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를 망가뜨리는 ‘앞다리 세우기’ (랜디 설리반)
최근 몇 년 사이에 “앞다리 세우기(lead leg blocking)”라는 개념이 등장해 엘리트 투수들에게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앞다리로 ‘세우는’ 것을 연습할 때, 선수들은 앞발이 착지하면서 지면의 힘을 흡수할 때 의식적으로 빠르게 앞쪽 무릎을 펴도록 주문받는다. 이렇게 앞발로 버티는 동작은 일견 적절해 보인다. 많은 엘리트 투수들이 뒷다리를 전진시킬 때 앞 무릎을 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코치와 트레이너들은 버티는 연습이 앞 다리를 “안정시키고” 몸통 가속을 도와 더 빠르게 투구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피칭 훈련 커뮤니티로 급속히 확산됐다. “앞다리 세우기”를 가르치기 위한 다양한 훈련 방법들이 개발되어 SNS로 퍼져나갔다. 많은 선수들이 이 혁명적인 정보에 영향을 받아 트레이닝에 반영했고, 투구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앞다리를 세우는 동작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선수들이 망가졌다.
진실은 이렇다
앞무릎을 의식적으로 빠르게 펴면 앞다리가 불안정해질 수 있으며, 골반 컨트롤을 방해하고, 구속과 제구가 나빠지며 부상 위험에 놓이게 된다.
이제 잠시 근육의 생리학에 대해 알아보자.
근육이 힘과 속도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근육의 크기와 모양에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짧은 근육은 큰 힘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빠르게 수축할 수 없다. 반대로 긴 근육은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은 적지만 더 빠르게 수축할 수 있다.
모든 근육, 또는 근육군은 최대의 힘을 발휘하고 가장 안정적인 상태에 있을 수 있는 길이가 있다. 예를 들어 이두근(biceps)은 팔꿈치가 최대로 펴지거나 최대로 굽혀졌을 때 약하고 불안정하다. 그 사이 어딘가에, 이두근은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고 팔꿈치는 가장 안정적인, ‘최적 길이’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긴 근육은 강하고 안정적인 상태에 있을 수 있는 길이의 범위가 넓다. 짧은 근육은 최적 길이의 범위가 좁다.
모든 근육들이 힘줄과 뼈가 연결된 방향에 평행하게 놓여 있다면 근육 길이-힘, 근육 길이-속도의 관계는 간단할 것이다. 모든 근육들이 근육 움직임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만 힘을 만들어낸다면, 근육의 최적 위치를 찾는 것도 쉬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평행 근섬유로 알려진 근육은 방금 말한 것처럼 작동한다. 평행 근섬유의 예로는 골반 앞쪽에서 출발해 엉덩이와 무릎을 지나 정강이뼈 안쪽에 붙는, 길고 얇은 넙다리빗근(sartorius)이 있다. 넙다리빗근은 엉덩이를 굽히고, 벌리고, 외회전시키며 무릎의 굽힘을 돕는다. 넙다리빗근은 그 시작과 끝에 평행하게 배열되어 있어서 빠르게 힘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큰 힘을 만들어내거나 흡수하지는 못 한다.
햄스트링과 대퇴사두근(quadriceps)은 깃모양 근육(pennate muscle)이다. 이 근육들은 힘줄에 기울어진 형태로, 다시 말해 근육 전체가 만들어내는 힘의 방향에 기울어진 각도에 위치한다. 햄스트링과 대퇴사두근이 겉보기에는 길어 보여도 깃모양 배열 때문에 기능적으로는 짧은 근육과 같다. 그에 따라 큰 힘을 만들고 흡수할 수는 있지만 빠르게 수축하지는 못하며, 좁은 ‘최적 길이’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비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햄스트링과 대퇴사두근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거나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이 발생했을 때 불안정해지고 부상이 발생하기 쉽다.
