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마인드, 직면하는 용기 (2015년 세계 U18 야구대회 참관기)
지난 오사카 U18 야구월드컵에서 우승한 미국대표팀은 예선에서 개최국 일본에게 0대2 완봉패를 당했다. 그날 나는 경기가 벌어진 마이시마스타디움에 있었는데 흥미로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미국 대표팀의 코칭스태프들이 바로 경기장을 빠져 나가지 않고 덕아웃 앞에서 모여 한참을 이야기나누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영어라(ㅠㅠ)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경기장을 함께 바라보는 그들의 몸짓과 베이스를 가리키는 동작들을 볼 때 그날 경기 중 일어난 상황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는 것 같았다. 한 코치는 대화 중에 틈틈이 자신의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나갔다. 그들의 대화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20여 분이 지나 끝이 났다. 졌지만 표정은 심각하지 않았고 서로간에 웃으며 농담을 주고 받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달 ‘멘탈만능주의’의 위험을 다룬 이용균 기자님의 명품 기사(누가 마운드에 새가슴을 올렸나 http://goo.gl/AdJN3d)를 보고 그때 그 장면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기사에는 모호한 정신력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 중에 벌어진 상황을 리뷰하며 구체적인 문제나 실수를 발견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가는 미국 대학야구의 사례를 이효봉 해설위원님께서 전하는 내용이 나온다.
“언젠가 미국 대학야구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팀에서는 경기 중 위기 상황이 왔을 때 그 결과를 두고 경기가 끝난 뒤 다들 모여서 회의를 한다고 하더라.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어떻게 진정시키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그런 노하우들이 쌓이고, 다음 번 맞이한 상황에서 그 방법을 적용하고 차츰차츰 나아지는 길을 찾아나가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인 것 같다.”
자신의 실수를 돌아보고 진 경기를 다시 살펴보는 과정이 유쾌할 리 없다. 프로야구팬들도 응원하는 팀이 지면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졌을 때의 좌절감, 짜증스러운 기분 등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추신수 선수는 올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에 빠져 있을 때에도 네이버에 일기를 계속 전해 왔다. 이영미 기자님께서 온갖 악플들 때문에 상처받을 추신수 선수를 배려해 잠시 중단할 것을 권했지만 그는 도망가기보다 고스란히 그 불편한 현실을 겪어내는 길을 선택했다.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을 통해 어려운 상황을 피하지 말고 제대로 겪어내야 진정한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형편없는 플레이를 한 경기가 끝나면 딱 15분 동안 그날 경기를 돌아보며 자신의 플레이를 반성했다고 한다. 물론 그런 후에 그는 두 번 다시 그날 경기를 떠올리며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않았다.
챔피언은 자신의 아픈 부분을 기꺼이 바라보는 용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 글은 이용균 기자님의 기사(누가 마운드에 새가슴을 올렸나 http://goo.gl/AdJN3d)와 김준성님의 블로그글(추신수의 일기, 멕라렌의 악플 http://goo.gl/OKj6m0)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성하였습니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