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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피칭에 대한 분명한 인식, 그리고 투구전략 (임찬규, 노석기, 신동윤)

지난 2020년 12월 19일에 열린 우리야구컨벤션 <자신의 피칭에 대한 분명한 인식, 그리고 투구전략> 세션의 주요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패널 | 신동윤(한국야구학회 이사), 임찬규(LG 트윈스 투수), 노석기(LG 트윈스 전력분석팀)

​신동윤(이하 신) 투수가 자신의 공의 장단점을 인식하고 전략으로 피칭을 할 것인가는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야구의 굉장히 오래된 테마라고 할 수 있는데요. 현대야구에서는 새로운 기술이나 데이터를 활용하게 되면서 이런 전략이 한 차원 높아졌다고 할까요? 이전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방법들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석기(이하 노) 저도 선수 출신이기는 하지만 투수가 많은 이야기를 해주더라도 전력분석을 하는 입장에서 투수의 느낌을 체감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즘 등장하고 있는 데이터는 트래킹 (tracking, 측정) 데이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와 같이 직접 경기에 나가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데이터를 통해 선수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임찬규(이하 임) 제가 공을 던진 타자에게 물어도 보고, 저 스스로 느끼기도 하지만 참 다르거든요. 제가 볼 때는 공이 좋다고 생각을 했는데 타자 입장에서는 쉬운 공일 수 있고, 반대로 안 좋은 공이라고 생각했는데 타자가 어려워할 수도 있고요.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2017년도 후반 즈음부터 측정데이터가 나온 것 같은데요. 데이터를 통해 어느 정도 계산이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의심도 줄어들고, 점점 나아갈 방향이 정해지더라고요.

“내 공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것을 아니까..” (임찬규)

​신 : 저도 구단에 계신 분들과 일하면서 많이 느꼈던 것이 있는데요. 데이터가 아주 기가 막힌 정답을 내려준다기보다는 소통의 측면이었습니다. 야구에서 투수와 타자의 싸움은 전통적으로는 오직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그것이 느낌을 통해서만 소통을 하다 보면 주관적이 될 수 있고, 때로는 부정확 할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을 객관화하면 마운드나 타석에 선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데이터를 가지고 전략분석팀이든 코칭스탭이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점인데요.

객관적인 피드백이 선수의 발전에 미치는 효과 (드라이브라인)

​피치터널을 경기장에 구현하기 위한 노력

​신 : 피치터널링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부각이 되고 있는 개념입니다만 이 역시 완전 새로운 접근법은 아닙니다. 투수가 여러 종류의 구종을 타자에게 던질 때, 투수가 지금 던진 공이 패스트볼인지 커브인지를 타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만들자는 목적으로 고안된 개념인데요. 타자의 입장에서는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고 얼마 정도의 구간 동안 공이 구별이 되질 않습니다. 이것을 피치터널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 시작 했고, 임찬규 선수는 이전의 여러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자신의 피칭에 적용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임 : 일단은 엄청난 비밀은 아니고요(웃음), 피치 터널링은 우선 타자를 상대로 눈속임을 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타자는 직구라고 생각을 하고 배트를 내기 시작했는데 막상 나가 보니 체인지업인 것이죠.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배트를 멈출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체인지업을 연구하고 만들었는데요.

​전에는 체인지업이 많이 떨어지면 좋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별로 의미가 없다고 느꼈는데요. 정말 강하게 던졌을 때나 많이 떨어지는 게 좋은 거지 느리게 던져서 낙폭을 크게 만든다? 사실 아리랑볼처럼 느리게 던져도 낙폭(데이터상으로는 수직무브먼트)이 그렇게 찍히거든요. 무조건 수직무브먼트가 큰(낙폭이 큰) 데이터에 집착할 것이 아니고 얼마만큼 직구와 똑같은 팔스로윙으로 던지느냐, 설령 아래 로 조금 떨어지더라도 패스트볼과 구별하기 어려울 때 타자는 헛스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타자로 하여금 ‘임찬규는 카운트에 상관없이 변화구를 던진다’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직구가 들어가도 타이밍이 늦어서 헛스윙이 나오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풀카운트에서도 늘 자신감이 있습니다. 이제는 저의 선택이거든요. 타자는 많은 경우의 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공이 빨라도 타자 입장에서 타이밍을 맞추기 좋으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빠른 공이거든요. 타자로 하여금 풀스윙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안타를 맞더라도 타이밍을 놓쳐서 쫒아나가다가 맞는 것은 괜찮거든요. 지금은 그런 마인드로 피칭을 하고 있고 그래서 나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노 : 데이터는 경기에서 어떤 결과가 있고 난 다음에 나오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로 데이터는 심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선수가 경기를 운영하는 심리를 읽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죠.

