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목표가 정말 미래를 만들까?
미일 통산 4천 안타를 훌쩍 넘긴 경이적인 기록을 남긴 이치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몇 가지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계약금 1억엔을 받고 프로에 진출한다.’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MVP가 된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구체적인 목표다. 오타니가 유명해지고 나서 그가 하나마키히가시고등학교에 다닐 때 만든 만다라트 형식의 목표도 덩달아 화제가 되었다. 사사키 히로시 감독의 지도로 작성한 그의 목표에는 ‘프런트 스쿼트 90kg 달성하기’와 같은 경기력 향상을 위한 목표부터 ‘야구부실 청소’처럼 인성을 가다듬기 위한 목표까지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오타니가 학창 시절 적은 그런 목표들이 슈퍼스타로 성장한 현재의 모습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사람들은 추측한다. ‘선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위해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할 필수품으로 간주되곤 한다.
하지만 목표를 성공으로 가는 과정에 반드시 함께 가야 할 동반자로 바라보는 그런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일본의 코치이자 상담가인 히라모토 아키오는 ‘비전’이나 ‘목표’에 자극을 받아 성공하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표라는 미래의 그림보다 하루하루의 ‘심리적 만족’에서 힘을 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히라모토 코치는 자신의 책 『목표없이 성공하라』에서 동기부여를 받는 방식에 따라 ‘목표추구형’과 ‘심리적 만족형’으로 구분한다. 목표추구형은 ‘결과와 가까워진 느낌’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다. 반면 심리적 만족형은 거창한 목표보다는 ‘현재의 만족감’에서 힘을 얻는 사람이다. ’10년 후에 메이저리그에서 신인왕이 되겠다’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할 때 힘이 솟는 선수도 있고, ‘어제보다 타구속도가 빨라졌다’는 성취감이 노력으로 이어지는 선수가 있다고 히라모토 코치는 책에 적고 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올해는 반드시 판매왕이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자신을 움직이는 동기로 작용하는 세일즈맨도 있지만 ‘그저 오늘 만나는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정성을 다하다 보니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세일즈맨도 많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으로 정보통신부 장관도 지낸 진대제 씨가 자신은 일을 하며 한 번도 CEO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목표는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잘 와닿지 않았다며, 대신 자신이 하는 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일을 했다고 한다.
목표와 성취 사이의 상관 관계를 다룬 연구도 왠지 있을 것 같아 찾아보니 제법 많은 논문들이 검색되었다. 그 중에 2012년에 발표된 시카고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연구팀의 공동 연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일릿 피시바흐, 최진희 교수의 연구팀은 런닝머신 달리기, 종이접기, 치실 사용, 요가, 네 가지 활동을 대상으로 목표가 미래의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했다.
한 그룹은 목표에 집중하며 활동을 하도록 했다. 이 경우에는 지금 하는 활동이 미래의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연구팀은 이를 ‘활동의 도구성[2]’이라 불렀다. 반면 다른 그룹에는 활동을 통해 얻는 경험 자체에 집중하도록 했다. 이 경우는 지금 하고 있는 활동 자체가 곧 목적이 된다.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한다.’ 이렇게 활동의 도구성을 강조한 그룹, 즉 목표에 집중하도록 한 그룹은 경험 자체에 집중하도록 한 그룹보다 달리기를 더 오래 할 거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제 달리기를 한 시간은 오히려 달리기 경험 자체에 집중한 그룹보다 적었다. 목표가 보다 야심찬 계획을 세우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실제 지속적인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종이접기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그룹은 종이접기의 치유 효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저마다 하나씩 목표를 세우고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반면 다른 그룹은 종이접기를 하는 경험 자체에 집중했다. 종이접기를 하기 전에는 목표에 집중한 그룹이 종이접기에 더 많은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실제 종이접기를 하고 나서는 경험 자체에 집중한 그룹이 목표에 집중한 그룹보다 더 재미있다고 응답했다. 종이접기, 치실 사용, 요가를 대상으로 한 실험 모두 경험 자체에 집중한 그룹이 더 오랜 시간 활동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네 가지 활동을 대상으로 한 실험 모두 목표는 처음에 동기를 크게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동기가 활동을 꾸준하게 해나가도록 하는 에너지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목표가 아닌 경험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참가자들로 하여금 재미를 불러 일으키고 보다 꾸준히 활동을 실천하도록 만들었다.
