하는 방식이나 마음가짐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있다. 초등학교는 중학교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고등학교, 대학교, 전부 선수의 성장단계에 맞게 전략적으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모든 지도자들이 초등학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들은 자유로운 학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로야구선수들을 흉내도 내보고, 새로운 동작을 혼자 시도해 보고, 그러면서 실패도 경험해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웃으면서 자기나름대로의 야구를 즐기는 경험을 이때 충분히 하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이때 기본기를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기본기를 만들지 못하면 야구선수로 성공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완전히 반대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프로에서도 여러 선수들을 관찰하고 코치들과 이야기나누며 갖게 된 나의 생각을 조금 나누고 싶다.
프로에 드래프트된 선수들도 기본기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 요즘 선수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기본기 훈련을 충실히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기본기는 어릴 때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 가면서, 아니 어쩌면 은퇴할 때까지 계속 만들어 가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오히려 초등학생보다 성인야구에 가까워질 수록 기본기를 강조하는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 프로선수들도 프로에 온 이후에 기본기를 제대로 마스터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야구에는 야구에 대한 기본기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이는 선수들이 18~20살에 프로에 들어와 마이너리그에서 4~5년을 보내고 훌륭한 기본기를 갖춘 선수들로 변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기본기는 어느 특정 시점에 반짝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가야 할 능력이다.
선수들은 성장을 하면서 몸의 근육이 붙고 뼈와 골격 또한 커진다. 몸이 변하면 동작도 변하게 된다. 어릴 때 익혔던 기본기의 틀이 무너지기 쉽다. 점점 기본기보다는 힘을 키우는데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며 기본기에 조금더 신경을 쓰는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고, 제도의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 일본의 스포츠 기자인 키무라씨의 칼럼 중에 공감되는 내용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아마 스포츠에서 코칭의 어려움을 더욱더 묻는 시대가 됐다. 그것은 지도자가 지녀야 할 자질을 묻는 것과 같은 의미다. 아마 수준에서 승리 지상주의의 잘잘못. 프로가 되려고 하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이가 어떻게 해서 함께 즐기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미디어가 발달된 지금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무엇부터 바꿔야 하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조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꿈도 그렇고 기본기도 그렇고 어린 선수들에게 한가지 길만 따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길이 아니면 너는 실패야” 라고 말하기 보다 ‘실패할 자유’를 주었으면 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 실패로부터 배우기가 어렵다. 실패해도 된다고 믿을 때, 실수해도 혼나지 않는다고 믿을 때 아이들은 실패로부터 배우게 된다.
실패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프로야구선수가 안되면 실패인 건가?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어른의 역할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야구선수의 실패는 사랑하는 야구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숨막히는 경쟁 속에서 승패에 자유롭지 못하며,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그런 삶이다.
어린 아이가 야구를 시작하겠다고 찾아오면 나는 이렇게 가르칠 것이다. 야구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줄 것이다. 프로야구선수의 꿈은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그것말고도 더 많은 꿈이 있다고 알려줄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재미와 팀스포츠를 하는 재미를 함께 느끼도록 동기부여를 해줄 것이다.
하나의 문화가 만들어지려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냥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꿈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자유롭게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야구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화 이글스 전략팀 김진영님께서 모 자격증 과정의 과제제출용으로 작성하신 글입니다.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 소개를 부탁드렸습니다. 흔쾌히 허락해 주신 김진영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