햄스트링과 네갈래근은 낮은 수축 속도를 보상하기 위해 한 묶음으로 작동한다. 최적 길이나 그 근방에서 함께 수축함으로써 힘과 안정성을 동시에 얻고 부상 위험도 줄인다.
두 근육이 협력해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릎관절과 엉덩관절이 긴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두 관절은 대퇴사두근이나 햄스트링이 최대로 펴지거나 최대로 굽혀지지 않도록 서로 적절하게 위치를 잡는다. 관절의 상호 관계를 무시하고 움직이는 것은 경기력을 떨어뜨리고 부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예를 들어 미식축구 선수나 스프린터가 무릎은 완전히 펴지고 골반은 앞으로 기울어진(기능적으로 고관절을 굽힌) 상태에서 땅을 박차고 나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때 대퇴사두근은 극단적으로 짧은 상태에서, 햄스트링은 최대 길이에 가까운 상태에서 빠르게 부하를 받게 된다. 근육이 최적 길이가 아닌 상태에서 빠른 속도와 높은 부하에 노출되면 필요한 만큼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이는 다리와 골반, 몸통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선수는 부상 당하기 쉬워진다.
투구에서는 앞발이 땅에 닿을 때 온 체중이 앞다리에 실리게 되고, 대퇴사두과 햄스트링은 아주 빠른 속도로 큰 힘을 흡수해야 한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대퇴사두근과 햄스트링이 적절한 타이밍에 동시에 등척성으로 수축해(*근육 길이는 바뀌지 않은 채로 장력을 발휘해) 골반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안정화된 골반은 하반신에서 팔로 효과적으로 에너지를 전달한다. 골반이 안정되어 있으면 배와 등 근육이 최적 길이에 도달할 수 있고, 동시에 수축함으로써 앞다리를 중심으로 몸통과 고관절이 회전하도록 돕는다. 뒤이어 팔이 적은 부하 속에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전달해 공을 던지게 되는데, 이것이 많은 우수하고 장수하는 투수들의 특징이다.
앞 무릎을 적극적으로 빠르게 펴면 대퇴사두근은 급격히 수축한다. 이때 햄스트링은 깃모양 배열 때문에 그 스피드와 파워에 따라가지 못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상호 억제(reciprocally inhibited)”된다.
근육이나 근육군(群)이 사지나 관절을 움직이기 위해 활성화될 때, 해당 움직임과 반대로 작용하는 근육은 반사적으로 억제된다. 예를 들어 이두근, 위팔근(brachialis), 위팔노근(brachioradialis)을 활성화시켜 팔꿈치를 굽히려 하는 경우, 팔꿈치를 펴는 근육인 삼두근은 억제되어야 한다.
햄스트링은 골반 뒤 아래쪽의 궁둥뼈(ischium, “앉는 뼈”)에 부착되어 있다. 햄스트링이 정상적으로 수축하는 경우 골반을 뒤쪽으로 당기게 된다. 대퇴사두근은 (넙다리곧은근을 따라)골반의 앞 위쪽에 부착되어 있다. 대퇴사두근이 수축하면 골반은 앞쪽으로 당겨진다(전방경사). 두 근육이 함께 수축하면 골반이 안정적으로 중립 위치에 고정되며, 이때 배와 등 근육이 최적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투수가 “앞다리 버티기”를 위해 의식적으로 빠르게 앞 무릎을 펴면 햄스트링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햄스트링이 대퇴사두근과 함께 작용하고 동시에 수축해 골반을 안정시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앞다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앞다리 버티기”를 했는데 이것이 앞 무릎과 엉덩이에 불안정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 골반과 배, 등까지 불안정하게 만든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핵심 포인트
(전부는 아니지만)많은 엘리트 투수들에게서 앞 무릎이 완전히 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안정적인 뒷다리를 통해 앞다리가 지면에 닿기 직전에 발이 살짝 뒤쪽으로 움직인 것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swing leg retraction”과 “foot plant from above”라고 부른다.