히라모토 아키오 코치는 책에서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의 일화를 소개한다. 마쓰이 선수가 평소 자주 가는 단골가게를 방문한다. 가게에는 마쓰이 선수가 적어놓은 목표가 벽 한쪽에 걸려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적은 그 목표들을 보며 멋쩍은 표정으로 말한다.
목표를 세워도 별로 의식이 되지 않더라고요.
실제로 그가 세운 목표들은 대부분 달성되지 않았다. 마쓰이의 좌우명은 ‘일일일생(一日一生)’이라고 한다. 하루(一日)를 온전하고 충실하게(一) 산다는(生) 의미다. 그가 미래의 꿈이나 목표로부터 에너지를 얻기 보다 하루하루의 삶에 정성을 다하는 심리적 만족형에 가까웠음을 말해준다. 이렇듯 사람은 저마다의 고유한 동기에 따라 힘을 얻는다는 점을 이해하면 코치가 선수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멋진 미래를 상상해 보도록 자극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선수들이 매일 조금씩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정교하게 연습 프로그램을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목표나 꿈과 같은 정신적인 개념과 관련해서 특히 유소년 코치와 학부모들이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다.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따르면 대체로 12세 전후까지의 아이들은 목표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직 추상적이고 복합적인 사고를 하는 능력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서 사고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그저 지금 일어난 생각과 감정에 잠시 머무르고 마는 것이 보통의 어린 아이들의 의식 수준이다. 경기에서 지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어린 선수들이 밥을 먹으러 가서는 마치 한 시간 전의 경기는 세상에 없던 일인 것처럼 장난치고 노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것들은 분하지도 않나? 저래 가지고 프로선수 되겠어?” 하며 지도자나 부모들은 혀를 차지만 그건 미래에 비추어 현재의 의미를 해석하는 어른들의 사고 패턴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목표나 꿈이라는 개념은 단어로는 존재하지만 그 의미는 몸과 마음에 아직 스며들지 않은 공허한 메아리와 같다. 나는 이 이야기를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야구코치협회 컨벤션에서 드라이브라인의 유소년 디렉터인 데븐 모건 코치로부터 들었다. 모건 코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야구선수가 꿈이라는 놈이 왜 연습을 그따위로 밖에 안해?
열심히 한다고 했잖아? 프로야구 선수가 목표라며?
아이들이 운동을 하는 모습이 성에 차지 않을 때 지도자나 학부모가 야단을 치며 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 발달 단계에 비추어보면 안타깝게도 꿈과 목표를 앞세운 이런 다그침의 말이 어린 아이에게 실감나게 와닿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아이가 한 때 초롱초롱한 눈으로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 말을 아이의 마음이 간절한 목표로 가득 차 있다는 증거로 간주해 버리면 곤란하다. 나는 어린 아이가 하는 그런 말이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연예인이 되고 싶어요’ 하는 말처럼 그때그때 농도가 바뀌는, 흐릿한 바람 정도로 여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이런 의식 발달 수준을 이해하지 못하면, 코치든 부모든 어른의 수준에서 바라보는 꿈과 목표를 기준 삼아 너무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요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선수가 어릴 수록 ‘심리적 만족형’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지도를 하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수학자인 찰스 엘리엇 박사는 수학에 낙제하는 초등학생이 많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문제의 난이도를 적절히 조절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는 교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어릴수록 작은 성공 경험의 반복을 통해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고, 자신감과 도전 정신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어린 선수가 운동을 하는 목적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꿈’과 ‘목표’만을 앞세워 다그칠 것이 아니라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보았으면 한다.
“이 선수가 요즘 운동을 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있을까?”
많이 깨져야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하면서, 목표를 이루려면 지금의 어려움을 참고 견뎌내야 한다는 말을 어린 선수들에게 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꿈은 아름답고 목표는 힘을 준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가치라도 그것에 눈이 멀면 자신과 주변을 어려움에 빠뜨린다. 무언가에 눈먼 마음은 주변에 있는 다른 소중한 것들을 인식하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전쟁들이 그렇게 이념과 이익에 눈먼 권력자들에게 의해 일어났고 끔찍한 파괴로 이어졌다. 나는 스포츠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꿈’이라는 단어에 반쯤은 눈이 멀어있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매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학원을 다니거나 야간 훈련을 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마음 속으로 기원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라도 ‘늘었다. 재밌다’는 성취감으로 웃을 수 있기를. 수능이나 드래프트와 같은 저 먼 미래의 일은 내려놓고 마음 한 구석이 만족감과 즐거움으로 채워졌기를.
