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이라는 말을 버리자
부상을 입은 선수의 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는 ‘재활’이라든지 부상으로부터의 ‘회복’ 같은 말 대신에 부상에 대한 ‘적응’이라는 표현을 우리 모두가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활이나 회복같은 말을 쓰면 선수는 무의식적으로 부상이 생기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내가 볼 때 그런 생각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부상 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다. 부상이 생겼다는 것은 선수가 새로운 개인제약을 마주했다는 의미와 같다. 선수가 풀어야 할 새로운 문제가 생긴 것이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면, 제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움직임 솔루션을 만들어 내는 일은 선수들이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계속 해온 일이라는 점이다. 선수들은 다양한 제약조건의 변화에 맞추어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몸도 계속 성장하며 바뀌어 왔고, 기술 수준도 계속 높아져 왔으며, 경기규칙과 장비의 변화도 겪어왔다. 늘 그렇게 변화를 겪으며 적응해 온 것이 선수들이다. 어떻게 보면 부상 역시 그런 변화의 또다른 일부일 뿐이다.
2019년에 네토Neto의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는 전방십자인대 부상이 뇌에 일으키는 변화를 관찰한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있다. 전방십자인대 부상의 재발율은 약 30% 정도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이런 높은 재발율은 젊은 선수들도 마찬가지라고 알려져 있다. 나는 재활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재발율이 높은 것은 아닌지 추측해 본다. 혹시 선수가 부상으로 인해 새롭게 맞닥뜨린 개인제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재활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 연구는 전방십자인대가 손상되면 감각과 운동을 담당하는 관련 뇌 영역에서도 장기적인 기능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움직임을 조절하는 운동피질도 활동이 저하되고, 움직임을 느끼는 고유수용성감각과 촉각을 처리하는 기능도 떨어졌다. 전방십자인대 재건수술을 받아도 신경계의 기능저하는 회복이 되지 않는 것으로 관찰되었고. 수술 후에 성공적으로 복귀한 선수들 조차도 건강한 대조군과 비교했을 때 다른 뇌 활동이 확인되었다.
내가 부상을 당한 야구선수들의 주의초점attentional focus을 관찰한 연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나는 무릎 부상을 당해 재활을 하고 있는 타자가 스윙을 할 때, 그리고 팔꿈치 부상으로 재활을 하고 있는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주의를 어디로 가져가는지를 건강한 대조군과 비교하여 관찰하였다. 이를 위해 우리 연구팀은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는 사이에, 그리고 투수가 공을 던지는 사이에 짧은 소리를 들려주고 소리를 들은 시점에서의 팔의 각도, 무릎의 각도를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를테면 ‘삐’ 소리를 들었을 때 무릎이 45도 이상 구부러졌는지 등을 판단해서 알려주는 식이다. 나는 응답의 정확도 수준을 주의초점의 수준으로 간주했다. 대답이 정확할수록 그만큼 선수가 팔이나 무릎의 움직임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타자는 팔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부상 중인 선수와 부상이 없는 선수 사이에 주의초점의 수준은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무릎의 각도에 대해서는 정확도가 확실히 차이가 났다. 무릎 부상에서 회복 중인 타자들이 무릎의 각도를 훨씬 더 정확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상은 선수로 하여금 부상을 당한 신체 부위에 더욱 주의를 쏟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연구결과라고 할 수 있다.
투수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팔꿈치인대접합수술, 일명 토미존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하고 있는 선수들은 건강한 대조군에 비해 무릎과 팔의 움직임 모두를 더 정확하게 인지했다. 투수에게는 팔꿈치 부상이 단순히 부상을 당한 팔 뿐만 아니라 신체 전반에 폭넓게 내적주의초점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리를 움직이는 방식이 팔꿈치에 가해지는 스트레스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투수에게는 내적주의초점이 신체 전반에 보다 넓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정리를 하자면, 부상은 선수가 마주하는 개인제약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다. 선수는 바뀐 개인제약으로 인해 받아들이는 정보에도 차이가 생기게 된다. 정보라는 입력과 움직임이라는 출력 사이를 미세조정하는 방식도 달라지게 된다. 다소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완전히 새로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재활 프로그램은 이 점을 고려해 재활을 시작할 때부터 퍼포먼스 향상을 위한 운동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단순히 이전에 움직이던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수에게는 재활이 아니라 새로운 몸에 적응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인간은 어떻게 움직임을 배우는가』14장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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