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플레이는 어디서 나오나?

얼마 전 롯데 자이언츠 신용수 선수가 기가 막힌 홈스틸 장면을 야구팬들에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상대 수비가 느슨하게 플레이하고 있는 사이에 찰나의 순간을 노려 과감하게 홈으로 뛰어든 것인데요. 개인적으로 이런 플레이를 시원한 홈런이나 멋진 다이빙캐치 같은 장면보다 더 좋아합니다. 자칫 실패했다면 ‘본헤드’ 플레이로 비난받을 수 있는, 두려움을 뛰어넘은 결단과 도전정신이 담겨 있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에서 창의적인 플레이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꼽는 사례는 딕 포스베리입니다. 1960년대 후반에, 지금은 높이뛰기에서 세계 표준이 된 ‘배면뛰기’ 동작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선수인데요. 딕 포스베리는 당시에 모든 선수들이 배를 아래로 해서 바를 뛰어넘는 동작을 하고 있을 때 배가 하늘을 보며 점프하는 배면뛰기 동작으로 높이뛰기의 판을 송두리째 바꾸며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을 제패했습니다.

보통 비즈니스든 스포츠든 창의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타고난 능력에 보다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많습니다. “저 사람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아. 저 선수는 남다른 플레이를 보여줘.” 이렇게 말하며 창의성 역시 타고난 운동신경과 같이 개인의 능력으로 간주하는 편인데요. 살면서 주변을 보면 유달리 남다른 것들을 시도하는 분들이 종종 보이기는 합니다. 그런 성향이 어느 정도 타고난 기질로서 존재한다는 점을 완전히 부정하긴 어려운데요. 하지만 포스베리의 배면뛰기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들여다 보면 창의성이 발현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딕 포스베리가 배면뛰기를 시도할 때 높이뛰기 경기환경에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때까지는 선수가 점프를 하고 내려오는 곳에 모래와 톱밥을 채워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못 떨어지면 다치는 선수도 있었고, 얼굴부터 떨어지거나 하면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것을 의식하다 보니 선수의 동작도 어느 정도는 위축될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 이후에 모래와 톱밥이 푹신한 폼매트로 교체되기 시작합니다. 선수들은 떨어지는 동작을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선수들의 창의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딕 포스베리 말고도 배면뛰기를 시도한 선수가 또 있었다는 사실이 말해줍니다. 캐니다의 여자 높이뛰기 선수 데비 브릴도 비슷한 시기에 배면뛰기에 도전했습니다. 데비 브릴과 딕 포스베리가 서로의 경기 모습을 참고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해진 바가 없습니다. 두 선수 모두 스스로의 아이디어로 새로운 동작을 실험해 본 것으로 보입니다. 데비 브릴은 푹신한 폼매트를 보자 마자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푹신푹신한 폼매트를 처음 봤을 때 생각했어요. 다른 동작으로 한번 뛰어볼까?”

폼매트라는 환경이 데비 브릴의 내면에 있던 상상력에 불을 지핀 것입니다. 브릴은 자신이 새롭게 개발한 배면뛰기 방식으로 여자 높이뛰기에서 182.88cm를 뛰어 넘은 북미 최초의 선수가 됩니다.

그렇다면 코치는 이런 창의적인 플레이가 세상에 나오는데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데비 브릴은 특별한 코치 없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연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딕 포스베리는 전문 코치의 도움을 받으며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준비하며 자료를 뒤져보니 포스베리 역시 코치의 도움 없이 스스로 배면뛰기 동작을 창안해 낸 것으로 많이 소개되고 있더군요. 그런데 여기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습니다.

오레곤 대학에서 포스베리는 베니 와그너라는 코치의 지도를 받게 됩니다. 와그너 코치는 사고가 유연했던 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하던 점프 방식 위주로 선수들을 지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 신입생이던 포스베리와의 상담을 통해, 공식적인 연습 후에 몇 차례 정도는 마음대로 뛸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해 주었다고 합니다. 포스베리의 방식에 대해 우호적이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방식만을 고집하는 코치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포스베리는 자신이 생각한 방식을 기존의 방식과 번갈아 가며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코치가 포스베리의 (당시로서는 무척 기이한 동작으로 보일 수 있는) 새로운 동작을 ‘쓸데없는 짓’으로 간주하고 못하게 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등장하지 않았을 겁니다.

포스베리의 사례는 창의성이 경기장에서 발휘되려면 선수 개인의 재능 뿐만 아니라 주변의 환경이 적절히 뒷받침되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어찌 보면 모든 선수는 저마다 창의성의 씨앗을 품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느냐는 어떤 환경에서 어떤 관심을 받고 자라는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글은 9월에 코치라운드에서 번역/출간 예정인 롭 그레이 박사의 책 ‘How We Lean To Move’의 내용에 기반해서 작성하였습니다. 몇몇 외신기사들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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