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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언어를 연습하며 느낀 것들 (양효준)

좋은 지도자란 무엇일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좋은 지도자란 애초에 가능하긴 한 걸까? 그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이 물음을 품고 선수를 지도하는 분들이 코칭언어 연구모임에서 만나고 있다. 선수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과 질 높은 훈련을 제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열정을 갖고 있는 분들이다.

매 주 한 번씩 모여 각 주에 해당되는 주제를 나눈다. 서로의 현장에서 주제에 해당하는 사례가 생기면 그것을 공유하며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한다. 프로 코치부터 고등학교 감독, 유소년팀 감독과 멘탈 코치 등 각기 다른 레벨의 선수를 상대하는 지도자들이 미처 몰랐던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며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흡사 치유 프로그램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선수 출신으로서 직접 경험한 ‘지도자’라는 존재는 다가가기 어렵고 딱딱한 존재로만 여겼었는데 이번 모임을 계기로 그 편견을 깨게 되었다.

코칭언어 사용법도 연습을 통해 익혀야 할 기술

실제로 코칭언어 연구모임에서는 지도자들이 직접 겪은 생생한 경험들을 다룬다. 소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선수에게 동기부여를 하거나, 실수한 선수와 대화하는 장면, 코치의 기술지도가 선수에게 먹히지 않아 답답한 순간 등을 서로 공유하며 피드백을 나눈다. 연습상황과 대화상황을 녹음해서 함께 들으며 의견을 주고 받기도 한다.

코칭언어를 연구하고 올바르게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인권이나 도덕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올바른 코칭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선수지도에 훨씬 더 효과적이고 유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지도법을 고민하는 지도자들이 많다. 하지만 ‘요즘 세대의’ 선수들을 지도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지도자분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멘탈 코칭을 진행하는 선수들 중 상당수가 지도자의 과격하고 일방적인 언어와 표현방식에 여전히 스트레스를 느끼기도 한다. 선수를 위한 지도자의 애정과 열정이 서툰 언어 표현으로 인해 오해를 만드는 경우가 자주 있다. 지도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의도가 왜곡 없이 전달되어 선수가 지도자의 의견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꿈꾼다. 이를 위해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이 코칭언어에 대한 관심과 학습이다.

필요성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좋은 코칭언어 사용을 위한 적절한 방법을 모른다는 점에서는 선수와 지도자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활한 소통을 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화와 소통에는 야구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체득하기 위한 훈련의 과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코칭언어 연구모임에 참가한 지도자들도 ‘방법을 모르겠다’라는 지점에서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코칭언어 연구모임에서 나눈 대화의 일부를 소개해 본다.

“왜 시키는 대로 안해?”

선수를 지도하다 보면 하나의 동작이나 기술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여러 번 주문을 해도 선수의 변화가 보이지 않기에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지도자는 선수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 선수가 변화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답답함을 느낀다. 그런데 반대로 선수의 입장에서 보면 지도자의 반복되는 지적에 스트레스와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사실 같은 동작이나 기술을 오랫동안 해온 선수들은 변화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반복해서 지적을 받다 보면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왜 시키는 대로 안해?” vs “시키는 대로 했는데도 잘 되지 않아요”

모임에서는 이런 상황을 꺼내 놓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두 가지만 소개해 본다. 하나는 같은 메시지라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의 동작이나 기술에 대해 계속 같은 언어, 같은 방식으로 선수에게 주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하지만 다른 표현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가 사전에 많은 고민으로 적절한 표현들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선수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면 잠시 멈추기도 하고, 동작에 대해 이야기도 나눠보면서 선수가 원활하게 받아들아는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데이터나 영상 피드백을 활용하는 것이다. 요즘 시대의 야구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데이터의 야구’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데이터의 중요성과 이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활발한 연구를 통해 각광받고 있다. 데이터를 활용하여 선수들에게 피드백을 하는 것은 실제로 선수육성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지도자가 선수에게 말로 주문을 하는 것보다 직관적이고 가시적인 피드백을 통하는 것이 선수가 스스로 받아들이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챙겨야 할 주의사항은, 야구를 하는 주체가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는 감정과 주관이 존재한다. 데이터는 정확하다. 하지만 선수는 성향도 다양하고 처한 환경도 다르다. 그런 선수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각자에 맞는 방법으로 피드백을 전달하는 것이 지도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나의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 코치와 선수의 대화라고는 고작 ‘예, 아니오’ 뿐이었다. 지도자의 일방향적인 지시와 맹목적으로 지시에 따르는 선수들의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모습들은 최근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선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선수에게 공백을

코칭언어 연구모임에서 다루는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도 선수들이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도자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의도가 있어도 선수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한마디로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이다.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돌아볼 기회가 적고, 일방적인 지시만을 받는 것에 이미 너무 익숙해진 선수들이 쉽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부터가 무리다.

이를 위해 모임에서는 지도자와 선수가 대화를 나눌 때 지켜야 하는 ‘1:9의 원칙’도 아이디어로 언급되었다. ‘1:9의 원칙’이란 지도자와 선수가 말하는 비중을 지도자 1, 선수 9의 비율로 나누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 소통의 어려움은 지도자가 너무 많은 양의 지도를 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열정과 애정을 담아 전달하는 지도자의 그런 말들은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으니 나의 말을 들어야 해’라는 관점으로 다가가면 선수의 생각이나 의견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다. ‘네 생각은 어때?’ 이렇게 선수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공백을 남겨주는 방식으로 다가가면 어떨까? 야구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대부분의 문제에서 정확한 답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답이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자신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선수 자신이다. 지도자가 아무리 훌륭한 기술과 경험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은 지도자 자신의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선수는 자신만의 생각이 있다. 결국 지도자의 역할은 이러한 선수의 숨겨진 생각을 꺼낼 수 있게 도와주고, 함께 실현해 나가며 차이를 좁혀 나가는 데에 있다.

코칭언어라고 해서 특별히 전문적인 어휘를 사용한다든지 그럴싸한 문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코칭언어는 그저 지도자가 알려주고 싶은 바를 정확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선수들이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하나의 수단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올바른 코칭언어는 인권의 측면에서, 또는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선수육성과 기술지도에 훨씬 더 효과적이고 유용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고 코칭언어는 말이나 글을 뛰어넘어 존재한다. 때로는 정답을 알려주는 한마디 말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지도자의 바디랭귀지와 표정을 읽으며 선수는 큰 힘을 얻기도 한다. 코칭언어 연구모임에 참여하며 가장 ‘좋은 언어’는 결국 믿음이며 선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공백을 만들어 주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양효준
더온 스포츠멘탈코칭센터
전 LG 트윈스
충암고등학교 졸업

우리야구 11호에 소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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