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지명 철회 사태,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결과주의 신화의 몰락과 회복 절차의 숙제 (김선웅 변호사)

KBO리그 2021년 1차 신인지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한 구단이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경력을 이유로 고교 졸업 예정 선수의 1차 지명을 철회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해당 학생선수의 학교폭력 가해 전력이 불거지자 야구팬들은 신인지명 철회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그동안의 사례를 봤을 때 지명철회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해당 구단은 악화된 여론을 고려했는지 신속하게 지명철회라는 집행검을 휘둘렀다.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신화를 끝낸 일대 사건

야구팬들과 언론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환영하고 있지만 야구계, 특히 아마추어 야구선수들, 지도자들, 학부모들에게는 신인지명 철회가 상당히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고등학교 때도 아니고 중학교 때의 일이라는 점, 해당 학생이 이미 처벌을 받았다는 점, 1차지명을 받을 정도로 야구잠 재력이나 실력이 뛰어났다는 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폭력 가해학생이 거액의 계약금과 함께 지명을 받고 KBO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과거의 기억속에 빠져 있던 야구계 사람들이 구단의 신인 지명 철회 결단을 충격으로 받아들일 것이 분명하다.

​아마추어 야구선수가 학생이라는 신분에 더 방점이 찍히고, 프로선수도 인성과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사회가 도래한 상황을 야구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번 신인지명 철회 사건은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이제까지의 신화를 끝내는 한국야구 역사의 일대 사건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것이 과정은 상관없이 결과가 좋으면 된다, 돈만 잘 벌면 된다, 능력만 있으면 된다, 경제만 잘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주의 신화는 이미 무너지고 있다. 재벌총수나 기업경영자들이 그랬고, 전임 대통령들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공정이 아닌 능력으로 추앙을 받다가 비리, 불법행위로 추락한 그간의 여러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갑질과 미투 폭력, 차별대우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물론 위와 같은 사례로 우리 사회가 완전히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사회의 진보는 이루어지고 있다.

​양극화 시대에 공정과 정의가 강조되며 대중들은 이러한 이념에 목말라하고 있다. 공정과 정의의 이름으로 가해자 내지 행위자가 사회적 책임을 지는 부분에 환호하고 감정을 해소하고 있다.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위들은 가차없이 까발려지고 비판과 비난을 피하지 못한다. 다만 대상자에 대한 비판과 비난, 추가적인 책임추궁이 학원스포츠나 프로스포츠를 정상화하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본질적인 해결 방법인지는 의문이다.

​야구 잘하는 학생, 힘있는 학부모 위주로 해결하려는 경향

이번 지명철회로 피해자가 가해자와 가해자의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과를 다른 방식으로 받았거나 그에 대한 책임을 묻게 돼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가해자를 추가로 비난하고 그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피해자의 문제는 해결이 될 수 있을까?

​피해자의 완전한 회복과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책임추궁 및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게 현재의 학교폭력 분쟁해결 시스템이다. 또한 관련자들의 인식이 인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학교폭력을 해결하지 못하는 본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특히 미성년자들의 관계에서는 학부모, 지도자, 학교의 책임이 더 크다.

이번 지명철회를 당한 학생 사례에서 나타났듯이 전형적으로 잘하는 학생을 살리고, 문제가 불거졌을 때의 불이익(특히 운동부의 해체나 코칭 스텝의 교체)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적 봉합 조치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의 부채(지명철회, 사회적 비난)로 쌓아두는 것일 뿐이다.

학교와 지도자들은 이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폭력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학교폭력을 감춘다고 해도 미래에 더 큰 사회적 비난과 제재가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한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더이상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갈 것이다. 이번 지명철회 당한 학생선수도 만일 중학교 때 피해자와 제대로 된 합의와 감정적 회복이 이루어졌더라면 지금과 같은 후폭풍을 맞아야 했을까?

학교는 학교폭력을 감추지 말고 이해관계자(피해자, 가해자, 관련자)들에게 투명한 절차로 처리하도록 하자. 야구부 감독과 지도자들은 더 이상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신들의 학생선수들이 공정한 판단을 받도록 하자. 당시 지도자들은 잘하는 학생과 야구부를 살리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피해자, 가해자 학생 모두의 야구 인생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야구지도자들도 자신들의 학생선수가 학교폭력에 휘말린 경우 사건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대부분 학생 선수들 간의 학교폭력 사건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지도자가 잘하는 학생이나 힘있는 학부모 위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해결이 아닌 야구부 내 권력관계나 친소관계를 기준으로 학교폭력 문제가 정리되기 때문에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 피해자의 상처가 곪아 터지고 그것이 나중에는 가해학생 쪽으로 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부모, 지도자, 학교, 교육당국이 더 사과해야

학교는 학교폭력의 문제에서도 야구부 학생들을 일반 학생과 동등하게 다뤄야 한다. 특수성을 인정한다 해도 학생선수들을 세심하게 챙길 수 있는 전담선생님을 두거나 책임추궁과 회복 절차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중재나 화해 제도를 운영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감독을 중심으로 일부 학부모들이 총무 등 궂은일을 맡으면서도 야구부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야구부 운영방식도 변화할 때가 되었다. 잘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 학부모의 관심이 큰 선수와 아닌 선수, 고학년과 저학년 등 선수들과 학부모들 간의 생겨난 권력관계를 끝낼 수 있는 운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학생선수들의 인성교육을 강조하기에 앞서 지도자들의 인권교육 등 보수교육이 더욱 절실하다. 이제부터라도 학교폭력 대처방법을 비롯해서 학생선수들을 보호하는 방법 등 교육자로서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그에 따른 책임부과는 이제 야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되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교육과 학교체육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투명하고 공정한 분쟁해결 절차,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감정 해소와 공감대 형성, 피해학생에 대한 보상과 일상 복귀를 위한 도움, 가해학생에 대한 지속적인 교화과정이다.

​이러한 학교폭력의 회복절차를 교육당국과 스포츠단체가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피해 학생이 평생의 상처를 안고 야구를 그만두며, 가해학생이 다시 자신의 인생에 등장하고, 가해학생도 진정한 회복절차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상실한 채 본인의 책임 이상으로 사회적 비난을 감당해야 하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폭력으로 신인지명이 철회되는 이번 사건을 교육당국과 체육당국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학교체육의 학교폭력 해결을 위한 진정한 노력과 투자에 나서야 할 것이다. 피해학생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 가해학생만이 해야 할 것이 아니다. 잘못된 교육, 체육시스템을 운영하고 이에 개입하고 있는 학부모, 지도자, 학교와 교육당국이 더 크게 사과해야 할 부분이다.

글 : 김선웅 (변호사, 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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