선수가 힙힌지(hip hinge)를 포함한 동작을 취할 때, 중둔근(gluteus medius)과 소둔근(gluteus minimus)은 최적 위치에 놓인다. 이 두 근육은 뒤쪽 골반을 잡아 주고 전진하는 쪽 골반(*우투수 기준 왼쪽 골반, 이하 모두 우투수 기준)을 살짝 높여준다.
골반을 굳이 의식적으로 기울일 필요도 없고, 오히려 기울이는 것이 중둔근의 작용을 억제할 수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중둔근이 충분히 작용하지 못해서 전진하는 쪽 골반이 내려오며 양쪽 골반이 수평이 될 수 있다. 따라오는 쪽 고관절이 적절히 힌지되면 중둔근과 다른 고관절의 근육들이 뒷다리쪽 고관절을 잠그게(힙락hip lock) 된다.
투수가 마운드를 타고 내려올 때, 중둔근은 뒤쪽 고관절과 몸통에 탄성 에너지를 모아준다. 중둔근들이 잡고 있던 골반을 놓으면 뒤쪽 고관절은 자연스럽게 빠르게 회전하게 된다. 골반 뒤쪽은 (홈플레이트 방향으로) 앞쪽으로 회전한다.
앞다리는 피칭 동작 중에 “전긴장(pre-tension)” 상태(근육이 길이 변화 없이 장력을 발휘하고 있는)에 있어야 한다. 뒤쪽 골반이 앞쪽으로 회전하면서, 전진하던 앞쪽 골반은 뒤쪽으로 돌게 된다. 이는 기능적으로 앞쪽 고관절의 소켓에서 정강뼈를 내회전시킨다.
뒤쪽 고관절의 굽힘근과 엉덩정강근막띠는 뒷다리와 반대로 당기는 힘을 작용해 “가위”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교차되는 장력은 “전긴장” 상태의 앞다리 햄스트링과 큰중둔근으로 하여금 앞쪽 고관절을 뒤쪽(2루 방향으로)으로 당기게 한다(고관절 펴짐). 이런 움직임은 앞발이 바닥에 닿기 직전에 앞발을 살짝 당겨, 앞다리에 포수 방향으로 적절한 지면반발력이 발생할 수 있게 한다.
착지 시, Y의 힘은 처음에 앞쪽(포수쪽)으로 스파이크한 다음 앞발의 뒷꿈치를 신발 뒤쪽으로 밀어 넣는다. 이어지는 지면반력의 Y값은 마이너스에서 0으로 방향이 바뀐다(홈 플레이트 방향으로). 0에 도달할 때까지 지면반력은 2루 쪽으로 돌아온다. 뒤쪽 다리가 계속 앞으로 움직이고(고관절 굴곡) 뒷발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굴러가면서(고관절 내회전) 앞쪽 무릎이 곧게 펴지기 시작한다. 골반 뒤쪽이 앞쪽 고관절의 앞으로 회전할 때 – 선수가 햄스트링 유연성이 충분하다면 – 앞쪽 무릎이 완전히 수동적으로 펴질 수 있다. 하지만 앞쪽 다리를 완전히 펼 필요는 없습니다. 대퇴사두근과 햄스트링이 함께 수축하면 앞다리, 골반, 척추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우리 The Florida Baseball Ranch에서는 “앞다리 버티기”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빨리 사라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보기에 앞다리 버티기는 그 자체가 중요한 개념이라고 보기 어렵다.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잘못 해석해 트레이닝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투구는 병아리를 고르는 것과 같다. 첫 동작이 중요하다. 첫 동작이 잘못되면 잘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글 : 랜디 설리반 (플로리다 베이스볼 아머리 CEO)
번역 : 오연우
- 이 글은 세계적인 트레이너 프란스 보쉬의 새 책 The Anatomy of Agility에 영감을 받아 썼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http://floridabaseballranch.com/blog/lead-leg-blocking-is-corruptive-it-has-t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