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겪을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스포츠인권교과서)

“이걸 경기라고 해? 운동장 30바퀴 뛰고 와!”
“다들 빠져 가지고 말이야. 내일까지 머리 밀고 와!”
“또 삼진 먹고 들어오면 경기에서 빼 버릴 테니 똑바로 해!”

‘운동선수는 맞을 필요가 있다’는 그릇된 믿음

​폭력적인 말을 하거나 체벌을 통해 운동을 가르치는 모습이 여전히 눈에 띕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다양한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은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무척 유혹적입니다. 그 순간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두려움에 휩싸인 선수는 바로 자신의 태도나 행동 방식을 바꾸게 됩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뒤에 선수의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은 경기에서 실수하거나 지게 되면 지도자나 선배로부터 처벌받을 때가 있습니다. 실수를 돌아보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운동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분야에서 필요한 자세이겠지요. 그런데 스포츠계에는 ‘운동선수는 조금 맞을 필요가 있다.’든지 ‘혼이 나야 잘 배운다.’는 그릇된 믿음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잘못한 것이 있을 때 ‘정신이 번쩍 들도록’ 때려서라도 혼을 내 줘야 좋은 선수로 성장한다고 믿는 것이죠. 지금도 어린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큰소리로 욕을 먹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수많은 관중과 심지어는 그 선수의 부모가 지켜보는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폭력과 처벌을 일상적으로 겪고 일방적인 지시를 받으며 운동해야 하는 선수의 내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다행히 최근 들어 스포츠 멘탈 코치나 전문 심리상담사들이 늘어나며 선수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뇌과학과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들도 폭력이 선수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에서의 폭력은 선수의 영혼을 파괴하고, 마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며, 길게 보면 선수의 경기력을 오히려 떨어뜨립니다.

체벌로 눈 앞의 경기는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구와타 마스미)

폭력에 가까운 처벌을 받는 선수는 자신이 한 실수보다 처벌 자체에 주의를 쏟게 됩니다. 지난 경기나 실수를 차분하게 돌아보며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기보다는 벌을 받는 ‘바로 그 상황’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죠.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이런 상황을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폭력은 결국 선수의 경기력을 떨어뜨릴 뿐

​우리 뇌를 단순하게 분류하면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일 안쪽에 있는 부분은 ‘뇌간’이라고 합니다. 뇌간이 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은 우리의 몸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생명과 안전을 담당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에 뇌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보호받고 있습니다. 뇌간은 안전을 위협하는 위기의 순간이 오면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뇌간의 바깥 부분을 감싸고 있는 곳을 ‘변연계’라고 합니다. 변연계는 뒤에서 다룰 신피질과 뇌간의 중간에 있는데, 이 부분 역시 인간의 생존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감정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부위로 학습과 기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변연계는 다른 무엇보다 주어진 상황이 위험한지 아닌지를 빠르게 판단합니다. 신피질이 이성적, 논리적 사고를 통해 판단한다면 변연계는 본능적으로 판단하고 아주 빠르게 결정을 내립니다.

​인간이 지금과 같은 문명생활을 한 것은 인류의 긴 역사를 돌이켜 보면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합니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야생동물 무리 속에서 수렵을 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런 인류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위험신호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지 꼼꼼히 따져 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가는 그대로 사자나 곰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코치의 언어폭력verbal abuse이 선수의 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변연계는 이런 상황을 접하면 먼저 위험신호를 보내서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은 심장을 빨리 뛰게 해서 근육에 피를 공급해 움직일 준비를 하게 합니다. 이렇듯 안전을 최우선 목적으로 움직이는 뇌간과 변연계를 보통 ‘원시뇌’라고 부릅니다.

​뇌의 가장 바깥쪽에 분포되어 있고 가장 넓게 발달한 부분이 ‘신피질’입니다. 현대 문명사회로 넘어오며 발달한 영역으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 줍니다. 이성적 사고를 통해 다양한 정보 처리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변연계를 적절히 통제해서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아 주는 것도 바로 신피질이 하는 역할입니다. 크게 보면 이 세 가지 뇌의 기능이 시시 각각 변하는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운동이든 공부든 무언가에 몰입해서 배우는 시간 동안에는, 생명과 안전에 관심이 있는 뇌간과 감정과 관련 있는 변연계는 그다지 활동하지 않습니다. 신피질 안에서 수많은 전기 신호들이 상호작용하며 정보를 처리해 나갑니다. 그렇게 영어 단어를 배우고, 수학 공식을 익히며, 공을 던지고 몸을 움직이는 기술을 습득해 나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감정에 확 사로잡히게 되면 신피질에 집중되던 에너지가 변연계와 뇌간으로 흐릅니다.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죠. 갑작스러운 상황이나 위험한 순간에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경험을 다들 해 보셨을 겁니다. 처벌을 받거나 혼이 날 때 인간의 뇌는 그 순간을 위기 상황 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유가 무엇이든 지도자나 부모로부터 심한 욕을 듣거나 폭력인지 훈련인지 구별되지 않는 처벌을 강요받은 선수는 자기발전보다 자기방어에 집중하게 됩니다. 특히 감정 처리가 서투른 어린 선수들일수록 더욱더 지금 일어난 감정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경기장 안팎에서 모범적인 모습으로 존경받는 국민 타자 이승엽 선수, 그리고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 구에서 활약한 구와타 마스미 선수는 스포츠에 폭력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처벌보다는 동기 부여와 진솔한 대화가 필요

​“스포츠 내 어떤 종목에서라도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랬고 후배 선수들 역시 강제로 시키지 않아도 목표를 향해 스스로 최선을 다하니까요.” – 이승엽

​“저는 얻어맞고서 애정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지도자나 선배에게 체벌을 받은 시기에 야구가 향상된 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체벌에 반대합니다. 능력이 없어 체벌로 관리하는 이는 지도자로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도자를 해서는 안 됩니다.” – 구와타 마스미

​혼이 나야 잘 배우는 게 아니라 혼날 걱정 없이 온전히 훈련과 경기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선수는 더 잘 배웁니다. 이승엽 선수의 말처럼 선수 모두는 ‘발전 하고 싶다. 어제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과 죄책감, 수치심 등을 불러일으키는 거친 말과 처벌이 아니라 적절한 동기 부여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진솔한 대화입니다. 또한 구와타 마스미 선수의 말처럼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선수를 만들겠다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나 행동이 오히려 선수에게 상처만 남길 수 있으니까요.

글 : 스포츠인권교과서

*우리야구 5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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