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봉 어머니의 훈육 신화 (서천석)
정신과전문의 서천석 선생님의 글이 공감되어 퍼왔습니다. 저에게도 ‘기능적 탁월함을 만들어 입신양명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있는지 돌이켜 보니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과 삶에 대한 통찰, 타인을 위한 헌신을 함께 배워나가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잠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출처 : 서천석 선생님 페이스북)
한석봉에 대한 이야기가 담벼락에 보인다. 그가 (글재주가 아닌) 글씨 재주가 대단해서 성공했지만 행정가로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음은 제법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대과에도 합격하지 못하고 자격시비가 일던 그를 군수로 임명한 것은 왕인 선조이기에 그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잘못을 따지자면 백성들 생각은 안 하고 행정 경험도 없는 그를 자리에 앉힌 선조가 더 큰 잘못이다. 선조는 전쟁 중에 한석봉의 글씨로 외교적 도움을 받았기에 (참전한 명나라 장군들이 석봉의 글씨를 좋아했다) 일종의 선물을 준 셈인데 공직을 선물로 주었으니 제대로 일이 풀릴 리 없다. 한석봉은 군수 일은 내팽개치고 놀러만 다녔다는 상소로 결국 물러나게 된다.
다만 그가 가평군수에서 파직 당한 후 현감 자리로 좌천된 다음에 보인 행동은 혀를 차게 한다. 여전히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삐친 마음에 중요한 자리에서 일부러 글씨를 틀리게 쓰는 등의 속좁은 행동을 한다. 역시 글씨가 좋다고 인간됨이 훌륭할 수는 없다는 증거다. 또 그의 부모가 했던 교육이 지극히 기능적인 수준에 머무는 교육은 아니었을지 의심하게 한다. 물론 부모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교육이란 어차피 보잘 것 없을지 모른다. 부모는 큰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가 받는 영향이란 전혀 엉뚱한 경우도 많다.
한석봉 이야기를 내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점은 다른 데 있다. 1945년에 우리나라의 첫 교과서가 발행된 이래 한석봉과 어머니 이야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실렸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하면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전기문도 그간 한두 번의 교육과정에서 빠진 적이 있었다.
왜 이 이야기가 그토록 오래 빠지지 않았을까? 나는 이 이야기가 우리가 교육에 대해 가진 멘탈리티를 오롯이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죽어라고 해야 하고, 매를 대서라도 해야 하고, 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린 아이도 모질게 대하고,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은 사치고,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실수만은 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터득한 경지라는 것은 그저 기능적인 탁월함이다. 그 이상은 없다. 배움의 즐거움도, 새로운 발견도, 삶에 대한 통찰도, 타인을 위한 헌신도 없다. 기능적 탁월함을 만들어 입신양명하면 그만이다. 이게 우리가 지난 60년 이상 교육에서 추구해온 본질이다.
그걸 대단한 이야기라고 가르치고 배우고 장려해왔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사랑의 매에 대해서다. 90년부터 발행된 4차 교육과정의 4학년 국어교과서를 기억하는데 그 글에서 석봉의 어머니는 석봉에게 매를 들고, 공부하라고 절로 보낸다. 또 공부에 지치고 엄마가 보고 싶어 돌아온 석봉을 그 유명한 떡썰기 일화를 통해 다시 절로 쫓아 보낸다. 80년 출생한 분들부터 이 교과서를 배웠을 텐데 그때만 해도 ‘사랑의 매’가 교과서에 당당하게 나오곤 했다. 91년도에 우리나라가 유엔 아동인권선언을 비준했는데, 여기서는 아동에 대한 폭력을 사용한 훈육을 안 된다고 하지만 뭐 그때만해도 ‘인권선언이 뭔데?’ 하는 수준인 셈이다.
요즘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모들이 대개는 4차 교육과정 세대다. 그들이 배운 교과서가, 또 교육 환경이 그렇다 보니 아직은 교육이나 훈육에서 엄격함을 빙자한 폭력이나 정서적 학대가 보편적인 방법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적어도 교과서에 이런 글은 실리기 어렵다. 물론 8차 교육과정의 2학년 통합 교과서 한석봉 부분의 그림도 무섭기는 매한가지다. 엄마의 앞쪽으로 칼이 놓여져 있으니… 그래도 매를 댄 부분은 빠졌다. 세상은 이만큼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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