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 (문요한)
문요한 원장님의 글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너는 부족함 없이 키울 거야.’ ‘나는 어떻게 되든 괜찮아. 너만 행복할 수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부모들이 꽤 있습니다. 이들은 정말 자녀들에게 헌신적입니다. 자신의 모든 삶의 목표가 자녀의 행복에 달려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희생적인 부모의 특징은 ‘서로의 행복’을 추구하지 못하고 ‘나는 힘들더라도 넌 어떻게든 행복해야 해!’를 추구합니다. 이들은 그러한 태도를 ‘값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만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나 많은 불안, 죄책감, 부담감을 주는 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배가 고픈데 밥이 한그릇 밖에 없다고 해봅시다. 상대가 당신만 배부르면 자신은 괜찮다며 밥 한그릇을 전부 당신에게 준다면 당신은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요? 같이 먹자고 하는데도 상대방이 한사코 거절하고 화를 내면 당신의 마음은 어떨 것 같나요? 당신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를 있는 그대로 대하지 못하고 자신의 기대대로 상대를 욕망하고 통제하고 집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대대로 되지 않아 고통스러워합니다. 그것이 사랑일까요? 그렇게 본다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이타성은 사실 이기성의 다른 모습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는 비극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타인을 사랑하려면 우리는 자기내면의 상처를 마주해야 합니다. 사랑받지 못해서 슬퍼하고, 원망하고, 화가 나 있는 내 자신을 먼저 돌봐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단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즉, 나를 위로하고 구원해줄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타인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것을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때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림은 Sheri Lauren의 2012년도 작품 <Joy and Sorrow>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