​임 : 부연설명을 조금 더 드리자면 체인지업에 자신이 없다고 하면 대부분 직구를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구종으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던지는 연습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체인지업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자신감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호세 베리오스의 자신감을 되찾아준 비디오룸 미팅 (웨스 존슨)

​피칭 레퍼토리 이해와 구종 로케이션 선택

​신 : 말씀하신 것처럼 쓰리볼 카운트에서 변화구를 던지려면 자신감이 필요한데요. 그 자신감은 명상과 마인드 컨트롤만 해서 되는 거라기 보다는 실제 기술적로도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임 : 데이터를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제구력이 아주 좋은 투수가 아닙니다. 볼넷이 엄청 적거나 스트라이크 비율이 높은 투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속이 엄청 빠른 투수도 아닙니다. 어쩌면 평범하게 공략할 수 있는 투수입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관점으로 연구를 한 것이죠. 살아남기 위해서. 가끔은 타자와 가위바위보를 한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특출난 장점이 없기 때문에 저는 주자 만루 풀카운트에서 소위 말하는 뽕 커브 (엄청 느린 슬로우커브)를 던지는 겁니다. 그것이 저의 무기이고 지금 제가 살아남아서 버티고 있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많은 선수들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각자의 무기는 다르니까요.

구속과 투구메카닉, 그리고 피칭전략

​노 : 임찬규 선수의 커브는 각이 큰 편입니다. KBO리그의 평균보다 10cm 이상 더 떨어지는 커브인데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각이 큰 커브를 마음먹은 대로 던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 : 굉장히 정교하게 제구를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풀카운트에서 타자가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라 여러 개의 선택지를 동시에 대비하도록 압박할 수만 있다면 100% 스트라이크존에 넣어야만 이기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굉장히 멋지게 들립니다.

​노 : 피치터널링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도 있겠습니다. 풀카운트에 몰리게 되면 타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긴장감이 커지고 자연스럽게 스윙이 작아지면서 컨택에 집중하는 모드로 들어갑니다. 그런 상황에서 임찬규 선수의 직구와 체인지업이 터널링이 비슷하기 때문에 타자는 직구로 오인을 할 수가 있는 거지요. 그리고 임찬규 선수의 커브가 각이 크다고 했는데요. 그렇게 각이 큰 커브를 타자가 이전 타석이나 앞선 피칭에서 보았다면 그 타자는 풀카운트에서 느린 공을 칠 수 있는 대비도 해야 합니다.

​임 : 풀카운트에서 커브를 던졌어요. 그런데 타자가 배트를 냈다가 타이밍이 늦어서 커트를 했다고 가정을 해보면요. 다음에 던진 패스트볼이 빠졌는데도 배트가 나와서 헛스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타자의 머릿속에 느린 커브가 들어가 있으니까 빠지는 패스트볼에도 헛스윙을 하게 되는 거죠.

​신 : 피치터널링에 대해 저도 조금 설명을 보충 하자면, 야구에서 구종선택, 볼배합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포수가 그 공을 잡는 위치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낮은 공인지, 높은 공인지, 그런데 TV 중계를 보는 사람은 그 공이 어디로 갔는지를 보지만 실제 타자는 그걸 보는 것이 아니거든요. 타자가 어떤 타이밍에서 스윙을 할지 말지 판단하는 것은 투수의 손끝을 떠난 약 5~7미터 지점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포수가 잡는 위치로 조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저 지점에서 공이 어디를 지나가는지를 기준으로 구종이나 로케이션을 미리 판단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피치터널링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사실 135km를 던지는 투수가 열심히 연습을 해서 150km를 던질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칼 제구 능력을 갖추는 것도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려운데요. 하지만 전략적으로 자신의 피칭 레퍼토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구종과 로케이션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효과를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지금 다루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이라이트 영상은 우리야구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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