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들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2002년 브리티시오픈 2라운드가 끝나고 타이거 우즈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오늘 퍼팅라인을 읽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우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라인을 읽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단지 볼이 홀에 들어가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부진한 퍼팅에 대한 원인을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의 사고패턴은 대개 ‘A의 원인은 B이고, B의 원인은 C’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를 뉴턴식 사고Newtonian Thinking라고 부르기도 한다. 뉴턴식 사고에 길들여진 인간의 의식은 어떤 결과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찾길 원한다. 우리의 뇌는 불확실성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가 서로의 꼬리를 물면서 얽히고 설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하나의 사건을 한두 가지의 이유로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할 수는 있어도 실제를 제대로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이유를 ‘모를 때’ 느껴지는 답답함과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내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경기가 끝나면 이런저런 승패의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보통 이겼을 때보다 졌을 때 집요하게 찾는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골메뉴는 단연 정신력과 집중력이다. 어린 선수들 경기에서는 큰 점수차로 지기라도 하면 ‘정신력이 빠져서’ 그렇다며 험악한 분위기로 군기를 잡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경기장에서 학교까지 뛰어가게 하거나 새벽까지 특훈을 시킨다. 어쩌다 경기 막판에 역전을 해 이기기라도 하면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아서’ 이겼다고 흐뭇해 한다. 나는 그런모습을 볼 때마다 무척 당황스럽다. 승리와 패배의 이유가 그렇게 단순할까?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했지만 질 수도 있는 것이 스포츠다. 우리 팀의 모든 조건은 완벽했지만 상대의 ‘인생 최고의 경기’애 걸리면 힘 한번 못쓰고 질 수도 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나간 경기가 행운이 반복되며 승리를 안겨주기도 한다.
NBA에서 역대 통산 3점슛 2위 기록(얼마 전에 스테판 커리가 1위에 올랐다)을 가지고 있는 레이 알렌도 부진한 플레이에 대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 적이 있다.
“오늘 슛이 안들어가던데 슬럼프에 빠진게 아닙니까?”
“아니오, 오늘 슛감은 좋았습니다. 단지 들어가지 않았을 뿐입니다.”
스로츠심리학자 밥 로텔라씨가 자신의 책 『퍼팅, 마음의 게임』에서 소개하고 있는 세베 바예스트로스의 일화도 재미있다. 마스터스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던 그는 1986년 마스터스대회에서 치명적인 포퍼트를 하고 만다. 라운드가 끝나고 기자들은 어떻게 포퍼트를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퍼팅을 했는데 안 들어갔어요, 또 퍼팅을 했는데 안 들어갔습니다. 또 퍼팅을 했는데 안 들어갔어요, 또 퍼팅을 했더니 들어갔습니다. I miss the putt. I miss the putt. I miss the putt. I make.”
세베 바예스트로스는 이렇게 자신이 퍼팅을 네 차례 한 과정을 설명했고 사람들은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로텔라씨는 바예스테로스의 이 말에 담긴 그의 사고방식을 설명한다. 그는 자신의 퍼팅이 계속 실패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오거스타의 악명높은 빠른 그린을 핑계대지 않았고, 자신의 퍼팅동작에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었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퍼팅을 실수했지만 굳이 그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으며 다음 퍼트를 이어나갔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치명적인 포퍼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4위로 대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타이거 우즈나 레이 알렌, 세베 바예스트로스의 말처럼 최고의 선수들은 ‘A의 원인은 B일 수도 있고, C일 수도 있다’는 사고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고패턴은 원인과 결과를 가능성과 확률의 관점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양자역학적 사고Quantum Thinking라고도 부른다. 그들은 삶의 불확실성에 저항하지 않고,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유를 찾는 노력은 당연히 기울이지만 그 노력이 지나쳐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의 원인이 하나 이상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나의 결과에는 하나 이상의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의 초등학교 과학교과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떤 결과에는 반드시 어느 하나의 이유가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원인과 결과를 올바로 이해해야 코치, 선수 모두 연습과 경기를 올바른 방향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